최원호 목사의 영혼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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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본문
고린도후서 2:12–17

서론

Ⅰ. 패배 같아도 여전히 승리의 행진 속에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언제나 승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마치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것 같고, 사역을 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큰 기회가 열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름에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케도냐로 갔노라”(고후 2:12–13).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이 열렸는데도, 바울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사역의 현장에도 이런 공허감과 염려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모든 것이 잘된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거운 현실 속에서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터뜨립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답답한데, 바울은 자신이 이미 승리의 행진 속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의 시각입니다. 고린도후서는 단순한 교리적 편지가 아니라, 눈물과 간증이 담긴 목회자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했습니다.

본론

Ⅱ. 승리의 방식 –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14절 상)

바울은 “이기게 하시고”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말은 로마의 승전 행차(triumphus)를 연상시킵니다.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포로들을 끌고 로마 거리를 행진하며, 향을 피우고, 백성들은 환호합니다. 이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승리의 권세를 선포하는 퍼레이드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 행진 속 포로에 비유합니다. 내가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라는 고백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 승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 승리의 공간은 그리스도 안입니다. 세상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리에서 승리가 주어집니다.

* 승리의 시간은 항상입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승리의 자리에 두십니다.

즉, 환경이 패배처럼 보여도, 믿음의 눈에는 이미 승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Ⅲ. 향기의 사명 –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14절 하–15절)

바울은 복음을 ‘냄새’라는 독특한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집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2:15) 이 말씀은 성도의 존재 자체가 복음의 향기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향기는 억지로 내는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면 자연스럽게 향기를 내듯, 주님과 깊이 연합한 성도의 삶에서는 자연스럽게 향기가 흘러나옵니다. 향기는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태도를 취하든, 결국 삶에서 향기가 드러납니다. 직장에서의 정직, 가정에서의 사랑, 공동체에서의 섬김이 바로 복음의 향기입니다. 향기는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평가하고 조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향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향수 한 방울이 방 안 전체를 가득 채우듯, 성도의 작은 기도, 작은 섬김, 작은 사랑의 실천이 가정과 교회와 일터를 가득 채웁니다. 문제는 그 향기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Ⅳ. 복음의 이중적 반응 –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에게는” (16절)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만, 반응은 다릅니다.

1. “이 사람에게는 사망에서 사망으로” :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복음은 불편한 냄새가 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구원받는 자에게는 능력이지만,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18)입니다. 결국 복음을 거절하는 자는 죄 가운데 머물러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2. “저 사람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새 생명이 시작되고,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같은 햇볕이 얼음을 녹이고 진흙을 굳히듯, 복음은 동일하지만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같은 약이 어떤 이에게는 치료제, 어떤 이에게는 독이 되듯, 복음은 사람의 반응을 드러내는 시금석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고백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가르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복음이지만, 반응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3. “누가 능히 이 일을 감당하리요?” : 복음은 단순한 교양이나 도덕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갈라놓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사역자의 책임은 너무나 크고 무겁습니다. 어떤 사람을 살리고, 어떤 사람을 심판에 두는 영적 분기점이 바로 복음 선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한계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어서 3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교회 봉사와 사역은 내 능력, 내 경험, 내 열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쉽게 자기만족에 빠집니다. “내가 열심히 했으니 이 정도면 괜찮아.” “내가 아니면 이 사역이 안 돌아간다.”

그러나 바울은 스스로 만족할 것이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 봉사는 인간적 성취감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섬김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진짜 만족은 사람의 칭찬, 성과, 인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옵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봉사의 기쁨은 내가 무엇을 했다는 성취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섬김을 통해 일하셨음을 목격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자는 때로 “내 수고를 누가 알아주나?” 하고 낙심할 수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신다.” 이처럼 바울은 복음을 맡은 사명의 무거움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힘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고 고백합니다.

Ⅴ. 사명의 근거 –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3:5)

이 무거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 사명의 무게 : 인간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사명의 근거 : 우리의 자격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 사역자의 태도 :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의존입니다.

히브리서 6장 10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봉사의 참된 만족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역은 성취가 아니라 충성입니다.

Ⅵ. 말씀 사역자의 태도 –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2:17)

바울은 마지막으로 사역자의 태도를 밝힙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 : ‘혼잡하다’는 말은 원래 ‘술에 물을 타서 희석하다’는 뜻입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왜곡하고 섞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았습니다.

* 순전함으로 말한다 : 사역의 동기는 자기 이익이나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 : 말씀은 인간이 꾸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무대는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기준은 내 욕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양심이요, 정체성이었습니다.

결론

Ⅶ.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고린도후서 2:12–17 말씀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우리는 패배 같은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승리 행진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복음은 같은 향기이지만, 사람의 반응에 따라 사망의 냄새가 되기도 하고 생명의 향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명을 감당할 힘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납니다. 사역자는 순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받아들이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이미 향기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일터는 여러분 때문에 생명의 향기를 맡고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로 세우셨습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 눈에는 때로 실패처럼 보이지만, 주님 안에서는 이미 승리함을 믿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우셔서, 가정과 일터와 세상 가운데 생명의 냄새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바라보며,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순전하게 전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