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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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요나 4장 9~11절 제목: ‘요나서의 기록 목적’

이번에는 구약의 선지서 가운데서 선교에 대해 대표적으로 기록한 책, ‘요나서’의 기록 목적은 무엇이며, 기록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요나서는 당시 이방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앗수르 국가로 하여금 요나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회개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앗수르는 어떤 나라인가? 앗수르는 이스라엘 국가를 가장 괴롭힌 나라였고, 가장 위협적인 국가였다. 그러므로 선지자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심판받아 마땅하며, 그들이 심판을 면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니느웨로 보내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하라는 명령은 있을 수도 없는 절대 불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파송 명령을 받았을 때, 이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 니느웨의 정반대 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승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가 일어났으므로 여기선 생략하기로 하고, 요나는 결국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돌려 니느웨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요나가 말씀을 전파한 결과, 예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왕과 신하들을 비롯해 온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섬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면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기적과 같은 사실을 목격한 요나의 입장에서는 어떤 마음을 가졌나? 그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내용이 본문 4장이다. 그러니까 요나서 4장 1~5절까지는 전과 다름이 없는 그의 완고하고 배타적인 자세가 기록되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6~11절까지는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의 심정이 담겨있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본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통해 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온 현실에 대해서 요나 자신은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마음을 토로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요나는 그때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로지 국수적인 편협함과 폐쇄적인 마음만 있었다. 그는 전혀 선교사답지 않은 모습을 드러냈고 복음의 보편적인 이해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나온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고 믿었지만,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이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며 자기 나라의 원수들까지도 관심을 가진 분임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요나와 같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모습과 태도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심지어 선교사도 있음을 본다. 그런 사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요~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그와 같은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하나님의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열왕기하 14장에 보면, 요나는 자기 나라에서 이미 선지자로 활약했었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왕하 14:24~25). 그렇다면 자기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해야 할 사역이 있는 요나를 굳이 먼 곳까지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더욱이 이스라엘에게 악한 짓을 했고, 큰 위협이 되는 적국에게 그를 꼭 보내셔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은 그를 통해 니느웨에게 반드시 하셔야만 하는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니느웨는 성경에 기록되기를, ‘큰 성읍’이라고 불렀다. 당시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로 최고의 힘과 문명을 자랑하던 엄청난 대도시였다. 그렇게 유명한 도시로 요나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것은 주변의 다른 국가들의 이목을 끄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가 있으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그가 니느웨로 가는 일은 어느 한구석에서만 조용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개적으로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큰 사건이 될 수 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이다.

니느웨처럼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고 풍부한 부와 권세가 몰려있는 국가와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회개하고 돌아설 것이라는 생각을 할 사람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이 이 나라와 이 도시에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런 엄청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참으로 놀라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처럼 거대한 국가와 도시가, 그리고 그처럼 완악하고 패역한 국가와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순종하고 회개하였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과연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느냐 말이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부끄러움을 잔뜩 느끼면서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마땅한 일이 아닌가? 바로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요나서의 예를 드시면서 누가복음 11장 32절 ‘심판 때에 니느웨의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하리니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니라’고 빗대어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돌아서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일이 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신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물론 악한 니느웨라 할지라도 심판을 잠시 유보하시는 그분의 긍휼과 사랑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리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영적인 도전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진심으로 우상숭배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으셨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이방 국가 앗수르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서는 사건을 보게 되는데, 10절과 11절의 말씀이다.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방인들의 역사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능가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교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준다.

선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많은 도전과 회개를 촉발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수많은 이방인이 자신의 지난날 행실을 버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 부르짖는 모습은 지금까지 대충 안일한 신앙생활을 해 왔던 자신과 신앙공동체의 모습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고 회개를 촉구하여 자신의 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먼저 믿은 우리가 이방인들에게 더욱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전달해야 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된다는 사실을 요나서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김영휘 목사
▲김영휘 목사

[말씀묵상기도]

1.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마음을 아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2. 편협하고 인색한 이기적인 우리의 믿음을 회개하고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