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에 들어서면 충성분수대를 만난다. 각 군을 대표하는 여섯 명의 병사들이 사방을 응시하고 있다. 멀리 현충문 뒤로 현충탑이 보인다. 중앙의 현충탑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묘역에 5만 4천 여기가 질서 있게 들어서 있다. 봉안된 위패와 안치된 유골을 포함하면 총 19만 1천여 위에 이른다.
서울 현충원의 전체 면적은 143만 제곱미터(약 432천 평)이고 ①국가원수 묘소 ②임시정부요인 묘소 ③독립 유공자 묘역 ④국가 유공자 묘역(3개소) ⑤장군 묘역(3개소) ⑥장병 묘역 ⑦경찰관 묘역 ⑧외국인 묘소로 구분되며, 그중 장병 묘역이 56개소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충혼당 2개소, 무후선열제단과 위패 봉안관(무명용사 유골안치 봉안실)이 있다.
추모탑은 ①호국영령 무명용사비 ②현충탑 ③충열대 ④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⑤제일 학도의용군 전몰용사 위령비 ⑥경찰 충혼탑 ⑦육탄 10용사 현충비 ⑧학도의용군 무명용사 탑 ⑨유격부대 전적위령비 ⑩파월 전몰장병 추모비 ⑪충성 분수대 ⑫호국 승천상이다.
이렇게 서울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들의 유택이자 안식처이다. 자유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의 밑거름이 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영혼을 위로하고 감사를 드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경건한 장소이지만 일상에서 선열들을 만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립묘지는 집단 기억을 통해서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단합과 통합에 이르게 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국립묘지는 무명용사의 묘와 함께 자유민주국가의 최고의 상징이다. 전제 왕조국가는 왕실의 존귀함을 과시하며 국민을 존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사한 병사들을 국가가 주관하며 전 국민이 추모의식을 행하고 존경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공통점이다. 국립묘지는 겨레의 혼과 민족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자유 대한민국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서 구성된 거대한 결속이요 공동체이다.
매년 6월 6일은 현충일로서, 전 국민이 일손을 멈추고 정각 10시에 오늘의 나와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존중하고 추모하는 묵념을 한다. 묵념의 뜻은 그 분의 정신과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서 그 뜻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충일은 1953년 6월 6일 육, 해, 공군 합동 전몰장병 추모식에서 시작되었고, 1956년 현충기념일로 승격해서 새로 개장된 현 서울 현충원에서 거행되었다. 그날 이승만 대통령 담화문의 일부이다. “이날을 국정 공휴일로 하여 관민이 사업을 정지하고 순국의사를 추모하며 일편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에 영광스럽고 빛나는 영예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 다른 나라에서 지켜오는 메모리얼 데이가 되는 것이다.”
6월은 6.25가 들어있는 달이라 상징성이 있고, 그해 6월 6일은 24절기 가운데 망종이었다. 망종은 한 알의 씨앗이 새싹을 틔우는 것처럼 재생의 뜻이 있다. 호국용사들의 값진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이날을 현충일로 정한 것이다.
영국의 현충일은 검은 옷을 착용하고 시종 엄숙한 분위기에서 전사자에게 추모의 초점을 맞춘다. 미국은 일상복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령이나 합참의장의 연설을 들으며 국가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우리 국립묘지의 현충탑은 31m 높이로,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키는 십자(+) 형태로 되어있다. 왼쪽 석벽에는 5인의 애국 투사상이, 오른쪽 석벽 끝에는 5인의 호국 용사상이 있다. 제단 앞에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가는 이들 해와 달이 보호하리라”는 문구가 있다.
현충탑 아래 지하에 위패 봉안관이 있다. 중앙에 순백색 영현 승천상과 호국영령 무명용사비가 서있고, 벽면에 유해를 거두지 못한 전사자 10만 3천여 개의 검은 색 위패가 빼곡히 걸려있다. 호국영령 무명용사비 아래 지하에는 무명용사 봉안실이 있다. 봉안실에는 6.25 전사자를 대표하는 무명용사 1위와 무명용사 5,870위가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