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농부
제목
말씀은 같은데 왜 열매는 다를까?

성경
마태복음 13장 10~23절

서론

오늘 우리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왜 같은 말씀을 듣는데 사람마다 열매가 다를까요?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같은 성경을 읽습니다. 같은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이 그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격이 성숙해지고, 기도의 깊이가 달라지고, 가정과 삶이 새로워집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처음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은혜를 받지만 며칠 지나면 사라지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 원인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씨앗이 아닙니다. 농부도 같습니다. 씨앗도 같습니다. 문제는 씨앗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씨 뿌리는 비유가 아니라, 사실은 마음 밭의 비유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시편 65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먼저 땅을 예비하시고, 고랑에 물을 대시며, 굳은 땅을 부드럽게 하신 후 곡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음 이야기입니다. 기경된 밭에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씨앗이 아니라 그 씨앗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질문에 답하고 계십니다. 첫째, 왜 어떤 사람은 천국의 비밀을 깨닫고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가? 둘째, 무엇이 말씀의 성장을 방해하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땅은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Ⅰ. 천국의 비밀은 준비된 마음에만 열립니다.(10~17절)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0절) 이 질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말씀하시는지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 밖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1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며 오해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시고 어떤 사람은 일부러 깨닫지 못하게 하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비밀’이라고 번역된 뮤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 1장 27절에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합니다. 천국의 가장 큰 비밀은 어떤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그 비밀을 알고 어떤 사람은 알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사람을 두 부류로 구분하십니다. ‘너희’와 ‘그들’입니다. 여기서 ‘너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이 뛰어난 사람도 아닙니다. 제자들 역시 여러 번 실패했고,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려는 갈망이었습니다. 비유를 듣고 그냥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주님, 무슨 뜻입니까?” 주님께 가까이 나왔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깨닫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말씀은 들었지만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보았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생각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비유는 진리를 감추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마음이 준비된 사람에게는 더 깊이 열리고,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는 그대로 남는 말씀이었습니다. 같은 햇빛이 밀랍은 녹이고 진흙은 굳게 만드는 것처럼, 같은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관심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는 말씀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십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14절) 왜 그렇습니까? 15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합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졌기 때문이라.”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귀나 눈을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귀가 둔해집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눈도 닫히게 됩니다. 사람은 귀로 말씀을 듣지만 실제로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성경을 눈으로 읽지만 실제로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같은 설교를 들어도 누구는 회개하고 누구는 감동만 받으며, 누구는 아무런 변화 없이 돌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닙니다. 굳어진 마음입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회개하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15절 마지막 말씀은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하여.” 놀랍게도 사람들은 고침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고침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상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복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이 완악한 마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6절) 이 복은 단순히 예수님을 육안으로 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를 직접 만나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역사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역시 같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 앞에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은 똑똑한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히 배우려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이유를 세 가지 마음 밭을 통해 설명해 주십니다.

Ⅱ. 천국의 복음은 자라지만, 열매를 빼앗는 세 가지 영적 장애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18~22)

이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직접 해석해 주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씨앗을 설명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좋은 씨앗인지, 나쁜 씨앗인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농부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씨앗이 떨어진 마음의 상태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능력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다른 이유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가로막는 세 가지 영적 장애물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길가의 마음은 말씀을 깨닫기 전에 사탄에게 빼앗깁니다.(19절)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길가는 사람들이 계속 밟고 다니는 곳입니다. 단단하게 굳어져 씨앗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씨앗은 흙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에 머물다가 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 새를 악한 자, 곧 사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사탄의 역사를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탄의 가장 무서운 전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말씀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칠 때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꼭 순종해야지.”, “이번에는 정말 달라져야지.”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은 반드시 자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은 후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예배가 끝난 이후입니다. 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려는 사람이 길가의 마음을 좋은 땅으로 바꾸어 갑니다.

둘째, 돌밭의 마음은 시험 앞에서 뿌리의 깊이가 드러납니다. (20~21절)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돌밭은 흙이 없는 땅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밭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단단한 바위층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씨앗은 빨리 싹을 틔웁니다. 하지만 뿌리가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합니다. 햇볕이 뜨거워지면 가장 먼저 말라 버립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봉사도 앞장섭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환난과 시험이 찾아오면 쉽게 흔들립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단 한마디로 설명하십니다. “뿌리가 없다.” 시험은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깊이를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나 믿음이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이 찾아올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뿌리가 어디까지 내려가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것은 화려한 프로그램보다 말씀의 뿌리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이 뿌리가 아닙니다. 직분이 뿌리도 아닙니다. 성경 지식이 많다고 뿌리가 깊은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깊은 뿌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내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나무는 비바람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에서 뿌리가 더 깊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시험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하여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자라갑니다.

셋째, 가시떨기의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열매를 막습니다. (22절)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가시떨기를 말씀하십니다. 이 밭은 앞의 두 밭과 조금 다릅니다. 씨앗이 자랍니다. 싹도 납니다. 겉으로 보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습니다. 왜입니까? 가시가 함께 자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가시를 두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째는 세상의 염려입니다. 염려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오늘의 문제처럼 끌어당기는 마음입니다. 내일을 붙잡느라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재물의 유혹입니다.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재물의 유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옵니다. 조금만 더 벌면, 조금만 더 성공하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욕심은 채워질수록 더 커집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중요해지고, 예배보다 일이 우선이 되고, 말씀보다 성공이 더 큰 가치가 됩니다. 그러면 말씀은 자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가시떨기에서 가장 오래 머뭅니다. 믿음도 있습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염려와 욕심을 제거하지 못하여 영적인 결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시를 뽑으라고 하십니다. 염려는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고, 욕심은 감사로 다스리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말씀은 비로소 자유롭게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는 서로 다른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마음의 모습입니다. 어떤 날에는 말씀이 쉽게 잊히는 길가가 되고, 어떤 날에는 시험 앞에서 흔들리는 돌밭이 되며, 어떤 날에는 염려와 욕심에 말씀이 막히는 가시떨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말씀이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고, 더 깊이 뿌리내리도록 훈련하며, 가시를 제거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땅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요?

Ⅲ.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마태복음 13:23)

이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살펴본 세 종류의 밭은 모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씨앗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없었습니다. 길가는 말씀이 빼앗겼고, 돌밭은 뿌리가 깊지 못했고, 가시떨기는 말씀이 자랐지만 끝내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좋은 땅은 어떤 사람입니까? 23절은 매우 간결하지만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예수님은 좋은 땅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좋은 땅은 말씀을 끝까지 듣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먼저 “말씀을 듣고”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행위를 말하지 않습니다. 순종하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언제나 듣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 10:17)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듣습니다. 뉴스도 듣고, 유튜브도 듣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러나 하루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적게 듣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땅은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예배 시간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삶의 자리에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둘째, 좋은 땅은 말씀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듣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듣고 깨닫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깨닫는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깨달음은 삶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마 7:24)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설교도 넘쳐나고, 성경 공부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경 지식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보십니다. 깨달음은 지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말씀이 생각을 바꾸고, 말이 바뀌고, 관계가 바뀌고, 생활이 바뀌는 것이 참된 깨달음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깨닫지 못한 말씀은 정보에 머물지만, 깨달은 말씀은 삶이 됩니다.

셋째, 좋은 땅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땅을 설명하시며 가장 중요한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결실하여” 씨앗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은 좋은 땅을 만나면 반드시 자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사람 안에 살아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 열매는 단순한 성공이나 물질적인 축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이 자라고, 기쁨이 자라고, 화평이 자라고,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 열매는 감출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나타나고, 직장에서 나타나고, 교회에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 전에 우리의 열매를 먼저 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숙은 얼마나 오래 교회를 다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느냐로 판단됩니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의미 예수님은 열매의 분량도 말씀하십니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비교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백 배를 맺었으니 더 훌륭하고, 삼십 배를 맺었으니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농부는 모든 나무가 똑같은 열매를 맺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포도나무는 포도를, 감나무는 감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서로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마다 은사가 다르고, 사명이 다르고, 맡겨진 분량이 다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동일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비교가 아니라 충성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이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에서 진실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네 종류의 밭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 종류의 사람을 정죄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네 가지 마음의 상태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날에는 길가처럼 말씀이 쉽게 사라집니다. 어떤 날에는 돌밭처럼 시험 앞에서 흔들립니다. 어떤 날에는 가시떨기처럼 염려와 욕심이 마음을 점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열매는 씨앗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마음 밭에서 자라난 씨앗이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시는 은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기경된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심겨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열매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여, 삶으로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삶 속에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결실을 이루실 것입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오늘도 동일한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는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말씀이 제 안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시고, 제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와 성령의 열매로 가득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그 은혜가 우리 모두의 가정과 교회와 삶 가운데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