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본문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서론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습니다. “올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붙들어야 흔들리지 않을까?” 새해는 결심의 시간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기준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많은 결심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계획은 세웠지만, 기준은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향은 있었지만 중심이 없었고, 열심은 있었지만 기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해 첫 주일, 우리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섭니다. “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의 취향이나 방식에 관한 질문이 아닙니다. 신앙의 출발점, 그리고 삶의 기준과 방향을 묻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말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 “성경을 다 몰라도 신앙생활은 할 수 있잖아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성경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 없이 믿는 하나님은, 과연 성경의 하나님인가?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감정과 여론, 상황을 기준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 결과, 신앙은 있지만 확신은 없고, 열심은 있지만 평안은 사라지며, 교회는 다니지만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해의 시작은 새로운 계획보다 먼저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말씀을 모르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신앙을 오해하게 되며, 결국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첫 주일에 우리는 이 질문을 다시 붙듭니다. “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본론
Ⅰ. 말씀을 잃을 때 나타나는 징후들 (디모데후서 3:1–4)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1) 바울은 막연하게 “세상이 나빠질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세의 특징을 아주 구체적인 인간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징후들은 교회 밖 세상보다 교회 안 신앙인의 모습과 더 많이 닮아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 나오는 모습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사람의 전형이 아니라, 성령의 변화를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 신앙인의 상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2–4절,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이 목록은 무신론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이렇게까지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신앙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성령의 변화는 멈춘 상태라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를 사랑하며 — 기준이 ‘하나님’에서 ‘나’로 이동한 상태: “자기를 사랑하며”라는 말은 자존감이 높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기 사랑’은 자기 중심성, 자기 우선성, 자기 합리화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준이 사라지고 자기 해석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죄를 죄라고 부르지 않고, 회개를 성장이라고 포장하며, 불순종을 상황 탓으로 정당화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나를 부인하는 자리에서 시작되지만 말씀이 사라진 신앙은 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갑니다.
둘째, 돈을 사랑하며 — 목적이 사라진 신앙: 말씀을 잃으면 인생의 목적이 흐려집니다. 그러면 수단이 목적이 됩니다. 돈, 성공, 안정, 영향력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문제는 소유 자체가 아니라 방향 상실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은 “왜 사는가”가 분명하지만, 말씀 없는 신앙은 “얼마나 가졌는가”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헌신은 계산이 되고, 섬김은 손익 분석이 되며, 신앙마저 투자 개념으로 바뀝니다.
셋째, 감사하지 아니하며 — 은혜 감각이 사라진 상태: 감사는 성령 충만의 열매입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은혜는 기억에서 사라지고, 권리는 당연해집니다. 그래서 잘되면 내 덕이고, 어려우면 남 탓이 됩니다. 감사하지 않는 신앙은 성령이 멈춘 신앙의 명확한 징후입니다.
넷째, 절제하지 못하며 — 성령의 열매가 사라진 상태: 갈라디아서 5장은 말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 절제니” (갈 5:23) 절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통치가 작동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말씀이 사라지면 성령의 통치도 약해집니다. 그 결과 감정은 제동장치 없이 분출되고, 말은 필터 없이 튀어나오며, 관계는 쉽게 무너집니다.
다섯째,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구절은 말세의 가장 무서운 징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는 신앙은 하나님을 ‘최우선’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밀어냅니다. 그래서 예배는 선택 사항이 되고, 말씀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로 미뤄지며, 신앙은 삶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이동합니다.
정리하면, 디모데후서 3장 1–4절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시대가 아니라 성령의 변화가 멈춘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현상의 원인을 한 단어로 정리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 (딤후 3:5) 능력 없는 신앙, 변화 없는 신앙, 열매 없는 신앙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말씀의 부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Ⅱ. 성경은 인생을 바로 세우는 네 가지 사역을 한다 (딤후 3:16)
사도 바울은 성경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이 사람의 인생 안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네 개의 동사로 아주 분명하게 정리합니다. 교훈 → 책망 → 바르게 함 → 의로 교육함, 이 네 단어는 단순한 기능 목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회복되어 가는 정확한 영적 과정이며,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질서입니다. 이 순서가 무너지면 신앙은 감정 중심으로 흐르고, 말씀은 선택적으로 소비되며, 인생은 자기 합리화의 구조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네 단어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회복 순서로 제시합니다.
첫째, 교훈 — 무엇이 옳은지 가르친다: 성경은 가장 먼저 기준을 세웁니다. 위로하기 전에, 격려하기 전에, “네가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성경은 먼저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오늘 우리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론이 기준이 되고, 감정이 기준이 되며, 개인의 경험이 진리가 되는 시대입니다. 이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시 19:7) 성경은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기준이 아닙니다. 영혼을 다시 살리는 절대 기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여기서 핵심은 성경의 교훈은 우리의 판단력을 키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을 내려놓게 만드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선 사람은 “내가 보기엔…”이라는 말을 줄이고, “주께서 뭐라고 하시는가”를 먼저 묻게 됩니다. 교훈이 사라진 신앙은 열심은 있어도 방향이 없고, 확신은 있어도 근거가 없습니다.
둘째, 책망 —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드러낸다: 성경은 위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먼저 틀어진 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고 삶이 도전받고, 익숙한 태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죄가 아닙니다. 회복을 위한 진단입니다. 히브리서는 말씀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히 4:12) 말씀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찌르지 않습니다. 숨은 병을 드러내기 위해 절개합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은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회개가 사라지고, 자기변명이 신앙 언어를 대신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책망은 사랑의 반대가 아닙니다. 책망은 사랑의 가장 깊은 표현입니다.
셋째, 바르게 함 —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다: 성경은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보게 하시되, 그 죄에 묶어 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은 반드시 다시 세우는 은혜로 이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사 1:18) 여기서 ‘바르게 함’이란 과거를 지워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방향을 다시 맞추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의인들의 길은 아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6) ‘아신다’는 말은 정보를 안다는 뜻이 아니라,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씀은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키고, 방황하던 인생을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넷째, 의로 교육함 — 지속적으로 훈련한다: 성경은 한 번 깨닫고 끝나는 책이 아닙니다. 감동 한 번 받고 덮는 책도 아닙니다. 삶 전체를 훈련하는 교과서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교육한다’는 말은 반복을 의미하고, 훈련을 의미하며, 삶의 습관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라고 했습니다. 의로 교육된다는 것은 완벽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말씀의 방향으로 계속 훈련받는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Ⅲ. 성경을 읽는 목적은 ‘정보’가 아니라 ‘사람’이다 (딤후 3:17)
사도 바울은 성경의 최종 목적을 매우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7) 여기에는 성경 읽기에 대한 오해를 단번에 바로잡는 중요한 기준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목적은 지식을 많이 쌓은 신자를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큰 착각 중 하나는 ‘성경을 아는 것’과 ‘성경에 의해 빚어지는 것’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씀을 잘 설명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인용하지만 관계는 거칠며, 정답은 말하지만 순종은 미루는 신앙에 머뭅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성경은 정보를 쌓기 위한 자료집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라고 말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 — 소유가 아니라 소속의 변화: 본문에서 바울이 사용하는 표현은 ‘유능한 신자’도 아니고 ‘성공한 신앙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주로 하나님께 특별히 붙들린 사람들, 즉 하나님께 속한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모세, 사무엘, 엘리야와 같은 인물들이 이렇게 불렸습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모든 성도에게로 확장합니다.
이는 중요한 선언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능력이나 성취 이전에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고전 6:19–20)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 이전에 내 삶의 주인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말씀 위에 선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인생의 최종 결정권자가 자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 선택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온전하게 하며” — 완벽이 아니라 ‘바로 서 있음’: “온전하게 하며”라는 표현도 자주 오해됩니다. 이 말은 흠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신앙인이 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함’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삶의 방향이 맞춰진 상태, 중심이 바로 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 위에 선 사람은 인생의 모든 문제가 즉시 사라지지 않아도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셋째,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 — 행함으로 이어지는 말씀: 바울은 성경의 목적을 ‘선한 일을 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한 일이 말씀을 읽은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말씀은 머리에서 끝나도록 주어지지 않았으며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주어졌습니다. 말씀을 읽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아직 소비된 정보에 머물러 있을 뿐, 삶을 움직이는 능력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말씀의 목적은 감동이 아니라 순종이며, 깨달음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말투가 달라지고, 판단의 기준이 바뀌며, 관계에서 선택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재정렬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말씀’의 역사입니다.
넷째, 말씀으로 사는 삶 — 예수님의 선언: 예수님은 광야에서 말씀의 본질을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이 말씀은 금식 중인 예수님의 특수한 상황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의 삶의 원리를 밝히는 선언입니다. 떡은 육체를 살리지만 말씀은 인생을 살립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당장은 유지될 수 있어도 결국 방향을 잃습니다. 반대로 말씀 위에 세워진 삶은 고난 중에도 무너지지 않고, 부요함 속에서도 교만해지지 않으며,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결론
성경은 읽으라고 주신 책이다
![]() |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2026년 한 해를 말씀 위에 세우는 결단으로 시작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지키고, 관계를 살리며, 선택을 바로잡고, 끝까지 인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이미지 묵상]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https://missionews.co.kr/data/images/full/14265/5-17.jpg?w=196&h=128&l=50&t=40)
![[이미지 묵상]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https://missionews.co.kr/data/images/full/14264/9-27.jpg?w=196&h=12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