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제목
은혜를 잃은 이후에야 보이는 은혜

본문
욥기 29장 1–7절

서론

2025년의 12월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이 시점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봅니다. 잘한 일보다 아쉬운 장면이 먼저 떠오르고, 가졌던 것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잃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가족이 곁에 있었던 것,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까지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모두 하나님이 지켜주신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 욥기 29장은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를 잃은 이후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은혜의 실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욥은 반복해서 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때에는…” 이 말은 반드시 지금과의 대비를 전제로 합니다. “그때에는”이라는 고백 속에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정직한 탄식이 들어 있습니다.

본론

Ⅰ. “그때에는” — 하나님이 중심이던 삶

1. “하나님이 나를 보존하시던 날들”

“나는 지난 세월과 하나님이 나를 보존하시던 때가 다시 오기를 원하노라.” (2절) 욥은 과거를 성공의 시절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시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존하시던 날들.” 여기서 ‘보존하다’는 말은 형통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욥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그때는 문제가 없어서 괜찮았던 게 아니라, 문제가 와도 내가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연말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올해 무엇을 잃었는가 이전에,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었는가를 돌아보길 원합니다.

2. “등불 아래 살던 인생”

“그때에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었고 내가 그의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 속을 다녔느니라.” (3절) 욥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때도 어둠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둠은 있었지만, 등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등불은 문제를 없애지 않습니다. 등불은 길을 잃지 않게 합니다. 다음 한 걸음을 보게 합니다. “내 머리에 비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인도가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지속적인 동행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욥의 인생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미래가 다 보여서가 아니라, 지금 가야 할 길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원기의 비밀은 환경이 아니라, 장막에 부어진 기름 부음이다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욥기 29:4) 성경에서 기름 부음은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표지이며, 그 삶을 붙드시고 사용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기름이 부어질 때 나타나는 변화는 분명합니다.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습니다.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습니다. 상황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버틸 힘이 생깁니다. 욥의 원기는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젊음에서가 아니라, 형통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장막, 곧 일상의 삶에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름 부음이 있는 삶은 속은 고요하고, 중심은 흔들리지 않으며,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원기는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낳는 열매입니다.

4. “전능자가 중심이던 삶”

“그때에는 전능자가 나와 함께 계셨으며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5절) 욥은 하나님을 “도움 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전능자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의 중심이셨다는 선언입니다. 그 결과로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다”는 말은 존중과 질서, 보호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둘러섭니다.

5. “메마른 자리에서도 흐르던 은혜”

“그때에는 젖으로 내 발자취를 씻으며 바위가 나를 위하여 기름 시내를 쏟아 냈으며” (6절) 이 표현은 은유입니다. ‘젖’은 생명과 풍요, ‘발자취를 씻음’은 삶의 길목마다 은혜, ‘바위’는 메마름과 불가능, ‘기름 시내’는 넘치는 공급과 기름 부음입니다. 바위에서 기름이 흐른다는 것은 인간의 계산을 넘어서는 은혜입니다. 욥은 말합니다. “그때의 풍요는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흘려보내신 은혜였다.”

6. “공적 자리도 은혜의 열매였다”

“그때에는 내가 성문에 나가서 앉으며 거리에 자리를 베풀었었노라.” (7절) 성문은 명예의 자리가 아니라 책임과 판단의 자리입니다. 욥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지켜 낸 사람, 자리를 내준 사람이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셨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 열매였습니다.

Ⅱ. “이제는” — 은혜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현재

욥의 고백은 29장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욥기 29장이 “그때에는”으로 시작되는 은혜의 회고라면, 욥기 30장은 “그러나 이제는”으로 시작되는 현실의 진단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젊은 자들이 나를 비웃는구나.” (욥기 30:1) 이 한 문장은 욥의 현재를 단번에 보여 줍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 중심이셨고, 삶이 붙들려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질서가 뒤집힌 상태입니다.

1. 존중에서 조롱으로 —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 (30:1–8)

욥은 29장에서 성문에 앉아 공동체를 책임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30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아비들은 내 양 떼의 개와도 같지 아니한 자들이니라.” (30:1) 이 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가치 질서가 붕괴되었음을 탄식하는 고백입니다. 과거에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잠잠했는데, 이제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사회적 지위의 하락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에서 밀려나면, 사람의 평가가 정체성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존중받던 사람이 무시당하고 영향력 있던 사람이 투명 인간이 되고 신앙의 무게가 가벼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상태입니다. 욥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2. 공동체의 붕괴 — “둘러섬”에서 “고립”으로

29장에서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젊은이들이 나를 둘러 있었으며.” 그러나 30장에서 그는 정반대의 고백을 합니다. “이제는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었으며 그들이 나를 싫어하여 멀리하고…” (30:9–10) “노래가 되었다”는 말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욥을 중심으로 둘러서던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사람들은 보호하듯 둘러서지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하나씩 등을 돌립니다. 욥의 고통은 외로움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의 보호막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신앙이 약해질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의외로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3. 등불의 상실 — 길을 잃은 내면

욥기 29장에서는 “그의 등불로 말미암아 암흑 속에서도 다녔다”고 말했지만, 30장에서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가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고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구나.” (30:26)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여전히 빛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다려도 빛이 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기도해도 길이 보이지 않고, 말씀을 읽어도 방향이 분명하지 않고, 선택의 순간마다 혼자 서 있는 느낌, 이것이 욥의 지금입니다. 욥의 고통은 고난의 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체감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4. 기름이 마른 영혼 — 내면의 붕괴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들끓고 가만있지 아니하며 고난의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30:27) 29장에서 욥은 “원기 왕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쉼이 없는 영혼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기름 부음이 말랐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겉으로는 버티고 있지만, 속에서는 마찰이 커지고 마음은 조용히 소모되고 있는 상태는 문제가 많아서 지친 것이 아닙니다. 기름이 마른 상태에서 계속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자동차는 아무리 좋은 엔진을 가지고 있어도 엔진오일이 없거나 오래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결국 소음이 커지고, 열이 쌓이고, 마침내 멈추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점입니다. 엔진이 고장 나서 멈추는 경우보다, 오일이 메말라서 엔진이 망가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5. 찬양에서 통곡으로 — 신앙 언어의 붕괴

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수금이 애통이 되었고 나의 피리가 통곡이 되었구나.” (30:31) 수금과 피리는 찬양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통곡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찬양할 힘이 사라진 상태의 고백입니다. 신앙이 무너질 때 가장 무서운 순간은 기도가 멈출 때가 아니라, 기도의 언어가 울음으로만 남을 때입니다. 욥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결론

Ⅲ. 욥의 말년, 은혜로 완성된 인생 (욥기 42장)

그러나 성경은 욥의 이야기를 30장에서 끝내지 않습니다. 회복의 시작은 설명이 아니라 만남이었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던 것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42:5) 그리고 하나님은 욥의 말년에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42:10) 이 갑절은 보상이 아니라 욥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지우지 않으셨고, 그 시간을 은혜로 완성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때에는”은 과거로 도망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중심이었던 삶을 기억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은혜는 잃고 나서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은혜를 다시 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 때로는 이전보다 더 깊게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2025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다시 주님이 제 삶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은혜로 시작하시고, 은혜로 붙드시며, 은혜로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해의 끝에서 욥의 고백으로 제 삶을 비추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당연하게 여기던 모든 순간이 주께서 붙들어 주신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다시 제 삶의 중심에 오셔서 메마른 장막에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어둠 속에서도 주의 등불로 길을 잃지 않게 하시고, 제 인생의 끝도 욥의 말년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완성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