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번에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동일한 저자인 누가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의 선교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 마디로 누가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예수님의 선교는 교회공동체의 선교와 함께 서로 깊은 연속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선교가 교회공동체의 선교와 함께 연속성을 나타내려면 무엇보다도 ‘성령의 역할’에 더 집중하고 조명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미 누가복음에서의 성령님은 사가랴, 엘리사벳, 그리고 시므온 같은 중요한 인물들에게 예언적으로 영감을 주어 예수님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예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바 있었다(눅 1:41~42, 67-79 ; 2:25~35). 또한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 같은 형체로 성령께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눅 3:21~22). 그리고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그분의 신적 사명을 공적으로 선언하실 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신 것을 본다(눅 4:18, 참고 사 61:1).
누가는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선교에 대해 특별히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선교가 성령의 인도하심과 권능으로 나타났고, 이어서 성령께서 초대 신앙공동체에도 계속하여 역사하신 것같이(행 2장),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와 지상교회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사도행전에서는 처음부터 당연히 성령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에게 나아와 묻기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행 1:6)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런 회복이 일어나는 ‘때’보다는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꾸어서 강조하신 것을 본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고 말씀하신 부분에서 ‘시기’보다는 ‘방법’을 강조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주안점은,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로마로부터 언제 해방되는가라는 제자들의 ‘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보다는 성령이 임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시작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그리고 그와 같은 회복을 위해 제자들의 역할과 사명에 역점을 두시고 있다.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시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는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에서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가 열방을 비추는 빛으로써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1~4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말씀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에서 처음부터 성령의 임하신 사건을 다룬 목적은 복음서의 예수님의 선교에 이어 초대 신앙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 즉, 선교사역을 위해 존재하며, 이것을 감당하려면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이 가능함을 말씀하려는 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강림 사건을 흔히 방언의 은사에 대해 강조한다든지, 단순히 성도의 신앙 성장이나 성숙을 위하는 일과 연관 짓는다면 저자의 기록 목적과는 동떨어진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에 대해 선지서 요엘서를 통한 예언을 인용하면서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고 말세의 복음전파를 위해 성령의 역사가 더욱 절실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누가는 사도행전 곳곳에서 성령의 역사에 대해 구구절절 강조하고 있는데, 너무 많이 강조하므로 일일이 다 거론하지 않겠다. 사도행전을 가리켜 일명, ‘성령행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성령께서 인도하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는 아예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의 구속 역사가 초대 신앙공동체에 이어진 것 같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교회공동체의 역사와 연속성을 밀접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지상교회가 열방을 향해 선교적 공동체로 거듭날 때만이 그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은 단순히 개인 구원 역사로만 강조되어서는 안 되며, 교회공동체의 선교적 역사와 연속성을 가질 때 그 의미가 드러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선교와 모든 사역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이 있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초대 신앙공동체의 선교 사역에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였던 것과 같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위해서는 오늘의 교회와 모든 사역 위에도 당연히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이 함께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오늘날과 같이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엔 더욱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특히 모든 영역에서 IT 기술과 인공지능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초현대 사회일수록 우리가 더욱 의지할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것이다.
[말씀묵상기도]
1. 예수님의 선교와 초대공동체 모두가 성령의 인도와 능력을 강조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성령께 의존하는 사역이 되게 하소서.
2.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초대 공동체의 사역이 모두 성령의 역사로 연결된 사실을 강조했듯이 오늘날 우리의 사역에서도 이와 같은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시는 역사에 더욱 민감하게 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주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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