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우리는 동일한 저자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속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예수님의 선교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렇게 서로 연결하여 살펴볼 때 연속적이고 총체적인 선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사도행전에서만 드러난 예수님의 선교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한다.
복음서 저자 중에 오직 누가만이 예수님의 이야기의 속편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누가는 그 속편을 사도행전에서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먼저 쓴 글’이란 바로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가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권능을 받은 그의 부활공동체를 통해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지속적으로 밝히려 한다고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이미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연이어 사도행전에 기록한 교회 공동체의 실제적인 증언을 통해 계속 연결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누가복음에서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총체적인 선교가 사도행전에서도 바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 교회와 사도들이 예수님이 하신 구원 사역과 동일한 종류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그(예수님)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동일하게 행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사도들은 △좋은 소식(복음)을 선포하고(2:14~41, 5:42, 8:4~5, 12, 10:42, 11:19~21, 13:16~41)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2:42, 5:21, 11:26, 13:1, 15:35) △병자들을 고치고(3:1~10, 5:12, 15~16, 8:6~8, 9:32~43, 19:11~20) △악한 마귀의 권세와 맞서 싸웠다(5:16, 8:7~24, 13:6~12, 19:12~20)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라는 면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 증인’이라는 말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증인이어야 함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동일한 저자가 쓴 누가복음 24장 48절에서도 이미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한 말씀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이미 우리가 누가복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선교의 개념을 모두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단순히 말씀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교처럼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증인이 되는 것을 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도행전에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선교의 개념을 지적해 주는 데는 어디인가? 그것을 잘 표현해 준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 42~47절까지의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특징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 데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첫째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둘째는 그 공동체의 삶은 전염성 혹은 큰 영향력을 가지는데, ‘온 백성(타 지역 외부인)으로부터도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역사이다. 셋째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단이나 믿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부활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전하는 증인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교회는 태생적으로 그 존재 자체가 선교이고 그 본질이 선교 공동체’임을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을 때 교회 공동체와 성도들의 정체성은 바로 선교에서 찾아야 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도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그 이후 교회에 핍박이 도래함을 우리는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기록이 나중에는 안디옥교회의 등장(13장)과 함께 말없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선교가 가난하고 눌린 자들을 위한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듯이, 사도행전에서도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초기 그리스도의 공동체 내에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라고 말한 구절(2:45)과 사도행전 6장에서 ‘구제사역’에 대해 말씀한 내용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누가복음에서의 약하고 궁핍한 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역이 사도행전의 초대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도 계속하여 의로운 행동과 사역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더 광범위하게 사회적 변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예를 든다면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지역의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바울의 설교로 인해 그 도시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19:23~41).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인적인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반대하는 사회적, 경제적 제도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누가복음에서와 같이 사도행전에서도 예수님의 총체적인 선교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곧 죄 사함 받는 역사와 병든 자가 치유되는 역사와 죄와 사탄과 마술에 얽매인 자들을 굴복시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더 나아가서 사회적으로도 변화의 역사가 확장되어 놀랍고 강력한 하나님의 선교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은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선교가 오늘날에도 우리의 지역교회들 가운데서도 강력하게 일어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말씀묵상기도]
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속성의 개념에서 사도행전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선교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소서.
2. 결국 우리의 선교 사역들이 단순히 말씀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예수님의 선교와 초대 공동체의 선교와 같이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선교가 되게 하여 주소서.
김영휘 목사/선교사
서울남교회 은퇴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운영위원
GMS 명예(순회)선교사
GMS 이주민선교협의회 자문위원
청년인턴선교 지도위원
시니어선교한국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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