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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의 무적의 미 제24사단 장병들을 인민군이 보면 도망갈 것이라고 자신한다. 윌리엄 딘 미 제24사단장은 미군정 시절 군정장관을 지낸 한국을 지극히 사랑하는 장군이다. 그는 스미스 특수대대를 선발대로 한국전에 투입했다.
7월 4일 오산 죽미령 고개에 양쪽으로 4시간에 걸쳐 참호를 파고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비 오는 7월 5일 오전 7시 수원 쪽에서 적의 전차가 나타났다. 미군은 대전차로 적의 탱크를 명중시켰다. 주춤하고 탱크가 그대로 다가온다. 인민군은 미군과의 초전에서 간단하게 미군 진지를 돌파했다. 미군은 6시간 동안 적을 제지하며 540명 중 150명이 전사하고, 72명이 포로가 되고 나머지는 간신히 탈출했다.
다급해진 미군은 ①태평양의 해군함정을 부산으로 투입시키고 ②유엔에 참전을 요청한다. 7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의 작전권을 유엔사령관 맥아더에게 이양한다. 전선은 빠르게 남하한다. 맥아더는 일본에 있는 미8군을 대구로 투입하고 워커 8군단장은 미 24사단장 딘 소장에게 대전에서 반드시 적을 막으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대전에서 미군이 인민군에게 대패한다. 탱크를 막는 무반동총 사수가 전사하자 사단장 딘 소장이 무반동총을 메고 쏘다가 적에게 쫓겨 산속에서 포로가 되었다.
인민군은 무섭게 돌격해 왔다. 맥아더는 2차 대전 경험자인 전역병을 모집하고, 미 해병사단을 배에 싣고 오면서 교육하고 훈련한다. 전선의 위기를 느낀 워커는 7월 26일 오후 울산, 부산의 워커 라인과 한국 정부 및 사령부의 제주도로의 철수를 건의한다. 7월 27일 10시, 맥아더의 전용기 바탄호가 대구공항에 내리고, 미8군 사령부에 오성기가 계양된다.
워커가 전시 상황을 심각하게 설명하며 철수를 건의한다. 맥아더가 4시간을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내 생애 어떤 전쟁보다 이 전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사방이 막혔지만 하늘이 뚫려있다. 땅에서 방법이 없으면 하늘에 방법이 있다.” 울산, 부산 라인을 그렸던 워커는 맥아더의 열정에 감동하며 낙동강 전선에서 죽음을 각오한다.
맥아더는 포항으로 미국의 자존심 제7기병대를 투입한다. 전방부대의 전멸을 막기 위해서 오키나와에서 30초마다 2대의 폭격기가 쉴 새 없이 인민군의 지휘부와 주력부대를 강타하고, 15분마다 B29 폭격기가 인민군의 보급창고, 유류고, 주요 공격부대를 폭격한다. 낙동강 전선 최후의 방어선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미군이 115km의 남북전선에 미 최강 제1기병대와 최신예 무기를 투입한다. 한국군이 135km의 동서전선을 병력과 무기가 열세지만 무한 애국심으로 버틴다. 포항, 안강, 영천, 다부동에서 뺏고 뺏기고, 또 죽고 죽이며 피아간에 무수한 사람이 죽는다. 훈련받지 못한 신병이 죽고, 군번 없는 학도병이 죽고, 중년의 A-특공대 지게부대가 전선을 지키며 버텨낼 때, 미군의 공중 지원으로 아군이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한다.
마산 앞 바다의 미 해군함정에서 정확한 함포사격이 시작되었다. 인민군은 어디서 포탄이 날아오는지도 모르고 맞아 죽었다. 워커 장군은 세계최강 미 해병기병대를 낙동강 돌출부에 투입한다. 미군은 다시 점령한 고지에서 미 해병대원이 무선 줄로 팔을 뒤로 묶인 채, 머리에 총을 맞아 죽고 목이 잘려 죽은 것을 본다. 전우의 시체를 보면서 이 전쟁은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니라, 나의 생명을 지키는 나의 전쟁으로 각오를 새롭게 한다.
김일성은 8.15 광복절 기념을 서울에서 한다고 호령하고 다그치면서 전 병력을 투입하는 7, 8월 총공세를 실시한다. 하지만 하늘에서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지상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 계획은 멀어져만 갔다. 정일권 육군총장은 워커에게 “포항과 안강이 떨어지면 나는 여기서 죽는다. 탱크와 포를 달라. 반드시 싸워서 이기겠다”고 말했고, 워커는 장비와 탱크 소대를 보급한다.
8월 13일 유난히도 날씨가 더웠다. 국군1사단 지역으로 적의 3개 사단이 탱크 34대와 각종 포 670문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 견디다 못한 1개 대대가 후퇴했다. 인접 미군 연대장이 1사단장을 호출한다. “너희가 후퇴하면 우리가 고립된다. 이래도 되느냐?”
백선엽 장군이 후퇴하는 장병들을 막아섰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내가 앞장선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나를 따르라!” 힘낸 장병들이 다시 전세를 바꿨다. 8월 16일 다시 적의 4만 부대가 1사단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왔다. 유엔사령부는 융단폭격을 생각해 냈다.
98대의 B-29폭격기가 26분간 960톤의 폭탄을 퍼부었다. 적의 병참과 전선 사령부를 초토화시켰다. 인민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인민군 3사단은 1만 명이 죽고 300명이 남았다. 무제한의 인간 소모전에 회의를 느낀 인민군 포단장 정봉욱 대령이 투항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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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목사(㈔한국보훈선교단 이사장, 6.25역사기억연대 역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