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려면 먼저 ‘듀랜드 라인’(Durand Lin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듀랜드 라인은 약 2,640km에 이르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다. 영국과 러시아가 영토 패권을 놓고 80년 가까이 경쟁하는 ‘그레이트 게임’의 와중에 영국의 점령 아래 친영국계의 아프간 왕은 1893년 남부지역을 내놓으며 듀랜드 라인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1914년 국경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내어준 영토가 현재의 파키스탄 영토 절반에 가깝다. 이로써 당시 영국령인 인도로 남하하는 러시아를 저지하는 효과를 얻었다. 문제는 1947년 인도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이 국경 협정을 계승한 반면, 아프간은 영국령 인도가 소멸한 이상 듀랜드 라인은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영토가 어느 나라에 속한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어느 나라 사람이 살고 있느냐가 현실적인 지배권이었고, 결국 듀랜드 라인 북쪽과 남쪽에 살고 있는 아프간의 파슈툰족이 자치권을 갖고 거주해 왔다. 소련의 남하를 막으려던 영국은 인도의 독립(1947년)으로 철수하였고, 1979년 12월 소련이 기어코 아프간을 침공하자, 이를 막으려고 새롭게 나선 곳이 미국이다. 군사를 동원할 명분이 없는 미국은 CIA를 통하여 파키스탄 정보부(ISA)를 지원하고, 파키스탄 정보부는 듀랜드 라인 남쪽 지역의 파키스탄에 거주하는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 이슬람 신학생들에게 무기를 쥐어주며 소련에 대항할 것을 독려한다. 심지어 그들에게 개인화기로 스팅어미사일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학생들이 파슈툰어로 ‘탈립’이고 ‘반’은 복수로, ‘탈레반’(학생들)이 형성된다. 그러나 탈레반이 자신들을 스스로 부르는 명칭은 탈레반이 아니라, 1996년부터 줄곧 ‘이슬람 연맹 아프가니스탄 정부’(Statement of 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였다. 또 탈레반 중 전사들을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용사)으로 부른다.
탈레반은 비밀리에 미국의 화력과 정보 지원을 받아 전쟁을 하였고, 10년 전쟁에 결국 소련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으며 1989년 소련은 철군한다. 아프간에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정전 불안과 정부의 공백 속에 군벌들이 정권을 쟁취하려 내전을 벌였고, 군벌들은 카불 시내를 폭격해 수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 같은 혼란 속에 탈레반은 전국을 빠른 속도로 장악했다. 이른바 마약 군벌들을 내치고 199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집권 뒤에는 탈레반의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이 많은 문제를 만들고 국제사회는 경악하게 된다.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보통의 이슬람과 확연하게 다르다. 현재 이슬람의 꾸란은 번역서가 아닌 의미서이다. 꾸란 겉장을 눈여겨보면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라고 쓰여 있다. 원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번역했다는 뜻이다. 탈레반은 원본을 따른다. 그것이 근본주의인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여라’고 하신 말씀에 실제는 많은 사람을 살려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전쟁용어를 당시의 문화적 용어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반은 코란 원본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결국 이들의 무지는 9.11 테러로 이어지고, 집권 4년 만에 정부를 미국에 내어주고 도망, 테러라는 비열한 방식으로 숨어서 국외로 마약을 밀거래하는 집단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세계 마약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는 국제 마약집단으로 변모하지만, 그들은 ‘이슬람 연맹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20년간 유지해 왔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탈레반은 대략 2천 명 규모의 조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마약을 판매한 돈으로 자살폭탄 테러 지원자도 받고, 부락을 찾아가 부락 주민을 동원하여 모두 탈레반 이름으로 테러를 저지르게 하는 ‘비즈니스’를 했다. 그래서 탈레반의 숫자는 고무줄처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느 시골의 평범한 농부도 예전에 동원되었던 경험을 내놓으며 언제든 탈레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아프간은 사촌 간 결혼을 한다. 그래서 한 집안이 적으면 2천 명, 많으면 6천 명 정도다. 한 집안 건너면 탈레반과 친척이고 친구라는 뜻이다. 파슈툰족은 더더욱 탈레반과 친척이고 친구가 되는 셈인데, 아프간 인구의 42%가 파슈툰족이다.
2021년 8월 15일 아프간 정부를 장악한 탈레반은 국가발전을 위한 성명서(바로보기)를 발표하였다. 내용은 안전을 보장할 것이니 나라를 떠나지 말고 평범한 일상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 13개의 항목 중 2개는 무자헤딘이 경솔하게 시민들을 위협하거나 재물에 손대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탈레반 정부가 무자헤딘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에게 알리는 성명서로 무자헤딘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에게는 안전을 홍보하는 동시에 무자헤딘에게는 경고하는 의도라 볼 수 있다.
성명서에서 특이한 부분은 무자헤딘 이름을 남용하던 사람들을 신고하라는 내용이다. 이는 그동안 가짜 탈레반이 성행했다는 반증이다. 2007년 가즈니에서 한국인 23명을 납치했던 탈레반도 가짜 탈레반이었다. 테러집단에 의해 납치사건이 벌어지면 비밀리에 72시간 내 구출 작전을 펼치는 것이 국제 사회의 기본 룰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실시간 생중계를 하였다. 결국 방송을 통해 납치사건을 알게 된 탈레반이 가짜 탈레반으로부터 인질을 넘겨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가짜 탈레반들은 앞으로 현 정부의 저항 세력으로 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된다.
탈레반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강탈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고 성명을 내놓고 있지만 그런 능력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20년간 마약 장사와 테러를 일삼던 집단이 한 손에 들려있는 총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총으로 권력을 쟁탈한 집단이 총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통치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이다. 곳곳에 적(?)들이 있는 도심 속에서 총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총을 겨누고 살아야 한다.
이들이 든 총은 더 큰 그림에서 보면 중국과 파키스탄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부가 물러난 때 필자가 방문한 도심은 전기가 없었다. 호롱불을 켜기 위해 성냥을 구매했는데, 특이한 것은 성냥에 ‘Not made in Pakistan’(파키스탄 제품이 아님)이라는 인쇄가 있었다. 이 성냥은 2001년 전까지의 탈레반 정부 시절에 사용되던 성냥으로,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관계를 설명해 준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파키스탄 영토의 절반이 아프가니스탄 영토이고, 탈레반 정부가 이들을 공격할 명분은 뚜렷하다. 이슬람의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중국도 마찬가지의 명분을 갖는다. 총구는 파키스탄과 중국을 향하지만 방아쇠는 당기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파키스탄과 중국은 안전비용 명분으로 탈레반 정부에 넉넉한 지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교묘한 정치적인 예상이라고 치부하겠지만, 이런 방식은 아프가니스탄 문화의 일부이고 특별한 것이 아니다. 테러와 전쟁이 끊임없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테러가 없다는 것은 넉넉한 안전비용을 테러단체에 상납한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외골수이고 원리주의에 빠진 이슬람 근본주의 탈레반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총을 겨누고 외치는 평화를 믿고 그들과 포옹을 할 것인지, 다시 총을 들고 쳐들어갈 것인지 누구도 해답을 찾기 어려운 형국이다. 그들은 이슬람 신학교를 다닌 것, 그리고 테러, 전쟁만 해보았다. 4년의 통치 경험도 정치가 아닌, 이슬람 원리주의를 전도하던 종교집단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이들을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몸에 폭탄을 매고 자살 테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먼저 변해야 한다. 20년 전 인종청소를 하던 탈레반이 평화를 주장하는 탈레반으로 변한 이유는 지금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탈레반이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아프간 국민 가운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가정해보자. 탈레반 정부는 다시 그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교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아프간 엑소더스’로 빠져나오는 난민들은 복음을 갖고 아프간으로 돌아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20년의 기회를 놓친 한국교회는 이번 아프간 대탈출의 난민들을 향한 ‘대추수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의 새로운 직업은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을 택한다는 농담이 있다. 그만큼 처음 만나는 사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집과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춥고 배고플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이웃국가의 행인이 아니고, 이유 없이 만 리를 날아와 따뜻한 차와 빵을 들고 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꿈꿔본다.
장영수 선교사
현 A-PEN 사무총장
전 주한아프가니스탄대사관 상무관
전 KWMA 미래한국선교개발센터 센터장
전 KWMA DR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