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오픈도어가 북한을 위한 집중기도를 요청하며 국제오픈도어 설립자인 브라더 앤드류(93)가 그동안 공산권 국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사역해왔는지 소개했다.
브라더 앤드류는 공산주의 국가에 성경을 전달하기 위해 오픈도어 사역을 처음 시작했고, 지금도 최악의 공산국가로 남은 북한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브라더 앤드류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선교사 훈련학교 졸업반이던 1955년, 그 학교 지하실에서 한 흥미로운 잡지를 발견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세계 사회주의 청년대회’를 홍보하는 4색 인쇄물이었다.
2, 3년마다 큰 청년대회가 열리는 지명은 그에게 매우 생소했고, 닫힌 장소로 들렸다. 브라더 앤드류는 행사 주최 측에 편지를 보냈다. “행사에 참가하고 싶은데,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내가 가도 됩니까? 만일 내가 가게 된다면 나는 크리스천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대를 접었던 답장이 도착했다. “환영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와도 됩니다. 원하는 대로 행동하셔도 됩니다.”
그는 성경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성경을 기증하는 선교회에 복음서, 전도소책자, 신약성경 등을 여러 공산주의 국가 언어로 주문하고 여행을 준비했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브라더 앤드류는 공산주의 청년대회 페스티벌에 참가해 마지막 행진을 보면서 성경의 관점을 떠올렸다. 그는 “거대한 행진은 아주 군사적이고, 단호하고, 공격적이고, 외면상 매우 강했다”면서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들을 보며 ‘너희도 무릎을 꿇게 될 거야, 동무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때 브라더 앤드류는 요한계시록 3장 2절 말씀(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을 읽고, 자신이 크리스천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가야 할 지는 몰랐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속에서 불타올랐다”고 했다.
그는 오랜 친구인 스테파노프와 함께 교회가 없는 불가리아 플로프디프 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 도시를 노예로 삼고 있는 압제와 어두움의 세력과 무신론, 핍박과 독재 등에 대적하여 기도했다. 또 예수님이 마태복음 12장 29절에서 가르쳐주신 대로 ‘악한 영과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여 강한 자를 결박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사람들의 영혼과 교회의 설립을 위해 기도했다.
구소련을 위한 기도는 7년간 이어졌다. 오픈도어는 밤낮 쉬지 않고 돌아가는 3개의 ‘기도 체인’이 있었다. 각 기도 체인에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하루에 적어도 10분씩 △소련에 새로운 체제가 세워지고 △수감자들을 가두고 있는 문이 열리며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기회가 생기고 △신자들이 강건해지도록 기도했다. 또 무신론과 압제 세력에 대적하여 기도하고, 교회의 적들을 권력층에서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셨다.
한국오픈도어는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졌듯이 북한의 공산주의와 우상숭배체제도 반드시 무너질 것을 믿는다”라며 “현재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보호와 필요의 공급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오픈도어는 1953년 한국전쟁 종전 이후 북한에 약 15만 명의 기독교인이 남았고,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대규모 탄압을 받았으나 현재 30만 명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탄광촌 등 오지로 추방된 기독교인 중 생존자와 그 후손들, 또 고난의 행군 이후로 강을 건넜다가 복음을 전달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성도 등을 포함하며, 5만~8만 명의 기독교인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