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의 신앙고백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본문
미가서 7:7–20
서론
Ⅰ. 미가서의 자리
선지자 미가는 모레셋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남서쪽 시골 출신이었지만, 그의 눈은 당대 이스라엘의 수도와 권력 중심부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의 시대는 요담–아하스–히스기야로 이어지는 남유다의 격동기였고, 북이스라엘은 이미 아수르의 군대 앞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왕하 17:6).
미가는 사마리아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예루살렘의 타락 또한 결코 예외가 아님을 선포합니다(미 1:1–9).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정치적 고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악을 꾀하고, 백성들이 서로를 해하며, 가정이 분열되고, 사회 전체가 무너져도, 미가는 외칩니다.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본다”(7:7). 오늘 이 말씀은 혼란과 불신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와 교회, 그리고 우리의 가정에 던지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본론1
Ⅱ. 열매 없음과 사회적 타락의 재앙 (7:1–6; 2:1–2; 3:1–4)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7:1)
1) 열매 없음의 재앙 ― 언약을 저버린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신명기 28장은 분명히 약속합니다. “네가 내 말을 순종하면 땅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모든 것이 복을 받으리라” (신 28:4). 그러나 불순종하면 “네가 씨를 많이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포도원을 심을지라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신 28:38–39). 미가는 바로 이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밭은 있는데 곡식이 없고, 포도나무는 있는데 포도주가 나오지 않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이는 단순한 흉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언약을 깨뜨린 백성에게 내리신 심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업들은 경쟁하듯 성장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열매가 없습니다. 집은 점점 커지고 화려해지지만, 그 안에 사랑과 신뢰의 열매가 사라졌습니다. 교회도 수많은 프로그램과 활동은 있지만, 성령의 열매(갈 5:22–23)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열매 없음의 재앙은 오늘 우리의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2) 죄의 계획성과 권력의 남용 ― 구조적 악
“재앙이 있을진저,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악을 행하려고 마련하다가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실행하는 자는 그 손에 힘이 있음이라.” (2:1) 죄는 우발적이지 않습니다. 충동의 문제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구조적입니다. 밤에는 남을 해칠 방법을 궁리하고, 아침에는 권력을 앞세워 그대로 실행합니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산업을 강탈하도다.” (2:2) 농경 사회에서 밭과 집은 단순한 재산이 아닙니다. 밭은 가문의 유산이자 생존의 터전, 집은 가족의 정체성과 안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을 강탈하는 것은 곧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무너뜨리는 죄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힘 있는 자가 법을 이용하여 땅을 차지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의 노동을 착취합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 속 탐욕과 불의가 미가 시대와 무엇이 다릅니까?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자가 양을 먹이는 대신 양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를 돌보는 대신 성도를 이용하고, 헌신과 봉사를 착취하는 구조적 죄악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미가가 고발한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3) 지도자의 부패와 하나님의 얼굴 가리심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3:1) 그러나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며,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먹는”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3:2–3). 하나님께서 이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한만큼 얼굴을 가리시리라.” (3:4)
가장 큰 심판은 기도의 응답이 끊기는 것입니다. 곡식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권력을 잃어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면, 그 인생은 끝입니다. 오늘 한국 사회의 위기는 경제 위기도, 정치 혼란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사회, 하나님이 외면하신 사회라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가정의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의 위기도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가 떠난 것이 더 큰 재앙입니다.
4) 신뢰가 무너진 사회와 가정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도 내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7:5–6) 사회적 불신이 가정 안까지 파고듭니다. 이웃을 믿을 수 없고, 친구를 의지할 수 없고, 심지어 부부와 부모 자녀 관계까지 원수로 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시며, 말세의 징조라 하셨습니다(마 10:35–36). 오늘 우리의 가정 현실이 어떻습니까? 부모와 자녀가 서로 불신하고, 부부가 신뢰를 잃고, 가정이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전쟁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가족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재한 사회의 징조입니다.
본론2
Ⅲ. 신앙고백의 일어섬 (7:7–10)
1) 방향 전환의 고백 ―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7: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7:7) 앞선 7장 1–6절에서 미가는 사회의 총체적 붕괴를 고발했습니다. 경건이 끊어지고, 지도자는 부패하며, 가정까지 불신으로 무너진 현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오직 나는”이라는 단어가 터져 나옵니다. 이것은 방향 전환의 고백입니다. 모든 사람이 땅을 보고 좌절할 때, 미가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듭니다.
“우러러본다”는 단순히 쳐다본다는 뜻이 아니라, 주의 깊게 기다린다, 지켜본다는 의미입니다. 즉, 눈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분의 때를 인내로 기다린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개인적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담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낙심 중 믿음의 일어섬 ―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7:8) 믿음은 현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나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실패와 낙심, 죄와 좌절의 자리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포합니다.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성경은 넘어짐이 끝이 아님을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 24:16).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라.”
빛은 단순히 시각적 밝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의 은혜를 상징합니다(시 27: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앉아 있어도,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 때문에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쓰러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내 가정이 어둡더라도, 여호와께서 빛이 되십니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했더라도, 주의 빛이 비추어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3) 죄의 자각과 공의의 소망 ―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7:9–10)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7:9) 신앙고백의 중심은 자기 죄의 인정입니다. 미가는 백성의 죄악만 지적하지 않고,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예배 형식이나 종교 제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자각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선포합니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죄의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빛 가운데 서리라는 소망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요일 1:9). 그리고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이 말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는 미래를 본다는 뜻입니다. 대적이 조롱해도(7:10), 결국 하나님의 공의는 드러나고, 악인은 부끄러워지고, 의인은 회복됩니다.
본론3
Ⅳ.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응답과 찬양의 절정 (7:14–20)
백성은 간구합니다.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기업의 양떼를 먹이소서.” (7:14) 이 기도는 시편 23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지도자들이 양을 잡아먹는 시대에, 참된 목자는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7:15) 출애굽의 기적이 다시 재현됩니다. 열방이 놀라 입을 막고, 뱀처럼 땅에 기어 하나님 앞에 떨며 엎드립니다(7:16–17).
그리고 찬양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7:18) 미가의 이름 자체가 “누가 여호와와 같으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사하시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며(7:19), 야곱에게 성실과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베푸십니다(7:20).
심판으로 시작한 책은 자비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단어는 언제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가 정의를 잃고, 가정이 신뢰를 잃고, 교회가 생명의 열매를 잃었을지라도, 목자되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반드시 회복됩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결론
Ⅴ. 맺음말
오늘 우리는 미가와 함께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바라본다!”, “나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이 고백이 한국 사회와 우리의 가정, 그리고 교회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무너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기도
주여, 오늘 우리도 미가처럼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 주의 얼굴을 가리지 마시고, 저희를 주의 광명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엎드러질지라도 다시 일어서게 하시고, 어두움에 앉을지라도 주께서 빛이 되어 주옵소서.
우리의 눈을 땅에서 들어,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이 목자 되셔서 우리 가정을 돌보시고, 이 민족을 지팡이로 인도하시며,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