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본문
히브리서 11:1–12
서론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믿음장’이라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의 서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믿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믿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선뜻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믿음을 종교적 행위나 의식 정도로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긍정적인 마음가짐 정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나 종교적 습관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인격적 반응입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believe that), 마음으로 신뢰하는 관계(believe in), 그리고 삶 속에서 순종하며 살아내는 실천(live by faith)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경적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라고 정의합니다. 즉, 미래의 약속을 현재의 실제처럼 붙드는 내적 확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눈앞의 실체처럼 살아내는 영적 눈이 바로 믿음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말씀 앞에 붙들렸습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와 공로주의로 사람들을 속였지만, 루터는 성경을 통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진리를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고, 지금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Sola Fide’, 곧 오직 믿음으로의 고백을 붙들어야 합니다.
본론
Ⅰ. 믿음의 정의 : 보이지 않는 것을 현실로 붙드는 확신 (1–3절)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선언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이 한 구절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정의입니다. 그런데 짧은 정의 속에 엄청난 깊이가 들어 있습니다. 두 가지 키워드,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바라는 것들의 실상
여기서 ‘실상’이라는 단어는 ‘밑에 놓인 기초’, ‘견고한 토대’, ‘확실한 실체’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심리적 바람이나 희망사항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근거 있는 확신을 말합니다.
* 아브라함은 아직 아들을 얻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주어진 실체처럼 믿었습니다(창 15:6).
*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지만, “약속하신 이가 미쁘신 줄 알았다”(히 11:11)고 고백하며 불가능 속에서도 약속을 실상으로 붙들었습니다.
* 성도들은 여전히 세상에 살지만, 장차 올 하늘 본향을 이미 현실로 누리는 듯 바라보며 삽니다. 즉, 믿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영적 손길입니다.
2)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두 번째 정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증거’는 ‘논증’, ‘확신을 주는 증명’을 뜻합니다. 즉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내 마음 안에 명확히 증명하는 영적 능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맨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늘 보좌도 보이지 않고, 천군 천사도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것을 실재로 받아들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지금 내 삶 속에서 실제로 역사하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11:3). 눈으로 창조의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주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임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Ⅱ. 믿음의 사례 : 다섯 인물이 보여준 믿음의 얼굴 (4–12절)
1) 아벨 – 믿음으로 드린 예배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려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 11:4) 아벨과 가인은 똑같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이유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믿음의 태도에 있었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 중 일부를 드렸지만,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곧 첫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창 4:4).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최선의 헌신이 담겼기에 그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 열납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더 나은 제사”라 부릅니다. 단순히 제물이 나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제사 안에 담긴 믿음과 중심이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 마음의 중심: 하나님은 제물보다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십니다(삼상 16:7).
* 우선권과 최선: 아벨은 첫 것과 가장 좋은 것을 드림으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잠 3:9–10).
* 예표적 의미: 아벨의 피의 제사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 삶과 제사의 일치: 가인의 제사는 형식이었지만, 아벨의 제사는 삶과 신뢰가 담긴 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아벨처럼 믿음으로 드리는 더 나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과 믿음을 보십니다.
2) 에녹 –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 (5–6절)
창세기 5장의 족보는 대부분 “그리고 죽었더라”로 끝나지만, 에녹은 달랐습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옮기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에녹의 믿음은 두 가지였습니다.
*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 –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실제하심을 확신했습니다.
*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는 것 – 하나님은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신뢰였습니다.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동행의 삶입니다. 주일에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길에서도 늘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3) 노아 – 순종의 믿음 (7절)
노아의 믿음은 아직 보지 못한 일에 대한 순종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홍수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 120년 동안 묵묵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의 믿음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 경외하는 믿음 – 노아는 세상의 조롱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 순종하는 믿음 – 그는 자기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창 6:22). 믿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말씀대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노아처럼 경외함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 가정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4) 아브라함 – 순례자의 믿음 (8–10절)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르심 앞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지만,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떠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약속의 땅에서도 장막에 거하며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이 영원한 집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세우실 영원한 성을 바라보았습니다(히 11:10).
아브라함의 믿음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 – 갈 바를 몰라도 하나님을 따라 나서는 용기.
* 나그네의 믿음 – 약속을 붙들고 장막에 거하며 임시로 사는 겸손.
*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 – 영원한 성,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
5) 사라 – 약속을 붙든 믿음 (11–12절)
사라는 인간적으로는 이미 소망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나이가 많아 경수가 끊어졌고, 잉태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창 18:11).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로 믿었습니다. “미쁘시다”는 말은 ‘신실하시다, 반드시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사라의 믿음은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줍니다.
* 상황을 넘어선 믿음 – 환경과 조건은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붙들었습니다.
*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 믿음 – 약속의 근거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 열매를 맺는 믿음 – 결국 죽은 자와 같은 아브라함에게서 별과 모래 같은 후손이 태어났고, 그 후손 가운데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한계와 조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막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막히지 않습니다. 사라가 약속을 붙들었듯이, 오늘 우리도 신실하신 주님을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Ⅲ. 오직 믿음
은혜–믿음–그리스도–열매
루터가 붙든 종교개혁의 기초는 단순합니다.
* 오직 은혜(Sola Gratia) – 구원의 뿌리는 은혜입니다.
* 오직 믿음(Sola Fide) – 믿음은 은혜를 붙드는 손입니다.
*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입니다.
* 믿음의 열매 –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사랑과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루터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구원한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결론
믿음의 길을 따르는 오늘
오늘 우리는 아벨처럼 예배에서, 에녹처럼 동행에서, 노아처럼 순종에서, 아브라함처럼 순례의 길에서, 사라처럼 약속을 붙드는 삶에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의 목표는 ‘약속 자체’가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기적을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끈입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벨처럼 믿음으로 예배드리게 하시고,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며, 노아처럼 순종하게 하시고, 아브라함처럼 순례자의 길을 걷게 하시고, 사라처럼 약속을 붙들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응답이 있든 없든 언제나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는 참된 믿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