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해도 만국기 걸고 독노회 조직, 찬송가도 지어
세계 위해 부르심 받은 한국교회, 그만큼 책임도 커

서울씨티교회
▲민경배 박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민족교회사관의 태두로 불리는 민경배 박사(연세대 명예교수)는 초기 한국 기독교와 한국교회가 우리나라 근대화와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라를 잃은 시기에도 온 세계를 생각하며 전진했다면서 “세계를 등에 걸머지고 약속된 미래를 향해 가는 거룩하고 참된 한국교회가 될 것”을 당부했다.

최근 서울씨티교회(조희서 목사)에서 ‘한국교회와 세계’라는 주제로 주일예배 시간 말씀을 전한 민 박사는 먼저 “2020년 4월, 일본 최고의 신문이며 세계적인 신문인 요미우리 1면에 조희서 목사님과 서울씨티교회의 (드라이브인 예배) 기사가 났는데, 한국 목회자로서 요미우리신문 1면에 난 분은 없다. 또 세계 최고의 언론사인 로이터 통신사에도 조 목사님 기록이 나와 있는데, 이곳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은 영광된 일”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민 박사는 이날 “얼마 전 BBC에서 한국은 한 세기 안에 식민주의, 분단, 전쟁, 궁핍이라는 과정을 통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현대 창조적 세계의 중심지가 됐다는 기사가 났다”라며 “1872년,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12~13년 전 멕클레오라는 사람이 쓴 책에도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 두 지파만 남아 있고 열 지파를 잃어버렸는데, 그 열 지파가 조선에 와 있다고 했다. 멕클레오는 연구를 많이 한 학자인데, 솔직히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책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 “1885년 한국에 선교사가 들어왔다고 하지만, 2~3년 전인 1882년 만주에서 장돌뱅이들이 스코틀랜드 선교사를 만나 한국어로 성경책을 번역해 누가복음을 냈다. 근데 (그 당시) 활자가 어디 있었나. 다 손으로 활자를 만들었는데 눈물 나지 않나. 또 한 7~8년 번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박사는 “그리고 1882년은 우리나라 근대의 창세기로, 한미수호조약이 맺어졌고, 태극기를 만든 해이다. 이후 우리나라 첫 교회가 세워진 황해도 솔내는 제 고향으로, 십자가도 있지만, 20~30m 높이 장대를 세워 태극기를 달았다. 태극기를 제일 처음 사랑하고 높이 게양한 곳이 바로 기독교회였다”고 강조했다.

민 박사는 “기독교는 학교, 병원, 교회, 과수원 등 4가지를 세워 우리나라 근대화를 시작했다”며 “미신을 없애고 한국 경제를 살리는 엄청난 일도 했다. 우리나라 사회학을 만든 서울대 이만갑 교수는 1928년 우리나라에 와서 사회 조사를 한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조수였는데,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조사에서 1890년 한해 우리나라 무당들이 쓴 돈이 1만 2천 달러로, 당시 조정 1년 예산인 4천 달러의 세 배 이상이나 되었다”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1888년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지 3년째, 전국 교인이 2천 명 정도밖에 안 될 때, 선교사들이 본국에 써 보낸 연례보고서에는 한국은 기독교의 열매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심지어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민 박사는 또 한국 기독교는 백정 출신과 왕족 출신이 한 대학의 교수가 되는 시대를 열고, 당시 가장 천대받던 상업을 앞세워 산업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민 박사는 “우리나라에 제일 처음 세운 대학이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1907년 졸업생 7명이 나왔는데 한 명이 너무 머리가 좋아서 최초의 대학교수로 삼았다. 박서양인데, 백정의 아들이었다”라며 “우리는 사회 혁명, 공산 혁명을 할 필요가 없다. 백정을 최초로 대학교수로 세운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마지막 왕인 순종의 부인, 곧 왕후의 처남인 유억겸도 연희전문대 교수가 되었다. 연세대는 왕족과 백정이 같이 교수가 된 대학”이라며 “제일 높은 왕족도 (원래) 학교에서 못 가르치는데 교수가 되고, 백정도 대학 교수가 되어 이렇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희망을 선포했던 엄청난 한국교회였다”고 강조했다.

이뿐 아니라 민 박사는 “1917년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세워진 전문학교인 연희전문학교는 수석 학과가 상과로, 연전 상과는 민족의 꿈이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우리나라 사회 제도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인데 ‘상(商)’을 수석 학과로 만들었다”라며 “한국이 산업사회, 자본주의 사회가 되어 세계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여, 맨 아래쪽의 사람들을 높여 수석 학과를 만든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한테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민경배 박사는 “일본이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중국과 싸워 이겼고, 세계에서 제일 큰 서양 백인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와 싸워 이겼는데, 땅에 떨어진 기독교 위상을 세계로 올린 일이 1907년 평양대부흥이었다”라며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공화당 대표로 대통령 선거를 하다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평양에 갔는데, 새벽에 교회에 6천 명이 모여 있었다. 그때 평양 인구가 4만 명이었고, 북한이 1월에 얼마나 추운지 모른다. 그것을 보고 필라델피아 프레스, 시카고 트리뷴 등에 이런 글이 났다. ‘지금 세계에 두 강대국이 등장한다. 하나는 군사 대국인 일본, 하나는 기독교 대국 한국’이었다. 프린스턴대 영문학 교수 헨리 반 다이크는 그때 몰락했던 기독교를 다시 세계 역사 무대에 등장케 한 감동으로 찬송가 ‘기뻐하며 경배하세’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한 사가랴 무어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왜 한국을 5천 년 동안 그대로 내어버려 두셨습니까. 그것은 아주 특별한 때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해서이다. 곧 동방에서 구원의 횃불을 들기 위해서다. 그때 세계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고 만국을 구원할 수 있다’라는 글을 썼다”며 “이런 모습으로 비쳤던 한국인, 한국교회였다”라고 말했다.

민경배 박사는 “1907년 정미조약으로 고종이 쫓겨났을 때 윤치호가 애국가를 찬송가로 지었고, 바로 그해 우리나라 장로교회 독노회가 조직됐다. 나라를 실질적으로 빼앗겼을 때, 전국적인 기독교 조직을 만든 것”이라며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철도가 열린 것이 1906년으로, 철도가 하나밖에 없었는데도 함경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등에서 다 모여 평양에서 전국적 조직을 교회가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집회장에 만국기를 걸어 놨다. 나라는 망했지만 만국기를 걸어 세계를 생각하는 한국교회였다. 하나님께서 만국의 온 세계를 생각하는 교회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생각을 하고 출발했던 한국교회였다”고 강조했다.

민 박사는 “한일합병 1년 전, 미국 국무성 자료에는 한국교회에 대해 ‘한국은 세계 기독교의 기수 국가’라는 글이 있다. 기수는 그 팀을 대표하고 선양시키고 앞장서서 나가는 것으로, 한국교회가 세계 기독교를 뭉치게 하고 상징하고 선도하는 나라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광수는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주일만 하나님의 날입니까? 월요일도, 목요일도 하나님의 날입니다. 목사만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노동자도, 학생도, 경찰관도, 군인도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라는 글을 썼다. 이광수가 독립선언서를 동경에서 썼을 때가 27세로, 동경 YMCA에서 독립선언을 한 대단한 사람이다”라며 “(당시) 일본 고위층에 한국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많았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이니 반란, 반역죄인데, 재판받은 4~5천 명에 대해 내란죄, 반란죄라는 말이 없었다. 한 10명 정도밖에 (내란죄, 반란죄가) 없었다. 동경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는데도 출판법 위반, 소요죄로 (적용해) 잡혀가지 않았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조선을 위하고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던 훌륭한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민 박사는 또 “3.1독립운동 때 전국이 불타고 교회가 불타고, 몇 천 명이 죽고 잡혀갔는데, 그때 남궁억이 지은 찬송가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눈에 하나님께서 주신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동산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에서) ‘일하러 가자’고 하는 기독교가 지닌 엄청난 힘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30년대 세계경제공황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을 당할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도 매일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이야기가 나올 때 한국교회가 지은 찬송가는 ‘눈을 들어 산을 보니’였다”며 “한국교회가 일제 때 지은 찬송가가 40개인데, 5~6개가 아주 어려울 그때 지었다. 여러분이 찬송가를 부를 때 한국교회가 가진 엄청난 힘을 얻어 느끼며 전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 박사는 “평양신학교 첫 교수가 된 남궁혁은 신학지남에 ‘세계에 제 3전기가 있는데, 마지막 시대는 한국이 끌고 간다’고 논문을 썼다. 또 1930년대 김교신은 조선 지도를 보면서, ‘조선은 아시아 대륙과 전 세계 대륙을 등 뒤에 걸머지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모습’이라고 했다”며 “한국이 세계의 대륙을 걸머진다고 하는 힘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라 “그때 조선총독부의 연례 보고서에는 ‘지금 조선 총독부 관리와 비견할 만한 유연하고 활동적인 내일이 약속된 집단이 하나 있다. 그것이 한국 기독교인들이다’라며 기독교인들이 한국을 걸머지고 갈 집단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민 박사는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이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으로 그만큼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민 박사는 “일본 게이오대 오코닉 마사오 명예교수는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이 못 가진 글로벌 표준 유전자를 가졌다’고 했다. 세계에서 제일 처음 세계 지도를 그린 마테오리치보다 200년 전 고려가 망할 때 한국이 그린 세계지도가 ‘혼일강리역대국지도’다. 또 세계경제시장을 분석해 매년 두 번씩 보고서를 내는 미국 골드만삭스는 2009년과 2011년에 한국은 2050년대가 되면 세계 둘째 나라가 된다고 했다”며 “하나님께서 세계를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을 확인하고, 세계를 등에 지고 약속된 미래를 향해 가는 거룩하고 힘 있는 교회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날 조희서 목사는 “1934년생으로 올해 아흔이신 민경배 박사님은 대한민국의 신학자이자 민족교회사관의 태두로, 생전에 말씀을 듣는 자체가 매우 귀한 일”이라며 “민 박사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놀라운 역사로 움직일 수 있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또 조 목사는 “식민지 밑에서 정말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만국기를 걸고 세계를 향하여 기도한 것을 듣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라며 “그때보다 (지금이) 천 배, 만 배 더 잘 사는데 점점 나약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성령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고 만국과 열방을 향해 나갈 힘을 구하자”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