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등학교
▲고등학생 1학년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사진을 찍었던 배재학당 설립자 아펜젤러 동상 앞에 이효준 교장(왼쪽)이 38년 만에 신임 교장이 되어 다시 섰다. ⓒ이지희 기자

138년 역사와 전통,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명문 자사고로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배재고등학교의 제23대 교장으로 이효준 교장이 선임돼, 지난 3월 1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 그해 6월 시작하여, 1886년 고종 황제가 ‘배재학당’이라는 학교명을 하사한 이래 오늘에 이른 배재고등학교는 국내 최초의 명문사학으로, 긴 세월 시대를 이끈 기독 리더십들을 배출해 왔다. 2010년에는 자율형 사립고로 출범하면서 신앙과 지성, 인성, 체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차별화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마 20:26~28)는 설립정신(당훈)과 함께 ‘좋은 학교를 넘어 위대한 학교로!’(Good to Great)라는 비전으로, 이 시대가 절실히 원하는 실력을 겸비한 ‘섬기는 리더십’을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표어는 ‘2023 코람 데오 배재’로 정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배재 공동체가 다시 한번 십자가의 빛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1,250명의 남학생과 100명의 교직원, 그리고 8만 배재 동문까지 어우르는 배재고등학교의 새 수장 이효준 신임 교장과 황종훈 신임 교감, 또 20년간 배재고등학교 학생 및 교직원의 신앙 활동과 신앙 성장을 책임져 온 장운석 교목실장을 최근 교장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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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배재고등학교 아펜젤러기념예배당에서 교장 취임 감사예배가 드려졌다. 조보현 배재학당 이사장(왼쪽)이 이효준 제23대 배재고 교장에 임명장을 전달했다. ⓒ배재고등학교

이효준 교장은 배재고등학교 103회 졸업생이며,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직과정을 이수한 뒤 1995년 4월부터 최근까지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이 교장은 “1985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학교 내 아펜젤러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 지금도 있다”며 “그때 이후로 ‘배재’는 저의 모든 것이 되었고, 앞으로 교장으로서 남은 임기 4년 동안에도 ‘배재’는 저의 모든 것이 될 것”이라며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이 교장은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기도보다 위대한 것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신앙이 별로 없었고, 고3 때는 사춘기도 겪었어요. 대학에 진학해서는 2박 3일 동안이나 술을 먹어보기도 하고... 인생을 좀 낭비하며 살았어요. 배재고에서 교사로 일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재미있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아,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짜까지 기억하는데, 2010년 12월 14일이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깨어난 이 교장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도 생각났다. “그때 성령님이 저를 찾아오셨다고 믿습니다. 그날 이후 술을 끊고, 운동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보디빌딩 대회에도 나갈 정도로 몸을 가꾸었고요. 그리고 장운석 교목실장님 등 많은 분이 저를 옆에서 영적으로, 지적으로 이끌어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2023 코람 데오 배재’…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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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 교장은 올해 표어인 ‘2023 코람 데오 배재’를 소개하며 “모든 배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기도하면서 십자가의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올해 표어인 ‘2023 코람 데오 배재’에 대해 이효준 교장은 “교목실장님과 기도하면서 받은 것으로, 모든 배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면서 성찰하여 십자가의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럴 때 주님께서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잡아주시리라고 공동체 앞에 선언하는 첫해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조선 복음화의 원동력으로 교육 선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유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欲爲大者當爲人役·욕위대자 당위인역)를 당훈으로 정했다.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의 초상화와 동상, 복음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당훈을 교내 곳곳에 확인하는 일은 당연한 일임에도 퍽 인상적이었다. 배재고등학교가 타 자사고와 차별화된 점을 물었다.

“아펜젤러 설립자의 뜻인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말씀은 ‘섬기는 척’, ‘낮아지는 척’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비로소 낮아져서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아펜젤러 목사님이 추구하신 바를 따라 복음 속에서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것이 배재고등학교의 차별화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교장은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성공의 잣대와 가치로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영리한 악마를 기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우리 학교는 그러한 인재를 기르는 학교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배재라는 브랜드를 보고 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에게도 (이 당훈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언젠가는 다시 학교에 돌아오고 싶은 학창 시절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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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석 교목실장은 “학원선교는 한국교회가 살아남을 마지막 보루”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장운석 교목실장은 배재고등학교의 차별성에 대해 “미래는 역사를 기억함으로 비롯된다고 본다”며 “배재의 역사는 항상 선구적이고 도전적이었다. 104년 전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에도 배재학당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고, 수많은 배재 동문이 옥고를 치르고 대한독립의 삶을 실천하면서 섬김의 정신을 발휘했다”며 자랑스러운 역사를 소개했다. 이어 “배재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 민족 사랑의 세 가지 삶의 실천 목적을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이를 실천하게 함으로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이것이 배재의 미래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배재 출신은 아니나 스스로 배재인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장 교목실장은 또 “배재인은 어디서든 배재 교가가 불리면 배재인임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삶 속에 녹아 있어 졸업 이후 국내 여느 명문고보다 동문들의 배재를 사랑하는 마음이 독보적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나 휴가 나온 군인을 비롯해 유학, 입사, 결혼을 앞둔 때도 모교를 방문하는 졸업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이는 고등학교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역시 성경 말씀에 기반한 배재의 정신이 배재 학풍 속에 충분히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 교목실장은 “아펜젤러 목사님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돌아가신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섬김이 무엇인지 붙든다”라며 “그 섬김을 구체화하기 위해 코로나 시대에도 학생들이 헌혈 운동을 하고, 1년에 한 번 경기도 이천 지역에 농촌선교 봉사활동을 떠난다. 학교 안 농업교실의 시티팜에서는 먹거리를 수확하고 나누는 일도 하는데, 이는 창조질서 보존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배재고등학교 학생들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청소년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1년간 편지를 교류하고 책을 전하며, 현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보내기도 한다. NGO 단체에서 한국에 초빙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이들과는 축구대회를 하거나 식사, 후원을 하며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실제적 경험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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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는 당훈이 새겨져 있는 주시경관 정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맨 왼쪽부터 오선식 교목, 박성중 교목, 장운석 교목실장, 이효준 교장, 김낙환 배재학당 이사, 황종훈 교감 ⓒ이지희 기자

배재고등학교 96회 졸업생이며 내년 8월 은퇴를 앞둔 황종훈 교감은 “배재고등학교에는 대학에 간 뒤, 입대하기 전, 또는 제대한 뒤뿐만 아니라 70~80대의 연세 지긋한 분들도 자녀들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찾아오신다”라며 배재정신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배재인들의 변치 않는 애교심을 자랑했다. 황 교감은 “우리의 역사가 깊은 만큼, 그 역사를 토대로 현실을 뜨겁게 달구고, 그 뜨거움이 미래를 밝히면 된다. 그 긴 역사를 토대로 현존하는 가치를 뜨겁게 달구면 미래는 자동으로 열린다고 생각한다”며 “남은 기간이 너무 짧지만, 교사들에게 배재에 대한 마음을 한 번 더 새기게 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와 함께 “신진 세력과 물러나는 세력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고 싶다”며 “이효준 신임 교장선생님이 강력한 의지로 혁신을 실천해 나가면 배재도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2P, 3S로 배재 정체성 확립 기대”
4년의 재임 기간 배재고등학교의 경영 계획에 대해 이효준 교장은 “2P(Protestant, Pioneer), 3S(Spirit, Study, Sports)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2P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는 청지기적 사명감을 가진 신앙인,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 지도자, 지역 교회에 봉사하는 섬김의 리더를 길러내는 것이고, ‘선구자’(Pioneer)는 전통을 계승하는 배재인, 시대를 선도하는 진취적 배재인, 세계를 경영하는 선도적 배재인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3S에서 ‘인성’(Spirit)은 믿음의 장자학교로 본을 보이는 교육과정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직원, 믿음으로 서로 신뢰하는 사제관계를 추구하며, ‘학업’(Study)은 꿈과 끼를 개발하는 선진 프로그램, 진로와 진학이 일치하는 맞춤형 교육, 최고 수준의 교수 학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건강’(Sports)은 1인 3종목 특기 체육 활동을 실시하고, 지덕체의 균형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과 학생 선수의 효율적인 성장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학력 향상을 통한 대학 진학률 제고’(학업)와 ‘미래사회에 대비한 복음적 인성교육 실시’(인성, 건강)라는 투 트랙 시스템으로 명문 자사고로 위상을 정립하고, ‘좋은 학교를 넘어 위대한 학교’로의 비전을 실현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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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배재학당의 특성을 살린 기독교 교과 학습 내용을 개발하고, 재학생 성가대를 부활시키며, 기독 동아리 ‘아침 기도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재학생 성경 1독 운동, 배재인 신앙 성장 주간 부활 및 기독 동아리 신앙 수련회 확대, 배재 인증제 항목에 신앙 활동 추가 등의 계획도 세웠다. 또 다양한 기독 동아리를 신설하고 ‘클래스 미션’(Class Mission)을 확대하기로 했다. 2017년부터 진행해 온 클래스 미션은 지역교회와 함께하는 학원선교 사역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남연회 강동·송파·잠실·강남지방 교역자들과 배재고등학교, 그리고 배재고등학교 아펜젤러기념예배당을 교회로 임대하여 주일예배를 드리는 빛소금교회가 매월 한 차례, 1년간 11회 학교에 방문해 일일교사(멘토활동)를 해 주는 동시에 전교생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주고 있다. 특히 빛소금교회 성도들은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을 위해 봄부터 성도들이 손수 목도리를 짜서 수능 전 편지와 함께 목도리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장운석 교목실장은 “이런 클래스미션은 모든 한국교회가 학원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귀한 사역의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배재고등학교는 배재인으로서 정체성을 교육하기 위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주간인 ‘나는 배재인이다!’를 신설하고, 배양전(배재고·중학교와 양정고·중학교의 정기전) 종목 확대 및 학술 교류, 동문 멘토 프로그램 ‘배재인의 길 벗’ 부활, 해외 동문과의 교류로 ‘아펜젤러 루트’(1학년), ‘이승만 독립의 길’(2학년), 교환 학생 유학 프로그램, 동문 홈스테이 프로그램 등을 신설하기로 했다.

명문 자사고로서 교육과정으로는 학생들의 꿈과 끼에 맞는 다양한 진로교육, 입시 전략 ‘SKY 100 PROJECT’, 졸업 후 학생 관리 및 경쟁력 있는 교사 양성, 전 배재가족과 연계한 협력교육 등에 힘쓰고, 행정 혁신을 위해서는 인사, 학교 행정 시스템, 학교 인프라의 효율적 활용 등에 힘쓰기로 했다.

◇“학원선교는 한국교회가 살아남을 마지막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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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배재고등학교 주시경관 1층 로비에 전시된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초상화 아래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왼쪽부터 장운석 교목실장, 이효준 교장, 교직원 연수 강의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 배재학당 이사이자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낙환 박사 ⓒ이지희 기자
장운석 교목실장은 이날 “학원선교는 한국교회가 살아남을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며 “학원선교가 사라지고 무너지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동기, 청소년기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교회를 이어갈 중요한 보석들이에요. 요즘은 교회학교에 아이들이 없는데, 이 아이들이 학교에 다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국공립 초중고 학생들을 품는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돌봄교실이나 교회 청년 인프라를 구축해 학습 멘토를 제공하는 것도 학원선교입니다. 또 ‘교회가 나를 섬겨준 경험’은 세상이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의 교회 모습과 다르다고 증언해 줄 변호인들도 만들 겁니다. 학원선교를 통해 제2의 한국교회 부흥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해요.”

이효준 교장은 이와 관련해 “고등학교 3년간 학생들 가운데 믿음이 스며드는 계기와 토대를 마련해주고 싶다”며 “기독교 사학인 만큼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이를 위해 모든 구성원이 함께 나아가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황종훈 교감은 “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지금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미래를 지도해 주려면 현 교사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라며 “요즘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교사와 학생의 대화채널이 좀 멀어지고 친밀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다음세대 문제는 교사와 함께 부모도 함께 책임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장운석 교목실장은 이 시대 기독교 사학의 과제로 “사립학교법 개정 시 대한민국 기본 헌법이 보장하는 사학의 자율성의 원칙을 최대한 지켜줘야 한다”며 “시행령이 기본법을 우선할 수 없는데, 기본법을 무시하며 시행령으로 종교 자유를 위축시켜온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에 동참하고 있는 장 교목실장은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기독교 사학에 자율성을 주고, 국공립학교에 기독교 사학을 맞출 게 아니라 국공립학교를 기독교 명문학교가 할 수 있는 능력치만큼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