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통일비전포럼, 통일 시대 위한 교육 방안 다뤄
풀브라이트 장학생 1호 탈북민 박사 김성렬 씨,
‘북한교육이 탈북민의 남한정착에 미친 영향’ 발제

북한은 정권 수립 이래 지금까지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필요한 인재 양성, 곧 ‘주체형 새 인간’을 목적으로 교육제도를 시행해 왔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의 ‘2017 북한이해’에 따르면, 북한은 개인의 ‘자아 발달’보다는 ‘혁명화, 노동계급화, 공산주의화’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지도층에 복종하는 인재 양성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관악통일비전포럼(GUVF, 상임대표 남승호 서울대 교수)은 서울 동작 물댄동산교회(조요셉 목사)에서 월례 포럼을 열고, 북한교육제도의 실상을 이해하고,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 방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북한 청진 출신 탈북민으로, 미국 시러큐스대학교대학원 맥스웰 스쿨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건국대 안보재난안전융합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김성렬 박사(37)가 ‘북한교육이 남한정착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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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박사는 “탈북민들에게 교육은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본인만의 진로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을 갖게 하는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지희 기자

김 박사는 생계를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다 1997년 3월 어머니, 누나와 함께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건설 현장 등을 다니며 힘든 생활을 이어갔고, 2000년 3월에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신의주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고비에 처했다.

때마침 2000년 6월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생계형 탈북자를 석방해주면서 무사히 풀려난 그는 2001년 다시 탈북해 중국 천진의 국수 공장에서 일하면서 라디오 채널에 잡힌 극동방송을 들으며 신앙을 갖게 됐다. 특히, 배움에 목말라 있던 그는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을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을 듣고 한국에 가기로 했고, 2004년 19세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기독교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서 초·중·고졸 검정고시를 1년 3개월 만에 마치고 한동대 학사, 연세대 통일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7년에는 미국 국무부 산하 풀브라이트 재단이 처음으로 선발한 탈북민 장학생 5명에 포함돼,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작년 12월, 1970~1990년대 미북 외교에 관한 논문이 통과되면서 3년 6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아 ‘풀브라이트 장학생 1호 탈북민 박사’로 이름을 올렸다.

김성렬 박사는 이날 발제에 앞서 신앙 간증을 전했다. 그는 “북한을 잘 발전시켜나가는 꿈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도전하게 했다”며 “집안에 돈이 거의 없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누나도 캐나다에서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셨기 때문에 묵묵히 헤쳐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북한에서 경제난이 막 시작할 때 일찍이 탈북했다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도 굶어 죽고, 어린애들도 아파트 모서리에서 얼어 죽는 모습을 보았다”며 “저희도 거기 있으면 굶어 죽어야 했고, 살기 위해서는 친구, 친척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섰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고난의 행군 때 많은 학생이 (저와 같이) 학교에 못 가고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때 탈북은 순전히 생계형 탈북이었다”며 “중국에 갔더니 너무 잘 살았다. TV 광고가 너무 신기해 종일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허기진 배는 채울 수 있었지만, 불법체류자여서 공안에 잡히면 언제든지 북송하게 돼 있었다”며 “노동을 해도 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다치기도 하고, 어머니는 인신매매로 팔려갔던 경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인권유린의 피해를 계속 보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결국 15세 때 공안에 잡혀 북송됐고, 감옥 안에서 국가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때는 사상교육을 받아 ‘앞으로 나의 꿈은 당과 수령을 위해 총폭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국가가 잘못하여 배급체계가 붕괴되어 피해를 본 주민을 국가가 가둬놓고 취조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때 감옥 안에서 ‘국가가 무엇이고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했고, 만약 감옥에서 탈출하면 중국이든 태국이든 가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송되어 감금됐던 경험은 생계형 탈북에서 정치형 탈북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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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통일비전포럼이 물댄동산교회에서 열렸다. ⓒ이지희 기자
이후 중국으로 다시 탈북한 김 박사는 “불법체류자로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고 비료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왜 항상 힘든 일을 하며 공안을 피해 다녀야 할까’, ‘왜 밤마다 일을 해야 하고, 또 낮에는 빛을 보지 못할까’ 등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며 “라디오 채널을 듣는데 극동방송 채널이 잡혔고, 이후 조선족 목사님을 만나 교회가 운영하는 국수공장에서 일했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이 마음에 꽂혀 신앙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신앙이 생기면서 북한 정권에 대한 악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용서를 통해 많이 풀어주셨는데, 미움의 마음이 풀리니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게 됐다”며 “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감화감동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시민권을 주고 학교에 보내준다는 소식에 한국행을 결심하고 2004년 한국에 들어왔다.

김성렬 박사는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에서 공부하면서 국가와 나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이 시대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남한과 북한 사람들에게 통일은 무엇인지 나름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저희(탈북민)에게 통일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 길은 누군가 만들어주지 않으며,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저희 안에 주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분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어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잠시 영국의 프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도 하고, YWAM(예수전도단) 선교사의 도움으로 다른 탈북민 친구들과 1년 3개월간 미국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김 박사는 “북한에서 ‘미국 놈은 승냥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그곳에서 작동됐다. 미국 친구들은 저희에게 잘 대해 주려고 노력하는데 저희는 경계했다.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내 안에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나타나 영어도 못 배웠다”며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용서에 대한 마음을 많이 구했고, 미국인 친구들과 되도록 같이 어울리려 노력을 계속 쌓다 보니 어느 순간 수영, 축구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인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니 영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됐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니 학문에 대해서도 더 깊이 관심을 갖게 됐다. 김 박사는 “하나님이 제 안에 주신 비전은 능동적인 인간이 되도록 저를 변화시켰다”며 “내부적으로 통일로 가는 것도 가능하나, 전략적 지형 안에서 한반도의 회복을 위해서는 주변국을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더 공부하기 위해 영국 유학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잠도 줄이며 2년 정도 공부한 끝에 영국 명문대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결국 영국 유학의 꿈은 접어야 했다. 그러나 다시 연세대에 도전하여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연세대에서 수학하면서 미국 대사관의 외교관들과도 인연이 닿으면서, 탈북민 공동체를 위한 도움을 구했다. 김 박사는 “미국 대사관 분들에게 한국 근현대사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미국에서 공부한 유능한 인재들이 기여를 많이 했는데,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을 민주화시키고 경제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며 “외교관이 한번 고려해보겠다고 했는데, 정말 6개월이 지나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됐다. 미국 국무부의 장학금 프로젝트 안에 탈북민 석박사를 선발하여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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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박사는 탈북민 후배들을 향해 “비전을 열어나가는 작은 한 걸음이 있어야 한계도 넘을 수 있고, 벽도 허물고, 돌을 파내고 길도 닦을 수 있다”며 “완벽한 상태에서 가려고 하지 말고 꿈과 비전이 있으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북한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해

김성렬 박사는 발제문에서 북한교육 시스템의 문제점과 남한정착 시 북한에서 받은 교육이 미친 영향, 남한의 탈북민 교육의 문제점과 요구 사항 등도 언급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최근에는 교육에서 실리주의를 표방하여 과학기술, 특히 정보통신과 컴퓨터 교육 강화로 단기간에 많은 인재 양성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교육자원의 동등한 분배보다는 선발된 인재를 집중 지원하는 수재교육이 강화되고, 실력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실력본위교육이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북한교육제도의 문제점은 교육의 폐쇄성에 있다”며 “정권의 주요 사업에 따라 교육 내용도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김정은 집권 후 모든 분야에서 과학기술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이 교육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또 다른 문제는 교육 내용의 다원화, 다양화가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여전히 특정 분야에서 수재들을 중심으로 정권이 지원해주고 세계 수준의 역사, 과학, 기술, 인문학, 사회학 등의 서적이나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 남한정착에 교육이 미치는 영향

그는 “탈북민들에게 교육은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본인만의 진로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 의식을 갖게 하는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진로를 정권이 결정하고 판단했고, 주민들은 선택권이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된다. ‘수동형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에 입국하는 순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본인의 삶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능동형 인간’ 내지는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교육이 탈북민의 남한 사회 정착에 영향을 미쳐야만 하고,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탈북민들이 개인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것은 교육의 역할이 크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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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참석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김 박사는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주체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흔에서 파생된 ‘경계 짓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탈북민들은 ‘2등 국민’이라든지, 북한 정권이 도발할 때면 주민과 정권을 동일한 존재로 본다든지, 각종 탈북민 예능프로그램과 정치적 이슈로 고착화된 이미지 등을 극복해야 한다”며 “‘수혜자’로 머물려고 하는 시도도 교육을 통한 주체성 회복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는 수혜자에서 기여자로의 전환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탈북민이 주체적 존재로의 회복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체성 혼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탈북민들의 꿈과 희망을 품고 감지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의 염원이 있다면, 통일이 되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탈북민들도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통일의 그 날을 위해 매일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한의 탈북민 교육을 위한 요구 사항

김성렬 박사는 남한에서 이뤄지는 탈북민 교육의 문제점으로 ‘탈북민 기성세대들을 위한 교육의 부재’와 ‘탈북민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교육이 대안학교 중심이고, 교육자들의 주관적 인식이 내포된 점’을 꼽았다.

그는 “북한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던 탈북민 기성세대는 한국 사회에 진입하는 순간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선다”며 “어떤 선택을 하든 정규직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북한에서 핵심계층을 지원하는 불공정한 시스템에서 혜택을 누리던 고위탈북자들은 국책연구기관에 바로 취직할 수 있는데, 불공정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도 수혜자가 되는 것”이라며 “분단 비용과 갈등이 계속 축적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일부가 시행하는 하나원의 교육방식 개선을 제안했다. 김 박사는 “북한에서 평생 축적해 온 전문성을 첨단 기술 변용에 대한 교육과 함께 살려야 한다”며 “용접공이었다면 용접 교육을 연계해 바로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하고, 북한에서 원산경제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 판매원이나 회계를 맡았다면 공부를 더 해서 북한경제 전문가로 육성해야 한다. 이 외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탈북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직장에서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퇴근 후 특강이나 주말특강을 개설해 탈북민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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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통일비전포럼 참석자 단체사진 ⓒ이지희 기자
탈북민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교육과 관련해서는 “한국 사회에 다양한 학교와 직업군들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 선택권은 학생들의 영역”이라며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 긴츠버그는 ‘교육자는 환상적 선택단계, 시험적 선택단계, 현실적 선택단계의 세 단계로 학생들을 안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때 탈북민 선배들이 수도권 대학교에 진학해서 영어의 어려움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극소수 사례가 발생하자, 모 대안학교에서는 전문대학들만 소개하고 진학을 독려했다”며 “그 결과 졸업 후 취업문은 더 어려워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탈북 청년들이 늘어났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김 박사는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자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렌즈들을 소개받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곳”이라며 “주체적인 존재로서 성숙됨을 내면화한다면,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것이든 본인의 삶을 묵묵히 살아내면 된다”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김성렬 박사는 탈북민 후배들을 위해 “비전을 열어나가는 작은 한 걸음이 있어야 한계도 넘을 수 있고, 벽도 허물고, 돌을 파내고 길도 닦을 수 있다”며 “완벽한 상태에서 가려고 하지 말고 꿈과 비전이 있으면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했다. 또 “신앙과 하나님의 비전,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고향을 그리는 탈북민 모임이 많다”며 “통일이 되는 날은 집으로 가는 날이다. 통일을 향해 안주하지 말고 함께 계속 도전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남한의 젊은 세대를 위한 통일교육 방안으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통일박람회와 같은 행사를 몇 년간 하면 통일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분단 비용 등을 언급하며 통일을 너무 딱딱하게 바라보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휴머나이징(humanizing)하여 예술, 과학으로도 접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포럼은 방성용 목사(숭실통일아카데미)의 사회로 장경한 목사(우리은혜교회 담임)의 대표기도, 김성렬 박사의 발제, 질의응답, 김주한 목사(다윗의 물맷돌 선교회 대표)가 인도하는 기도 등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