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과정서 상처 많은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배려 필요
영역별 탈북민 전문가 양성해 탈북민 정착 등 역할 감당하길
탈북민 남한 정착 잘해야 통일 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탈북 과정서 목숨 잃은 이들 위해 위령탑(비) 세웠으면

목숨을 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사회 적응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위기와 신체적·정신적 질환과 장애, 외로움과 고독,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심지어 재입북하는 경우도 있다.

법무부가 2021년 밝힌 연도별 탈북민 수감자 수는 2017년 144명, 2018년 145명, 2019년 152명, 2020년 169명, 2021년 8월 말 17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탈북민 사망 요인 가운데 자살 비율은 2016년 7.9%(사망자 88명 중 7명)였고, 2017년 8.7%(92명 중 8명), 2018년 14.9%(87명 중 13명), 2019년 10.1%(79명 중 8명)였다. 이는 한국인 사망 요인 가운데 자살 비율인 4.3%(2020년 기준)보다 2~3배 이상 많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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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박성록 전도사가 발제하고 있다. ⓒ관악통일비전포럼
통일 시대를 준비하며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의 사회 적응과 정착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탈북민 박성록 전도사(총신대, 열방샘교회)는 최근 서울 동작 물댄동산교회(조요셉 목사)에서 열린 관악통일비전포럼(상임대표 남승호 서울대 교수) 2월 월례 포럼에서 ‘탈북민 입장에서 바라본 탈북민 지원 정책’을 발제해 관심을 끌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박성록 전도사는 이날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도움으로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할 때 집과 정착 지원금,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혜택과 의료혜택, 취업에 이르기까지 지원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면서 “대한민국에도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은데, 탈북민 정착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큰 은혜를 베풀어 준 데 대하여 탈북민들도 대단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탈북민 지원정책을 꾸준히 시행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정착하는 탈북민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탈북민들도 있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전하고, 탈북민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정부의 탈북민 지원 정책에 대한 4가지 제언을 발표했다.

박 전도사는 먼저 “탈북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대화할 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가서 탈북민들에게 인사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며 “탈북민들은 북한과 중국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일들이 많아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이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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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통일비전포럼이 최근 물댄동산교회에서 월례 포럼을 진행했다. ⓒ관악통일비전포럼
특히 “탈북민 처지에서 한국 분들의 이야기가 많은 상처가 될 때도 있다”며 “예를 들어 고향이 어디냐, 언제 탈북했느냐, 가족은 어떠냐, 결혼했느냐, 취업했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탈북민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가족, 친척과 생이별하며 국경을 넘는 탈북 과정과 가족이 굶어 죽고, 몸이 아프고 취업도 하지 못하는 탈북민들에게 이런 질문은 큰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두 번째로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입국한 정착 초기에 교육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탈북민들은 하나원 교육을 3개월 받고 나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6개월을 보낸 이후에는 사회에서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다른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보통 4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영국은 4년 동안 사회적응 기간을 준다. 독일의 경우 언어 훈련은 8개월 이상, 직업 교육은 2년에서 3년 동안 시키고, 사람들이 사회를 이해하고 적응을 잘할 때까지 훈련시킨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한국 사회를 경험해 보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건강한 몸, 경제적인 능력과 인맥이 있어야 한국 사회에 정착해서 잘 살아갈 수가 있다”며 “탈북민들은 이런 것이 부족하여 이를 갖추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세 번째로 “탈북민 집단 거주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산업공단 지역이나 농촌 지역에 거주지를 만들어 주면 탈북민들이 일해서 먹고사는 데 많이 유리할 수 있다”며 “탈북민들은 부모, 형제, 친척이 없어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주지를 만들면 서로 돕고 이끌면서 정착을 잘할 수 있다. 한국인들도 외국에 나가면 코리아타운에서 서로 돕고 살면서 그 땅에서 정착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 그 예”라고 말했다. 또한 “탈북민 마을을 만들면 탈북민 교회를 운영하기도 쉽고, 서로 돕고 배우면서 신앙이 성장하고, 건강을 돌보며 가정을 이루고 취업하는 데에도 서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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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통일비전포럼 참석자 단체사진 ⓒ관악통일비전포럼
박 전도사는 네 번째로 “각 분야 탈북민 전문가들을 키워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탈북민 전문가들이 탈북민의 한국 정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 재봉, 요리, 기독교 등 각 분야에서 일을 잘 감당할 만한 사람을 키워내고, 탈북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쳐 준다면 한국에 정착을 더 잘할 수 있다”며 “한국에 들어온 중국 조선족의 경우 건설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인맥으로 연결되어 서로 경험을 알려주고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고 말했다.

언어를 배울 때에도 탈북민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면, 영어를 사용하고 억양이 달라 어떤 것은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탈북민 전문가들이 가르쳐주면 잘 이해하며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이 돼도 한국 전문가들이 북한 사람들을 가르치면 영어를 사용하고 억양이 달라 북한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탈북민 전문가들이 직접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의 양쪽 형편을 잘 아는 탈북민 전문가들이 서로를 잘 이해시키고 화합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각 분야의 탈북민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자신의 한국 정착 경험도 나눴다. “초기에 많이 힘들었다. 몸이 아파 전북대학교 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하고, 외롭게 지내기도 했고, 돈을 벌며 힘든 일도 겪었다”며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 사람들과 정부의 각종 지원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저도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며 “총신대에서 공부 중인데,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도록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도사는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을 잘해야 통일에 대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대한민국 정착을 위해 탈북민들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대한민국 사람들도 이들을 이해하고 인내하고 배려해 줄 때 탈북민의 성공적인 정착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탈북민들의 마음에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친척들이 있다”며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고 성공하여 멋진 모습으로 나중에 고향에 가서 가족과 친척을 만나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북한과 중국에 살면서 수많은 힘든 일을 겪고 상처를 받았는데도 묵묵히 이겨내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잘 정착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형편도 힘들지만 북한의 가족들을 도우려고 힘들게 노력하고 있다”며 “탈북민들도 정착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과 활동도 잘 이뤄져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탈북 과정에서 수많은 북한 주민이 목숨을 잃고 있는 상황을 알리며 한국교회 차원에서 탈북민 위령탑, 또는 위령비를 세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통일의 마중물’ 탈북민 적극 돌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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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조요셉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관악통일비전포럼
이날 토론을 맡은 관악통일비전포럼 상임고문 조요셉 목사는 “첫 번째로 언급된, 남한 사람이 탈북민을 대할 때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중요하다”며 “남한 사람들 안에 탈북민을 편견을 가지고 대하여, 탈북민들이 냉대받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해 해외로 떠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네 번째, 탈북민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은 옳은 이야기”라며 “실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고 박사가 되는 분도 있는 등 각 분야에서 탈북민을 남북통일의 일군으로 키워주는 것은 바람직하며, 역량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요셉 목사는 두 번째 ‘탈북민의 초기 정착 교육을 연장해야 한다’는 제안과 세 번째 ‘탈북민 집단 거주지 마련’에 대한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탈북민이 하나원에 도착하자마자 외부와 계속 연락하면서 초기 정착 교육이 집중이 안 돼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본다”며 “지금 하나원에서 3개월 교육을 마치고 나간 뒤에는 거주지의 하나센터가 탈북민을 지원하는데, 하나센터를 활성화시켜 실제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탈북민 집단 거주지에 대해서는 “헌법에 의해 거주를 강제할 수 없어 실효성이 없고, 탈북민 거주지를 만들 경우 도리어 남한에서의 정착 기간이 늘어나고 많은 문제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오히려 교회가 복음으로 탈북민들을 차별 없이 품어주며 수용해주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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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신민범 목사가 발표하고 있다. ⓒ관악통일비전포럼
관악통일비전포럼 통일목회분과위원장 신민범 목사(경신교회)는 “탈북민들이 남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많은 상처를 입는 것을 남한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할 수 있다”며 “가칭 ‘탈북민과 대화법’이라는 책자를 발간해 통일선교 관계자, 특히 탈북민을 돌보려고 하는 남한 봉사자들을 교육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탈북민을 위한 교육을 정부가 앞장서서 해야겠지만, 한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연합 교육기관을 세워 지혜와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목사도 탈북민 집단 거주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적인 필요는 있다고 보이지만, 자칫 다른 집단과 분리되는 게토화의 위험도 있을 수 있고, 장기적으로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는 기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며 “무엇보다 그 거주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면 탈북민 사회에 대한 경계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 목사는 “직업이나 사회 각 분야의 탈북민 출신 전문가를 양성해 지도자로 활용하자는 안은 매우 필요하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미 남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며, 이들이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탈북민들을 돕고 멘토링 한다면 탈북민들이 상당히 빠르게 정착하고 자립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남한에 거주하는 탈북민 상황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정부나 행정기관에서도 할 수 있지만, 자원봉사 단체들이 각 분야 인재들을 찾고 네트워크를 구성해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며, 한국의 수많은 통일선교단체들이 이 일에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많은 사람이 ‘통일의 마중물’이라고 하는 탈북민을 잃어버리거나 잘 관리하지 못하면 통일은 요원할 수도 있다”며 탈북민 사회 정착을 위한 한국 사회와 교회의 관심과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