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기자가 나에게 익숙하고도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했다. “당신이 24시간 후에 죽는다면, 이 세상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그 질문을 받고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매일 산다면,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라고 말한 친구 생각이 나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중요하고도 좋은 질문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을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겨우 하루라는 시간 속에 모든 중요한 일을 압착시켜 넣어야 한다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또 어떻게 재조정할 것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디를 갈 것이며, 귀한 마지막 시간을 누구와 함께 보낼 것인가? 더구나,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우리를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 없이 살아갈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할 것인가? 하나님께 어떤 일에 대한 뜻을 돌이켜 달라고 구할 것인가?
그러나 기도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기도할지라도, 그 파문은 계속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기도는 영원히 남아서 무덤을 넘어 미래의 삶과 사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기도의 덕을 본 사람들이다. 신실하게 중보기도를 했으나 응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 그 기도의 직접적인 결과로 역사는 이 세상 전역에서 날마다 변화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처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 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히 11:39~40)이다.
생각만 해도 굉장한 일이 아닌가? 우리 기도의 효과나 효율성에는 한계가 없다. 이 세상에 지울 수 없는 표적을 남기기 원한다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 참여하는 것보다 더 위력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가 직접 갈 수 있다면 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우리의 기도는 갈 수 있다. 우리는 기도로 국경과 감옥의 벽을 넘어갈 수 있다. 세상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영적 지도자들이 우리 이름을 모를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가까운 조언자들 모두의 힘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그들에게 미칠 수 있다. 인간적인 견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많을지라도 기도의 영역에서 불가능은 없다.
오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기도하겠는가? 대답해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기도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체에 쳐서 거르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에게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변화를 이루어 보다 훌륭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달라고 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새롭고 산 길”(히 10:20)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고전 2:9, 사 64:4)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항상 문을 열어 놓기 원한다.
브라더 앤드류(국제오픈도어선교회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