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할렐루야! 지금 모든 나라와 민족,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 기간은 한 두 달이 아닌 벌써 일 년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표적인 전염병은 유럽의 페스트, 스페인 독감, 말라리아, 폐결핵, 천연두 등이 있고, 이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의 틀이 바뀌고 흔들렸습니다. 최근에는 에이즈, 사스, 에볼라 등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전염병은 하나님의 진노이며(민 14:12, 겔 5:12), 동시에 극한 염병에서 저희들을 건지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시 91:3). 그런데 유독 이 코로나19가 사스나 에볼라와 다른 이유는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것뿐 아니라 종교, 즉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코로나와 관련된 한국의 교회 상황은 단순한 의학적, 과학적 접근만이 아니라 생각보다는 복잡하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예배조차 마음대로 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배에 대해서도 ‘대면 예배냐, 비대면 예배냐’라는 상황이 발생했고, 교회에서 실제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만큼 이 코로나는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행하는 믿음입니다. 머리로 알고 있고 은혜 받았다는 것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지금은 예전과 같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회복도 어렵고, 예전과 같은 목회 패턴으로는 안 되기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개인적으나 교회적으로 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어떻게 해야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 주님을 붙잡고 주님께 매달리고 행함으로 주님 은혜 가운데 거하며 교회가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을까요.
먼저 모이기는 쉽지 않고 같이 단체로 은혜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이나 예배를 드리고 혹은 몇이 모여서 구역이나 심방 등도 어렵고, 단체로 숙식을 하면서 세미나나 집회를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을 유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의하면 주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은 말씀과 기도와 성례이며(제88~99문),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더 말씀을 많이 보고 읽고, 혹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은 성례의 기회를 갖는 것인데 지금의 상황에서 더 많은 성례는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말씀과 기도에 힘을 쓰는 것이 지금의 상황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인데, 기도도 혼자나 몇 분끼리는 가능하지만 교회에서 모이거나 공개적인 기도 모임을 하거나 기도원을 찾는 것 등의 행위는 거의 제한적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말씀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입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 성숙하고 든든한 믿음과 확신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들이 교회에 모인 성도님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유튜브나 영상을 통해 예배하거나 말씀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서도 말씀을 접할 방법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것이 흔히 말하는 묵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방법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성도님들이 혼자서 혹은 가정에서 두 세 명이 함께 성경을 소리 내어 그냥 또박또박 읽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거나 묵상하거나 깨닫는 것과는 다르게 말씀을 읽는 것, 특히 소리 내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면 행함이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성경읽기의 방법론 중 소리 내어 읽기에 대해, 즉 성경을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이유, 방법, 과정, 결과, 유익 등을 소개합니다. 성경을 혼자 소리 내어 읽음으로 어려운 상황도 극복이 되고, 무엇보다도 더 성숙한 믿음, 행함의 믿음, 이기는 믿음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
제1장 소리 내어 성경 읽기의 성경적 배경
1. 용어
먼저 구약에서 ‘읽는다’는 의미의 히브리어는 ‘קָרָא’(카라)입니다. 이 말은 대부분 ‘부르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읽는다, 낭독하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는다, 낭독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크게 두 가지로 그 뜻이 세분화됩니다.
첫째는 말 그대로 ‘읽는다’ 또는 ‘암송하다’, ‘되풀이하다’의 의미로서 신명기 17장 19절에서는 왕이 평생에 ‘율법서’를 등사해서 옆에 두고 읽을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다, 읽어 주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로서 구약에서 특히 많이 나오며, 아래 구절은 그 좋은 예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신 31:11)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느 8:8)
이처럼 구약에서는 개인적인 읽기뿐 아니라 공적인 읽기까지도 포괄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ὰναγινώδκω’(아나기노스코)가 ‘읽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이며, 이것도 구약에서와 같이 개인적으로 읽는다(마 12:3, 마 24:15, 막 2:25; 13:14, 행15:31; 23:34, 요 19:20, 계 1:3)라는 뜻과 공중 앞에서 낭독한다(눅 4:16, 행 15:21, 고후 3:15, 골 4:16, 살전 5:27)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계속>
이태재 목사(개혁총회신학 학장, 소리내어성경읽기연구소 소장, 말씀세움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