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북한선교와 관련된 많은 선교단체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선교단체마다 다양한 신학과 목표와 방법으로 북한선교를 위하여 접근하고 있다. 북한선교는 통일신학의 바른 기초 위에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북한선교가 이데올로기(Ideology)로 변질되면 본래적 선교의 정체성을 상실할 수가 있다. 평화나 통일은 이데올로기가 되어선 안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이나 집단의 사고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이끄는 사상의 체계를 말한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영향력 있는 정치, 민족, 사회, 경제적 이데올로기에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신념체계를 지배하고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이데올로기는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많다. 이데올로기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는 절대적, 신적, 종교적 신념, 즉 우상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경직된 율법적 신념의 노예가 되면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종속되어 엄청난 파괴력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전통가치나 체계를 붕괴시키거나 심지어는 집단학살, 전쟁, 폭력을 불사하게 된다.
우리는 해방 후의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폭력과 암살, 제주도의 4.3사건의 양민대학살, 베트남전쟁, 폴 포트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통하여 이 같은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근자의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를 통하여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우상화와 위험성을 체험하고 있다. 평화나 통일의 사상과 신념은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을 짙게 깔고 있다. 남북한의 대립과 한반도의 상황이 평화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이데올로기로 몰아가고 있다.
기독교적 관점의 평화와 통일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가족공동체를 향한 안타깝고 절실한 기도의 제목되어야 하며, 십자가와 복음을 통한 은혜의 결실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적 평화와 통일은 하나님과 평화한 사람, 가정, 교회,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지 이데올로기적 우상이 아니다.
구약의 평화(샬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요, 순종에 대한 축복의 열매였다. 신약의 평화(에이레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성도나 교회에 부어 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의 선물과 열매였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이나 하나 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종의 삶을 걸어간 선택받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통치와 축복의 선언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는 평화 대신 전쟁, 통일 대신 흩어짐으로 징계하셨다. 평화와 통일은 교회의 목적이 되거나, 신학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십자가와 복음에 순종하는 성도나 교회를 통하여 민족과 국가에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평화와 통일의 선물이 내려온다.
이데올로기는 인본주의적이며 인위적인 것이다. 인간의 사상과 신념이고 우상이다. 이데올로기는 상대적이며, 역기능으로 역사하면 엄청난 파괴력과 비극을 낳기도 한다. 반면에 십자가와 복음은 사랑과 긍휼과 평화와 통일과 하나 됨을 낳는다. 평화나 통일이란 주제가 우리의 현실적으로 당면한 강력한 이슈가 되다 보니,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우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대치할 수도 있다.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사상가나 전문가나 실무진들이 이 개념을 이데올로기화 하면 스스로가 우상의 올무에 묶여서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노창영 목사(개봉교회 담임, 한국오픈도어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