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지식인의 상징이 사회비평을 얼마나 잘하느냐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비평을 보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안들에 대한 불만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써 내려간 경우가 많이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펜을 들어서 칼질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불만이 아니라 편협한 시기와 질투인 경우도 많이 있다. 자신이 실력을 쌓아 따라잡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그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탑을 쌓기보다 옆에 탑의 돌을 무너트려 자신의 탑만을 독보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도, 협의와 협력이라는 단어도 우리는 모두 잊은 것 같다. 의사결정 과정에도 토의가 사라지고 토론만이 전부인 듯하다. 그 토론이 더 나가 감정적 싸움이 가득한 세상이다. 상대방을 이겨야만 내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도, 경제도, 심지어 교회들까지도 상대방을 이기려고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쟁도 필요하지만, 협력도 필요한 것이다. 현대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거북이가 자는 토끼를 깨워서 같이 간다. 이것이 서로가 성장하는 길이다.
교회의 성장도 다르지 않았다. 교회들끼리의 경쟁은 심화하고, 전도할 때는 성경 말씀이 중심이 아닌 교회의 규모나 목회자들을 자랑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로 교회를 상징하다 보니 한계에 다다랐고, 일부 교회의 내부 문제나 몇몇 부도덕한 교역자 문제는 전체 교회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되어 비교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가 분열되어 피를 흘리고 있다. 이 분열 속에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기는 한 걸까? 사회를 봉합시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닐까?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면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도태될까 봐 두려운 걸까? 아니면 모두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것일까?
교회 안에서도 서로의 목소리를 조율할 토의의 장이 필요하다. 수많은 교단으로 분리된 교회가 통합할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하고, 그 장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사회는 분열로 상처투성이가 되어있다. 이제는 상처를 싸매고 치료해 줄 집단이 필요하다.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먼저 화해와 협력의 시작이 필요하다. 교단을 떠나서 서로의 아픔의 소리를 들어주고 위로해야 하는 시간이다.
노은영 작가(사회복지학 석사, 청소년 코칭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