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춘섭 교수
▲배춘섭 교수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예수님의 이 질문은 지금도 이슬람권의 비밀 신자들 (Secret Believers)에게 날마다 생명을 건 고백으로 다가온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들이 지구촌에 있음을 본다.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가문으로부터 추방당하고, 감시 속에 놓이며, 때로는 생명을 위협까지 받는다. 그들은 얼굴을 드러낼 수 없고, 신앙을 공유할 공동체조차도 없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들의 입술은 침묵해도, 그들의 삶은 예수님을 따르며 현재도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슬람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변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과의 단절, 직업의 박탈, 공동체에서의 추방,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동반한 결정이다. 가령, 무슬림 배경 신자(MBB, Muslim Background Believers)들은 신앙고백 이후 부모로부터 “너는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때로는 자발적으로 집을 떠나야 한다. 친구 하나 없이, 신분도 없이, 보호받지 못한 채 숨어 살아가는 이들의 고독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다. 숨겨진 교회는 지하에서, 은밀한 온라인 공간에서, 때로는 사막의 조용한 장막에서까지 서로서로 모인다. 비록 공적 예배당은 없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예배는 결코 멈춤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가 어디인지 물어야 한다. 그곳은 어쩌면 조명이 없는 작은 방일 수 있다. 어쩌면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조용히 찬송을 읊조리며 흥얼거리는 어느 젊은 여성의 입술일 수 있다. 아니면 손에 든 성경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슬람권의 비밀신자들을 향한 우리의 자세는 그저 그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하기보다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외심과 격려의 시선을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연약함을 대신해 십자가를 붙들고 있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깨우는 불씨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위해 중보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안의 타협된 신앙을 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위험 속에서도 믿음을 택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자유 속에서 신실함을 지키고 있는가?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도 복음을 확장시키는 하나님의 전략적 제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기도로, 후원으로, 연대로. 비밀신자의 시대에도, 복음은 결코 갇히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비록 우리는 그들이 받는 박해를 막을 수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그 고통의 무게는 함께 짊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억하라, 너희도 몸을 가졌느니라”(히 13:3)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널리 교회에 알려야 한다. 교회가 이들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은 박해에 대한 담대한 저항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로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신앙을 다시금 돌이켜보아야 한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면서, 우리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침묵하는 그들의 절규 섞인 영혼의 외침을 마음을 다해 들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외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배춘섭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선교학과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