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지난 6월 25일 에릭 폴리 목사가 북한에 조선어성경을 담은 대형풍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 VOM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은 지난 25일 저녁 7시 52분, 북한을 비롯해 핍박받는 지역의 기독교인을 돕는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대표 폴리 현숙)가 강화도에서 조선어성경을 담은 풍선 4개를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GPS 위치추적기를 단 이 대형풍선들은 국경을 넘어 북한의 한 지역에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고 26일 한국 VOM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한국 VOM은 "보안상 이유로 한국 VOM의 CEO 에릭 폴리 목사가 혼자 풍선과 성경을 운반하여 북한에 성공적으로 보냈다. 우리는 풍선을 보낼 수 있는 날씨가 보장될 때마다 고고도 풍선을 이용해 성경만을 풍선에 담아 보낸다"고 주장했다. 이어 "성경을 받게 될 (북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풍선 사역을 할 때마다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대신 풍선 사역이 끝나면 북한에 보낸 총 성경 개수를 공개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 풍선 사역을 범죄시하는 상황으로 인해 이번 사역을 일반인과 정부에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통일부 조혜실 부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가 대북전단 및 물품 등 살포금지 방침을 밝히고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물품을 북한에 살포하려고 시도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부대변인은 "순교자의 소리는 이미 수사 의뢰가 된 단체로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한국 VOM은 GPS를 단 풍선이 북한 국경(흰색 선)을 넘어 북한으로 이동한 경로(붉은 선)를 파악했다고 26일 밝혔다. ⓒ한국 VOM
통일부는 이달 초 북한이 남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살포를 강하게 비난한 이후,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에 크게 위협이 된다며 대북전단과 물품 살포를 금지했다. 남북관계 진전 상황을 감안해 국회와 협의하여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 11일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큰샘(대표 박정오)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26일 경찰이 두 단체의 사무실 등을 압수 수색했다.

앞서 경기도는 12일 김포, 고양, 파주, 연천 등 4개 시군 내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강력하게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3일 자유북한운동연합, 큰샘, 한국 순교자의 소리,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대표 이민복) 등 4개 단체를 사기, 자금 유용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등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처럼 대북전단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22일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시나 폴슨 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탈북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에 정보를 전하는 활동이며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 VOM은 이번 정부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단 한 번도 정치적 전단을 인쇄하거나 배포한 적이 없으며, 오로지 북한 정부가 출판한 조선어성경만 보냈다. 또 안전과 정확성을 위해 불연성 헬륨 가스와 생분해성 라텍스 풍선을 사용하고, 풍선 발사 및 낙하지점을 예측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GPS로 풍선이 북한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있다"며 기존 탈북민 단체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는 한국 VOM의 풍선 사역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24일 기자회견에서 현숙 폴리 대표(왼쪽)와 에릭 폴리 CEO가 풍선 사역에 사용하는 풍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풍선 아래쪽에는 GPS(붉은 끈으로 맨 부분)를 달아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한국 VOM
폴리 현숙 한국 VOM 대표는 26일 오후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보내는 대북 풍선은 정치적인 것이 아님에도 자꾸 정치에 얽어매려 한다"며 "통일부가 유감을 표했다고 했는데, 저희가 더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폴리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한국 정부는 (정부가) 북한과 대화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풍선 사역을 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북한과 관계가 나빠질 때에는 오히려 우리를 돕는 편이었다"며 "그래도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정부 측에서 만나겠다고 요청하면 저희는 항상 문이 열려 있었고 대화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폴리 대표는 또 "지난 23일 오후에는 사전 공문이나 약속 없이 사무실 업무 종료 5분 전 서울시 문화정책과 주무관 3명이 전화로 방문을 통보하고 찾아왔고, 한국 VOM 직원들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방해했다"며 "이러한 방식에 대해 너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폴리 대표에 따르면, 오후 5시에 업무를 종료하는 한국 VOM 사무실에 이날 오후 4시 54분경 서울시 행정부 직원이 전화로 방문을 알렸고, 곧 사무실을 닫는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다. 폴리 대표는 "이들은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서려던 직원 두 명을 손으로 잡거나 막는 등 물리적으로 진로를 방해하다가 급기야 떠나려는 직원 차량 앞에 뛰어들어 운행을 저지하고 차량 양 문을 막았다"며 "일방적인 질문을 던지며 대답할 때까지 이동을 저지해 결국 우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태가 정리됐다"고 말했다.

한국 순교자의 소리(VOM)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VOM 재정 외부 감사를 맡아온 가립회계법인 박대호 회계사와 CCFK 최수남 목사(왼쪽부터 차례대로)가 설명하고 있다. ⓒ한국 VOM

현숙 폴리 대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사기, 자금 유용 혐의로 수사를 의뢰한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재정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폴리 대표는 "풍선 사역은 한국 내에서 들어오는 헌금보다 주로 전 세계 기독교인의 헌금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와 은행에 영수증을 제시하지 않고 재정투명성이 없으면 (해외에서) 돈이 들어올 수 없다. 외부 회계 감사 결과를 각 정부에 제출해 왔는데, 그것조차 알아보지 않고 사기, 횡령이라고 말하는 것에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에릭 폴리 목사님은 배우자 비자로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와 이곳에서 돈을 벌 수 없다. 자비량 선교사로 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돈을 벌기 위해 풍선 사역을 한다는 그분들의 주장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VOM은 24일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18~2019년 재정보고서와 한국기독교재정투명성협회(CCFK, 회장 황호찬) 인증회원증서를 공개했다.

폴리 대표는 이와 함께 "한국 VOM은 폭력적인 단체가 아니다. 남한 정부가 제대로 세워진 정부라면 예의를 갖추고 무모하지 않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풍선 사역을 처벌한다면 수용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조선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도 선교는 불법이었고,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복음 활동은 이를 제지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래도 믿음의 조상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며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롬 13:1)는 성경 말씀도 헬라어로 보면 무조건 위의 권세에 순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그것 때문에 권세자들이 처벌한다면 순종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 정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결국 (북한 사역을 위해) 아무것도 못한다. 그 다음에는 대북 라디오 사역을 그만하라고 할 것"이라며 "북한 지하교인들과 고난을 함께하지 않는 한 그분들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폴리 대표는 "현재 저희가 사역하고 있는 전 세계 핍박받는 지역은 모두 기독교 활동이 불법이다. 과거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도 불법이었는데 (사람들이) 왜 이것을 잊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성경만 보내는) 우리를 다른 대북단체와 똑같이 취급하며 사기, 횡령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려 하는데 남한 기독교인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 정부는 정부대로 예의를 갖춰 대화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