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S(여름 선교학교) 기간 동안 젊은이들과 함께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다각적으로 심도있게 듣고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성경 전체에서 말하고 있는 선교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남은 삶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새로운 결단을 할 수 있었던 복된 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전도종족을 항한 사랑으로 인해 안타까와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릴 수가 있었습니다.

연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듣고 배운 선교를 직접 현장에서 체험해 보고 느껴 보도록 여러 환경을 열어 주셨습니다. 50 중반이 넘은 제가 20~30대의 활기차고 열정에 넘치는 젊은이들과 함께 기니-말리 비젼트립에 동참하게 된 것 입니다. 함께 SMS에서 훈련을 받았기에 한결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두 자매는 오랫동안 삶의 터전이었던 직장까지 사직하고 SMS와 비젼트립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기 위해서 과감한 결단과 용기를 내린 자매들을 보며 저 또한 많은 도전과 깊은 깨우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선교의 일꾼들과 함께하는 비젼트립은 정말 기쁘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동행해 주셨습니다. 막혔던 길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섬세하심을 팀원 모두들이 체험하였습니다. 아프리카로 출발하기 전까지 팀장인 권지상 선교사님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의견을 교환하면서 팀 구성원 상호간을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었습니다. 빠진 것이 없나 준비에 만전을 기하면서 혹시나 실수하지 않도록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셔서 트립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그 분과의 끊임없는 교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선교지들을 두루두루 생각해 볼 때 제게 아프리카는 별로 그다지 크게 마음에 닿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밟고 돌아와 보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프리카 땅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곳이고, 아프리카인들이야 말로 어려운 삶에도 불구하고 밝고 순진한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긱만 하면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니-말리는 아프리카의 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불어권 선교에 교두보로 꼭 필요한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문이 열려져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하면 어느 날에는 분명히 복음의 돌파가 일어날 곳임을 보았습니다. 이 땅들이야말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곳이었습니다. 비록 덥기는 하나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고 많은 자원(금, 은, 보크사이트 등)을 가진 가능성이 참 많은 나라이었습니다. 기니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 팀은 기니의 수도 코나끄리에 있는 국회의사당, 시청, 모스크, 9.28운동장, 대학교, 방송국 등을 돌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디디면서 종족간의 분열의 영이 타파 되기를, 부정부패가 척결되기를, 거역의 영과 무법의 영이 무너지기를, 거짓과 불신이 제거되기를, 무지와 가난과 숙명론과 물질주로 인한 분노가 사라지기를, 폭력의 영들이 깨지도록 기도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의 연합이 일어나 믿는자의 본이 되기를, 죄와 타협하지않으로 순결한 신부의 정체성을 갖기를, 영적 지도자들이 세워지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사랑. 정의. 공의가 풀어지도록,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태도를 갖도록, 하나님의 사랑만이 실패하지 않고 변함없으심을 풀어놓도록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선교지에 와서 그 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은 너무도 감격스럽고 복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서 파송선교사님들이 사역하시는 칸칸 베이스에 16시간 걸려 도착한 후 현지인과 같은 생활을 경험해 보고자 칸칸에서 거의 6시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 오지로 들어가게 됬었습니다.

왓수룽종족이 사는 ‘만사코다’. ‘림바나’ 그리고 ‘모루두’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3명또는 2명씩 팀을 구성해서 민박을하며 그 곳 현지인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일상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허도영 선교사님 내외분이 우리를 마을에 떨어뜨려 놓고는 우리끼리 알아서 살라고 하시면서 웃음은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남아야 했습니다. 우리 팀(이주열, 함기욱, 전영배)은 아주 조심스럽게 4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촌장을 방문해서 인사를 하고 4박 5일동안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주열형제가 불어가 되고 현지어를 조금 구사했기 때문에 그들과 의사소통이 잘되서 아주 즐거운 일이 많았습니다. 촌장은 키가 훤칠하고 잘 생겼으며 건장한 멋진 분이었다. 또한 농담도 잘하는 호인이었습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30분이상 정성스럽게 다린 차를 끓여주며 주열 형제에게 자기 딸을 줄테니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딸은 18세로 키가 178 cm정도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데려가는 조건으로 소2마리 양 2마리, 현재 싯가로는 $ 480(중국제 오토바이 한대 값)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열 형제가 약간 당황했으나 재치를 발휘해서 “나는 소2마리 양 2마리를 살만한 돈이 없어서 안되겠습니다.”라고 웃으면서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촌장이 너라면 그냥 줄테니 데리고 가라고 하여서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졸지에 주열형제는 아프리카 만사코다마을 촌장의 사위가 될뻔 했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여자에 대한 인권은 아주 열악했습니다. 아침 5시경에 일어나 방아를 찧습니다. 옥수수 아니면 도토리였을 것입니다, 10리나 되는 곳에서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와야 되고 마당에서 불을 때서 음식을 하여야 하며 심지어는 땔감 나무도 해 와야 합니다. 남자들은 밭일 조금하고는 3시쯤 집에 와서 차나 끓여 마시며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한 남자들이 부럽다기 보다는 여자들이 너무 안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땅을 변화시키고 이슬람의 악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예수님이 이 땅의 구세주가 되야만 한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셔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는 복음을 이들이 믿어야 할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참된 예배자가 되어 주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시고 그 마음을 이 땅에서 이루어 드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눈에는 저들이 불편하게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그들의 행복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보편적 가치인 청결하고 깨끗하며 질서있는 생활을 저들도 알았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지낸 마을에는 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서 빨리 이곳에 모스크 대신 교회가 들어서고 현지 크리스천 교사가 나와서 아이들이 그 교회당에서 모여 찬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가르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팀원들에게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키타를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이 신기한 악기 소리를 멀리서 듣고 하나, 둘씩 모이더니 순식간에 수십명이 모였습니다. 저녁에는 현지 말 복음 멧세지와 함께 그들이 즐길 노래들을 뽑아서 찬양의 축제를 벌렸습니다. 저녁을 먹고 시작된 찬양집회가 10시 30분이 지나도 끝이 나지를 않아서 현지 조력자인 Ali가 우리를 호위하고 길을 내주어서 비로소 숙소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유명 록스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오후에 복음방송에 이어 찬양집회가 있었습니다. 더 많은 젊은이들과 아줌마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 만큼 이 곳에는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을 주변에 특별히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모스크에서 이슬람식 기도를 마치고 나와서는 하나님에 대한 영화를 더 열심히 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에 속히 복음이 들어 오고 십자가가 세워질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허도영, 황보경선교사님, 그리고 민에스더 선교사님 불철주야 얘쓰고 계십니다. 그 분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그 열악하고 험난한 곳에서 음식, 날씨, 주거환겅 무엇 하나 익숙한 것들이 없으실텐데도 고난을 이기시고 피나는 언어공부(불어, 현지어, 영어)에 전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현지의 문화에 적응하려고 성육신 선교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선교사님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군화신은 신부들이라고 뷸러 드리고 싶었습니다. 민에스더선교사님은 너무 야위어서 얼굴을 볼 때마다 잘 드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곤 했습니다. 에스더 선교사님은 허리도 무척 아펐는데 좀 차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현지인들에게 그 동안 얼마나 삶으로 모범을 보이셨든지 마치 젖먹이 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선교사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뒤로 두고 기니를 떠나면서 내 마음 속에는 하늘과 땅의 축복이 저들 속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같이 고생하며 기니-말리 를 품고 기도했던 정탐동지들도 정말 애를 썼습니다. 다른 세상의 젊은이들 같지 않는 성숙하고 듬직한 모습과 현지인을 겸손히 섬기며 존경하는 모습 속에 어른인 제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축복을 항상 받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의 사람들이 주님이 창조한 백성들 중에 가장 힘든 환경 속에서 신음하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그들을 향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선교지는 한번이라도 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곳을 다녀와서 그 땅을 더욱 품게 되었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품은 종족이 사는 모습을 봐야 선교하는 삶이 시작된다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많은 노력과 경비를 드리고 갔던 곳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나같은 사람도 보내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수고가 헛되지않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헤아려 하나님 나라 확장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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