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회장 안희열, KEMS)는 지난 21일(토) 금천양문교회(담임 이훈구)에서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함께 "이슬람 선교와 상황화 이론 - 내부자 운동과 비판적 상황화"란 주제로 '제55차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정기학술대회 - 선교단체장 초청 이슬람 상황화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 날 행사에서는 정흥호 교수(ACTS 선교학, GSN 상임이사, 사진)가 "상황화 과정을 위한 방향성 진단"이란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본지는 발표자의 동의를 얻어 발제 전문을 게재합니다.

j.jpg1. 들어가는 말
  
사실상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상황화’와 관련된 문제는 늘 상존해 왔다. 다만 그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초기에 개신교가 전파되는 과정 속에서 거의 ‘무상황화의 시대’(the era of noncontextualization)가 있었다(Hiebert 1994, 75-76). 그러나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또한 한국선교가 급속하게 성장함에 따라, 1970년대 이후 신학적 입장에 따른 상황화의 문제들이 대두되었고, 선교방식에 조금씩 다른 입장을 갖게 되면서 상황화의 문제는 한국선교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되었다.
  
여기서 먼저 ‘상황화’(contextualization)란 용어에 대한 등장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교역사에 있어서 전통적인 접근 방법을 보면, 19세기 초엽의 선교 확장 기간 동안에 일반적으로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들은 선교사가 살아왔던 본국에 있는 교회의 모델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교회 건축양식이나 예배의 복장, 예배 의식서, 악기, 찬송가, 교회의 행정조직 같은 것들이 그대로 소위 “수출”되었고 선교 현지에 소개되었다.  또한 이러한 형태들은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에 의해 열심히 받아 들여졌다.  더구나 그들은 서구인들의 예배 관습과 방법들을 보면서 특별히 비판적인 견해를 가져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제는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교회의 행정, 예배, 목회, 생활의 패턴에 있어서 항상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단일 문화적 수출형태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1890년대 후반부터 헨리 벤(Henry Venn)이나 루푸스 앤더슨(Rufus Anderson)같은 개척적인 선교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롤랜드 앨렌(Roland Allen)은 소위 “자립 운영, 자립 재정, 자립 전도” (self-governing, self-supporting, self-propagating)라고 하는 “토착적” 교회 개념을 펼쳐나갔다.  그들은 소위 '토착화'(indigeneity 혹은 indigenization)는 성경적인 교회로 성장해 가고 선교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실질적인 논의를 하게 되었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신학적인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만들어지면서 선교신학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복음의 전달과 상황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런 신학의 차이점들로 인해 결국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WCC를 중심으로 하여 선교학자와 교육학자들에게 특히 2/3 세계(제 3세계)의 현실에 부딪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복음 전파와 함께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적용시키느냐 하는 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런 문제들을 2/3세계의 신학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를 연구, 지원하기 위해 WCC 안에 ‘신학교육기금’(the Theological Education Fund, TEF)을 조성하고 1958년부터 3차 시기에 걸쳐 진행시켜왔다. 이런 가운데 “상황화”(contextualization)란 말은 공식적으로 1972년 TEF에 의한 상황 속의 사역(Ministry in Context)이라는 책자에서 사용되었다.  실제로 이 책자는 TEF를 위한 세 번째 위임의 적용 정책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기금은 복음의 상황화라는 목표를 갖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1970년에서 1977년까지의 기간은 다른 때보다 좀더 급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예전 보다 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 하였으며 옛날 방식을 개혁하려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2. 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상황화의 인식

타문화권에 가서 선교를 한다고 하는 것은 선교사들이 문화적 진공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는 그들의 독특한 사회와 문화의 구성원들 사이로 간다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상황화라고 하는 것은 단지 사건의 역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탐험의 시대 이후 서구를 주도해 온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선교사들이 인식해야 하는 가에 대한 분석작업이라 할 수 있다 (Hiebert 1994, 75).
  
사실상, 기존의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문제들은 오랜 동안 선교 역사 속에서 논의되어 왔었다.  하지만 초기 선교에서는 현존하는 문화에 대하여 문제들이 제기되었을 때 심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호하게 잘라 버렸다. 인도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였던 폴 히버트는 대략 1850년부터 1950년 까지 인도에 있었던 대부분의 개신교 선교사와 그 후에도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들은 그들이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신앙과 행위를 “이방인적”이라고 무조건 배척해 버렸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기독교가 세워지기 전에 모든 전통적인 비기독교적 문화는 없애 버려야 한다는 신조를 나름대로 준수해 보려 했던 것이다 (Hiebert 1994, 76).      
  
그 결과로, 토착민들에게는 복음이 단지 외국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기독교뿐 만아니라, 서구적인 문화 방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것들은 선교인들(missioners)로 하여금 전통적인 문화 형태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어떤 관점들이 바뀌어져야 하는 가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상황화와 관련하여 선교의 역사를 살펴볼 때,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서구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과 함께 식민주의의 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식민주의는 서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문화의 우월성을 확신시켜 주었다.  그럼으로 그들은 서구 문명의 혜택을 세계로 가져가는 것이 그들의 책무인 것처럼 생각하였다 (Hiebert 1994, 78).  
  
초기 선교 역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많은 사실들이 입증하고 있듯이, 처음에는 순수한 복음적 열정만을 가지고 가기 보다는 기독교와 문명과 상업이 손을 잡고 같이 가게 되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Hiebert 1994, 77). 서구 문명은 세계로 퍼져 나갔고 사람들이 기독교화 된다고 하는 것을 곧 “현대화”되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옛 문화에 대해 연구하거나 그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와 문화, 형태와 그 안에 있는 의미를 쉽사리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여야만 했다.  그런 연대 관계는 그들의 사회 제도와 문화와 역사 속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옛 문화의 형태 속에 있는 의미를 쉽게 바꾸어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철저하게 혼합주의는 피하면서 전체적인 문화의 상황을 고려하여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서구적인 문화를 배척하게 된 두 번째 이유로, 문화적 진화 이론의 출현에 있었다.  탐험의 시대에 만들어진 문화적 다원주의의 인식에 대한 정치적 해결이 식민주의였다면, 지적인 해결에 있어서는 단연 진화론의 영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서구인들은 다른 문화들을 “원시적”이고 “정령 숭배적”이며 “미개한” 것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하였다. 폴 히버트(Hiebert 1994, 78)에 의하면, 1915년까지 인류학자들까지도 “문화들”(cultures)이라고 하는 복수적 개념보다는 “단일문화”(culture)의 개념과 “문명”(civilization)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문화가 같은 발전 도상에 있다고 보았다.  즉, 어떤 문화들은 좀더 진보된 상태에 있고, 또 어떤 문화들은 다른 문화에 비해 더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단순 비교로 인류의 문화를 평가하려 했다.  그 당시 인류학자들이 보는 보편적인 문화관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서 인류의 문화가 일원적이냐, 다원적이냐에 대한 논의가 거듭된 후에, 인류학자들은 인간성에 대한 공통점을 강조하기 위해 연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것이 종족이 되었든지, 문화가 되었든지 간에 단순히 차이점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Hiebert 1994, 78). 
  
다른 문화들을 배척하는 데 있어서 주도해 온 세 번째 요인은 과학의 승리에 있었다.  19세기 말경, 서구의 기술은 세계를 정복하고 과학이 최종적인 승리를 안겨다 줄 것이라는  확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과학은 인간의 삶의 조건들을 크게 바꾸어 왔으며 아울러 과학적 사고는 인간 자신과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버렸다.  이 시대에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소위 말하는 모더니즘(modernism)의 대표적인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과학과 이성이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들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연 과학의 차원에서 탐구해 보거나, 어떤 연구소를 통해서 나오는 결과를 봄으로써 만족을 얻으려 하였다.  객관적으로 진리를 증명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중시되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다른 문화들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는 주관적이고 단편적이며 때로는 거짓된 것으로까지 간주되기도 하였다 (Hiebert 1994, 79).  이런 시대적 조류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신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대치되었고 계시는 경험으로 바꾸어지기도 하였다.
  
자기가 갖고 있는 신학은 전적으로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종교들은 모두가 주관적인 것이며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자연 과학 이외에 다른 믿음의 체계를 심각하게 거부했던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겨 왔다.  따라서 타문화에 가서 선교를 하더라도 선교사 자신의 고정적인 관념 속에 있는 ‘변경할 수 없는 신학’을 다른 새로운 문화 안으로 그대로 옮겨 놓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Hiebert 1994, 80).
  
결과적으로, 식민주의는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과시하게 되었고 진화론과 과학적 연구 방법은 전반적인 삶에 지적인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따라서 1850년부터 1950년까지의 기간은 반상황적(anti contextual)이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되지 않았다. 이는 세상의 역사관으로부터 모더니즘 시대의 과학적 사고와 문화적 식민시대(cultural colonialism)에 있었던 무상황화(noncontextualization)의 경향을 잘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되면서 역사와 문화를 보는 관점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문화들과 복음 사이에는 둘 다 서로 절대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들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와 아울러 복음의 독특성을 보존하며 혼합주의를 막아 보려는 데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3. 상황화의 필요성

19세기 말경 시대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식민 통치의 확장은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들은 과학적 사고와 문화의 우월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되었고, 따라서 다른 문화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서서히 열매를 맺으려 했던 것이다.
  
1890년경 식민주의와 그 지적인 기초의 붕괴를 가져올 만한 세 가지 중요한 요인들이 있었다 (Hiebert 1994, 82). 
  
첫 번째로, 서구 자체 내에서부터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강한 외침이었다.  특히 헨리 벤(Henry Venn)과 루프스 앤더슨(Rufus Anderson)이 주장한 “삼자 원칙” 아래, 조직적으로 독립적인 교회들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와 아울러 지역 문화 형태 속에서 복음의 상황화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토착화’와 함께 그들의 삶과 관련된 ‘상황화’에 관련된 신학적 문제는 한참 후에나 다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요인은 식민 통치의 성공으로 인하여 그 땅에 “문명”을 안겨 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민 통치의 결과, 오히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민족주의적 열망과 함께 고등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독립을 위한 효과적인 운동체를 조직하게 되었으며 교회들도 자립과 자치 통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인도의 경우 뿐 만아니라 한국의 경우도 마찬 가지라고 본다.
  
세 번째 요인으로는 지배하는 국가들이 “간접 통치”(indirect rule)의 방식을 도입하게 되었다.   직접 통치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식민지를 다스리면서 그 나라의 토착적 정치 구조와 연결 정부를 구성하여 다스리겠다는 간접 통치의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자연히 그 나라 사람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들에 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회 조직의 토착적 형태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로 인하여, 인류학적 이론을 형성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인류학자들도 각각의 사회를 자체의 언어와 문화 및 영역을 가진 하나의 유기적 실체로 보면서 더 이상 단수적 개념으로서 “문화”(culture)라고 말하지 않고 복수적 개념으로서 “문화들” (cultures)이라고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적 다원주의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서구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의문시되면서 과학의 절대성 또한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문화 인류학자, 사회학자, 선교학자, 신학자들은 나름대로 어떠한 패러다임이 직면한 인간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데 적합할 것인 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은 상황화와 관련하여 지역의 사회구조와 문화형태 속에서 어떻게 복음과 신학적 문제들을 적용할 것인 가라는 논의를 갖게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몇 가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Hiebert 1994, 86-92).
  
첫째, 무상황화의 시대에서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이 서구의 옷을 입은 복음의 외래성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복음은 그 사람들의 문화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이것은 먼저 서로 다른 문화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문화들을 자신의 문화적 관점에서 단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자문화 우월주의’(ethnocentrism)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제도적으로나 지적으로 서구의 지배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각 교회들이 기독교인들의 권리인 자기 신학을 발전시키려는 인식을 갖게 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무비판적 상황화의 수용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만일 복음 속에 들어있는 분명한 절대성과 진리 그 자체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적인 진리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모호해 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을 상황화하는 과정에서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왜곡된 것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방안과 절대적인 기준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찾아보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단정한다.  따라서 죄인들이 모여서 만들며 사는 문화와 사회 안에는 반드시 죄악된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제도나 문화적 요소에는 항상 죄악이 도사리고 있다.  상황화에 임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두 번째, 때때로 복음의 전달 과정 속에서 상황화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만 강조점을 둔 나머지, 참된 제자도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왕국을 실현해 가야 된다는 관계성을 소홀히 다룰 수도 있게 된다.  그 결과, 복음을 각 개인들이 좋아하는 부분들만 강조하게 됨으로써, 분열된 믿음의 체제로 축소(환원주의, Reductionism)되어 버리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복음의 능력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역시 역동적인 반응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서 “믿는다”라는 의미는 단지 어떤 것에 마음의 동의를 표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 어느 문화에서든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서 대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질문에 늘 봉착하게 된다.  많은 영역에서, 특히 과거에 성경 신학과 조직 신학에서 발전되어 온 사례와 답변들이 매우 도움이 되며 실수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선교학자는 물론이고 선교사들도 신학의 배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선교는 단순히 문화와 인류를 연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데 목적이 있음으로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에서 다루어온 깊이 있는 학문과 비판 속에서 바른 신학의 적용을 찾아야 한다.
  
기독교는 아주 다양하게 분리된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누군 가  자기 신학만이 규범적이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자민족중심(ethnocentrism)적이 될 수밖에 없다.  바람직한 것은 하나의 통합적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의적으로 노력하기 보다는, 서로의 신학적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다른 신학에 대하여 귀는 기울여야 하나, 무엇이 진정한 복음주의에 입각한 신학인지에 대하여 분명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끝으로, 복음의 절대성을 보존함과 동시에 적절한 타협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게 된다면, 상황화는 결국 혼합주의에 문이 열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서구 교회들에 나타나고 있는 현 시대의 문제점은 어떻게 세상과 교회를 분리시킬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전복시키려는 것을 어떻게 막아 낼 수 있는 가라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복음 자체는 공격성이 있다.  믿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지상대위임'(the Great Commission)의 공격성을 결코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 말의 의미는 복음이 반드시 상황화되어야 함과 동시에 예언자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문화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무엇이 악한 것인 지에 관한 분명한 판단이 서 있어야 하며 그의 개선을 위한 담대한 선포가 있어야 함을 말한다.
  
상황화 과정 가운데 신학적 견해를 검토해 보는 데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면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Hiebert 1994, 100).  우선, 그런 견해들이 성경에 기초하여 나온 것인 지 신학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찾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교리적인 자기주장 보다는 겸손의 영과 기꺼이 듣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성경에 접근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로, 그런 견해가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비판에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성경의 해석과 적용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전 교회가 해석학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자신은 받아들이기 원치 않는 죄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지적해 줌으로써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는 것처럼, 믿는 자들은 그들 자신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개인의 편견들을 점검해 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해석학에 있어서도 협력적으로 성경을 풀어나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편견을 피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정당한 상황화를 위한 하나의 접근 방법을 얻어내기 위하여 폴 히버트는 처음부터 각 문화 속에 있는 교회의 권리와 책임, 그리고 역사적 상황에 대하여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그 상황 속에서 성경을 적용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던 것이다 (Hiebert 1994, 101).
  
부르스 니콜스(Bruce Nicholls)는 복음과 문화에 대한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두 가지 유형의 혼합주의적 양태를 지적하였다.  하나는 인류학과 관련이 있는 문화적인 혼합주의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관련된 신학적인 혼합주의이다 (Nicholls 1992, 41). 
  
첫째로 문화적인 혼합주의라 함은 수용자의 문화적인 요소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민중신학에서 탈춤이나 판소리, 심지어는 샤머니즘까지도 ‘한국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복음의 진수가 그곳에 있는 양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점을 들 수 있다.  또는 아프리카의 문화 속에서 내려온 정령신앙에도 문화적 요소를 통한 기독교적 접촉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둘째로 신학적 혼합주의라 함은 문화적 혼합주의와 비슷한 양태를 갖고 있지만 그 보다는 더 심각한 면에서 신앙의 격하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모든 신학이 문화적으로 조건화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성경의 계시에 대한 권위가 상실되고 성경이나 전통이나 경험 모두를 똑같이 진리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성경의 진리와 사실들은 관념화되어 버리고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실제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Nicholls 1992, 43).
  
어느 기독교 공동체이든지 상황화를 진행시켜가는 과정에 있어서 배타적인 자세, 종교적 다원주의, 전통적인 민속종교와 기독교를 동일시하려는 혼합주의, 등등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도 지속적인 ‘전환적 사고’(transformal idea)를 필요로 한다. 한편,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그 문화와의 효과적인 선교적 접촉점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지만 만일 그 문화적 요소 자체가 신학을 대치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다른 혼합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게 된다.  문화적 요소가 복음이나 신학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올바른 상황화의 방향을 위해서는 이러한 ‘견제와 균형’ 속에서 긍정적인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복음과 문화에 관련하여, 한 민족의 문화는 자기들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하며, 문화적인 요소들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면서 그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이럴 때에 서로 간에 전달이 가능한 매개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이해해야 상황화의 방향을 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이며 문화적인 형태를 이해하는 가운데 성경의 역사적인 사실과의 접촉점을 찾아 교회가 그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변화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절대불변의 단일한 상황화 신학은 있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종교와 세속적인 것과 과학 등등, 모든 다양한 상황 안에서의 대화는 한 문화권에서 상황화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Schwarz 1991, 35).  즉, 자기의 공동체나 사회 안에서는 모두가 서로 상호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합적 분석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내부와 외부로부터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음성학(Phonetics)과 음소론(Phonemics)이라고 하는 그리이스의 어원론에 기초하여, 한 상황 속에서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공헌을 하고 있는 ‘내부자적 관점’(emics or emic view)과 ‘외부자적 관점’(etics, or etic view)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용어들은 케네쓰 파이크(Kenneth Pike)가 1954년 처음 ‘에믹스’(emics)와 ‘에틱스’(etics)라고 말을 만들어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Headland 1990, 15).  ‘에믹스’라고 하는 내부자적 관점은 행위자 스스로 사물의 외형적 현상들을 의미있고 실제적이며 정확하게 대조해 보고 구분짓는 논리적이며 경험적인 체계라고 일컬어지는 반면에, ‘에틱스’라는 외부자적 관점은 공동체의 과학적 관찰에 의해 적절하게 판단되어지는 것에 의존하는 현상적 특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Headland 1990, 48).  다시 말하면, 내부자적 관점은 조직 내부로부터 행위를 연구함으로써 오는 결과인 것이며 외부자적 관점은 한 특수한 조직체계 외부로부터 행위를 연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관적 구성들(Emic constructs)은 신앙과 행위가 연구된 문화의 본 구성원들에 의해 적절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간주된 개념적 체계와 범주들이라고 볼 수 있는 평가이며 설명이고 분석들인 것이다. . . .  외관적 구성들(Etic constructs)은 과학적 관찰자들의 공동체에 의하여 적절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간주된 개념적 체계와 범주들이라고 볼 수 있는 평가이며 설명이고 분석들인 것이다. (Lett 1990, 130)

현재를 말하면서도 또한 역사적인 재구성을 다루게 되는 경우에 ‘통시적’이며 ‘공시적’인 관점 모두가 필요한 것처럼 (Pike 1990, 28), 개인이든 한 사회이든 그 가치를 말하는데 있어서는 내부자적 관점과 외부자적 접근 방법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Berry 1990, 86).
    
이러한 방법론과 관련하여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의 견해가 그 이해를 돕고 있다.  참여자는 주관적이며 객관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관찰자들도 주관적이며 객관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부자적 관점과 외부자적 관점에 기초한 사고 방법은 서로를 존중해 주는 데 있으며 행위자에 의하여 인식된 환경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Harris 1990, 50-51). 

이의 방법론은 신학적 접근 방법에 있어서의 ‘다이아디즘’(dyadism)과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각 개인들은 그들의 독특성 때문에 알려진다거나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혹은 다른 사물과의 양자 관계성(dyad)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이아디즘은 자기의 명예가 계속적으로 점검받고 확증되고 도전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가치를 두는 수단인 것이다. . . .  이처럼 다이아디즘이나 타인 지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명예를 찾고 그에 대해 배우는 수단으로서 봉사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Neyrey 1993, 51)

상황화 신학과 관련하여 모든 신학적 원칙들과 관계성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지속적이며 명확한 ‘안내 구성체’가 필요하다 (Lett 1990, 142).  이것은 어떤 교리적 안내서를 가졌다거나, 어느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이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그 사회 공동체 내에서 그들에 맞는 상황화 신학을 위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그 사회의 문화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그 사회 공동체 안에서 그 구성원들에 의해 다양한 신학적 방법론의 접근을 위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 변화는 역사적인 시기와 현대화되는 과정과 함께 이데올르기와 세계관 및 사고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특히 서구의 문화적 상황은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과학적인 사상이 주도하였던 모더니티(Modernity)를 맛보았고, 지금까지도 이것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아도 전 세계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보아도 개개인의 생활 곳곳에 확산되어 있고 점차로 소위 지구의 오지라고 불리는 곳에도 확산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로 말미암아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더니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엄청난 진보를 가져와 문명의 혜택을 주게 된 반면에, 과학적 방법론과 인간 자신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 주는 인본주의(humanism)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연대성에 문제점을 안겨 주었다.  이는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 및 행복에 최고의 우선권을 두면서 인간의 이성이 진리의 근원인 하나님의 계시를 대신해 버렸다. 
  
교회가 추구하였던 믿음의 능력이 침해당하면서 믿음에 대한 세속적인 문화의 영향력은 증가하는 반면에, 오히려 그런 문화의 영역에 대하여 믿음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데에 오늘날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전통적인 신앙과 이상이 이런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기독교적 문화의 권위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미 2/3 세계에서도 도시화되어 가고 있는 곳에서는 한결같이 모더니즘의 맛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현대 문물이 안겨다주는 문명의 유익을 얻는 데 급급해 있지, 곧 그들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엄청난 도전을 만나게 된다는 점을 깊이 있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것은 소위 개발도상국가에 속하여 있고, 선교 대상지인 2/3세계에서 겪고 있는 한결같은 문제이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현대 세계에서 복음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국가적으로 도전하는 지역들이 일본과 서구 유럽과 미국이라고 지칭한다.  모두가 모더니즘의 첨단을 걸어가고 있는 나라들이다.  일본은 아직도 기독교에 점령당해 보지 않았고, 서구 유럽은 점령도 당해 보았고 잃어 보기도 하였다.  미국은 아직도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교회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이 어떻게 그들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런지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힘든 시험무대 위에 올라서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문화 사상적으로 이미 모더니즘을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로 들어서 있다.  이런 사상 속에서는 삶의 의미나, 윤리 도덕이나, 진리들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문화적인 힘에 의해서 형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초월적인 것이나, 절대적인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하여 보려는 사고를 가짐으로써 그 결과 상대주의적이 되고 다원주의화되어 기독교의 절대적인 세계관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변천하는 시대에서 상황화 신학이 추구하며 목표하는 바는 현 시대와 문화 속에서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 신학(doing theology)의 실현에 있으며 또한 그것이 그 사회 속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상황화’의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복음이 ‘토착화’ 단계에서만 머무르는 데에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 먼저 다양화된 문화들 가운데 복음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상인 그 문화를 최대한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수용자의 문화적 관점으로부터만 복음을 해석함으로써 혼합주의적 양태로 흘러가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동성연애나 일부다처제 같은 사회적 문제, 혹은 타종교와 관련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타협하면서까지 접촉점을 찾으려는 시도들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복음이 어떤 집단적 구원을 위하여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개개인의 구원을 향하여 선포되어져야 하며 구원받은 자의 책임과 의무로 말미암아 개인의 삶의 변화와 죄악된 사회 구조의 변화가 같이 이루어지도록 성령의 능력을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가 없는 개인은 사회의 변화에 동참할 상황화에 임하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신실함과 그것이 사회나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나가도록 행동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 형평을 유지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상황화의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이 그 사회나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력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신 근본적인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구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접근하는 상황화는 결국 어느 하나의 문화나 사회 속에서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부분적인 신학’(partial theology)으로 남게 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한을 풀어내는 단지 ‘신학적인 지엽주의’(theological provincialism)에 그냥 머물러 있게 됨으로써, 오히려 온전한 복음의 진리와 가치를 전달하는 데에 장애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4. 역사적 사례를 통한 상황화 고찰

중국에 전래된 기독교 형태의 경교(Nestorianism)는 당나라(A.D. 618-907) 때 아주 번성을 하였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가 강성하였던 상황에서 복음과 문화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나름대로 “상황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적용해 볼만 요소가 있는지, 어떤 점에서 실패를 하였는지 분석해 보는 것은 상황화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좋은 사례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렇게 당나라 때 번성하였던 기독교인 경교가 지금은 왜 사라진 종교가 되었는지, 적응의 과정에서 혼합주의적인 요소는 없었는지, 그 당시 문화와 종교의 관계 속에서 상황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신학적 문제는 없었는지를 고찰해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현대 기독교의 상황화 과정에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상황화를 이루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찾아가는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케네쓰 라토렛이 지적하고 있는 다음의 세 가지 부분은 중국에서 경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지 잘 분석해 주고 있다 (Latourette 1932, 57-60).
  
첫째, 경교는 중국에서 외국인 공동체의 신앙이라는 것을 불식시키지 못하였다.  신자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상인들, 군인들, 선교사들로서 당나라의 강한 권위 아래서 살고 있는 비중국인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경교는 그 당시 멸시 당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주요한 구성체를 이루고 있는 종파가 아니라, 정부기관에서 세력을 가진 외국인 지지자들과 최소한 중국어를 읽고 문학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기념비에 적혀있는 이름들을 보면 중국인 신자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나 그 숫자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교는 외국인들의 지도력과 지원에 주로 의존하였던 것이다.
  
둘째, 경교는 그 당시 특별히 어떤 새로운 신앙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었던 때에 중국에 들어왔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들어올 때는 다양한 철학과 동방의 종교 안에서 만족감을 추구하려 하였고 국가적인 신앙이 어떤 것을 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어떤 종교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중국의 당나라 때는 예전의 민속신앙이 팽배해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그 사이로 불교가 널리 전파되어있었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민속신앙이 팽배해 있었던 상황에 불교가 들어와 있었기에 경교 또한 성공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일반 중국 사람들에게는 경교가 그 당시 번성하고 있었던 불교의 다른 종파 정도로 여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교의 번역자들이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였고 두 종교 지도자들 간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경교의 신자들은 중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옷을 입고 신앙을 전파하려 하였지만 결과적으론 기독교의 독특성이 상실되고 그 목적이 퇴색해 버렸던 것이다.
  
셋째, 경교의 선교사들은 교회의 본질적인 중심체로부터 분리되어 나갔으며 회중들로부터 영성이나 도움을 거의 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경교는 소수 집단화되었고 거대한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펼쳐나가는데 이런 것들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경교가 중국 종교의 변방에 놓여있었고 그 당시 정치적인 불안정 가운데서 어떻게 거의 250년간 존속해 올 수 있었는지를 추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종합적으로 볼 때, 근본적인 문제는 경교를 하나의 종교로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현지인 신앙공동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외국의 종교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나라의 쇠퇴와 함께 경교도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경교의 선교사들이 중국인들의 삶과 사고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경교가 불교와 연계성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인상을 깊이 주고 있다. 
  
한편, 9세기에 경교가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경교 신자들이 중국의 모슬렘 공동체에 흡수되어버렸다는 주장도 있다.  쿨링(Mrs. C. E. Couling)의 책 The Luminous Religion에 보면 특히 핍박의 시대에 네스토리안들은 규모가 더 크고 자신들을 박대하지 않았던 모슬렘 공동체에 합병되었다는 것이다.  서로가 유일신을 믿고 있었고 그 당시 페르시아의 사라센들도 기독교인들과 매우 친근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이방종교를 택하기 보다는 이슬람 공동체에 흡입되는 것을 낫게 여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Aprem 1980, 72). 하지만 이것은 다만 추론일 뿐 명확한 보완 자료를 통해 증명되어야할 문제이다.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경로와 과정을 밟아왔던지 간에 그 당시에 존재했던 교회들에 대한 약간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결국 중국에서 생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교가 전해 주려했던 신앙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까지 전파하려 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의 삶을 중국인들 앞에서 어떻게 보여주려 했는가는 상황화 과정을 말하면서 짚어 보아야할 중요한 신학적 문제인 것이다.  라토렛은 자료의 분석을 통해 몇 가지 신학적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Latourrete 55-56).
  
물론, 남아있는 자료를 볼 때 경교의 신자들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다.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과 세례를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믿었다.  또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the Mother of God)라고 하거나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연옥의 교리를 반대하면서도 죽은 자를 위해서는 기도를 하였다.  화체설은 부인하였지만 성만찬 때 그리스도의 진정한 현존을 주장하였다.
  
실제로 무엇을 중국인들에게 가르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실생활에 있어서 사랑과 자비와 친절을 강조하였으며 구제를 하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며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적인 의식의 준수로 금식을 하며 침묵과 명상을 하였고, 하루에 일곱 번씩 예배와 찬송을 하였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일곱 번째 날에는 성만찬이라고 할 수 있는 “희생제사”(a sacrifice)를 가졌다.
  
이런 경교가 왜 중국의 문화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간기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가?  경교가 약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로마제국 아래 기독교가 가져보지 못했던 안정과 유익을 가졌었고 심지어 재정적인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속하지 못했는가를 분석해 보는 것은 상황화 과정에 귀중한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무엘 마펫의 분석을 통해 좀더 문제점 분석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가지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주기는 어렵지만 유추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제시해 주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가지 분야보다는 종교적, 신학적, 선교적, 정치적 범주들을 고려하면서 그 대답을 찾아 보아야할 것이다 (Moffett 1992, 303).
  
첫째, 9세기경 기독교인들에 대한 종교적인 탄압을 들 수 있다.  이는 특히 반기독교적이라기 보다는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감이 작용을 하였고 무능한 제왕들이 왕권을 계승하면서 국가적 정체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는 종파들에 대한 핍박이 있었다.  이때는 소위 “비중국적인 종교들”에 대한 탄압이었다.  여기에는 기독교를 포함하여 불교와 마니교 모두가 포함되어 있었다.  845년에 불교를 반대하는 큰 핍박이 있었다.
  
경교가 “페르시아”의 종교라고 알려진 것 때문에 외국의 종교라는 이유로 교회의 위치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경교나 조로아스터교 같은 외래종교들은 불교의 또 다른 이단적 형태라고 중국인들은 간주했을 수도 있다 (Foster 1939, 121).  불교가 핍박을 받아 쫓겨나가는 상황에서 이런 외래종교들의 예배가 존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데 종사하는 사람들은 환속할 것을 강요받았고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그들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고 감금하기도 하였다 (Foster, 123).
  
두 번째 요소로 경교가 당나라 시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신학적인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경교가 유교, 도교, 불교와 같은 사상을 혼합하고 명목적 기독교로 변질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신학적 이슈인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문제나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호칭에서 논쟁이 되었던 부분을 유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몇몇 문헌들, 예를 들면, “the Sutra of Mysterious Rest and Joy"와 “the Sutra on the Origin of Origins"에서는 기독교적인 용어가 거의 없으며 모호하고 도교적인 색채가 있어서 상황화라기 보다는 혼합주의적인 성격이 나타나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해석적인 부분에 기독론이나 구원론, 십계명을 풀이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J. 레기(Legge)는 경교가 왜 실패했느냐는 질문에 단순하게 그 안에는 복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그 말이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 한 예로, “the Jesus-Messiah Sutra"라는 문헌을 보면 그 안에는 원죄로부터 대속적 죽음까지, 동정녀 탄생으로부터 십자가로까지, 십계명부터 회개로까지, 불신에 대한 영원한 형벌로부터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구원에까지, 우상에 대한 저주로부터 적을 사랑하라는 것까지, “위에 있는 권세자에게 복종하라”는 바울 사도의 권고로부터 “배고픈 자는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것까지, 복음의 내용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마펫은 반박하고 있다 (Moffet, 309).
  
특히 가장 신학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기독론과 전도에 있어서도 분명하게 구원은 그리스도만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학을 견지하였고 이를 전파하는 것이 지상대위임(the Great Commission)인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7-8세기에서는 번창하던 것이 9-10세기에 들어서서는 왜 갑자기 사라져 버렸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남게 되면서 그러는 가운데 혼합주의화되지 않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긍정적인 신학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헌에서는 하나님과 부처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초기 선교사들이 어려운 한자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빨리 번역하면서 나올 수 있는 오류라 해도 이는 결코 변명할 수 없는 중대한 실수임에 분명하다. 중국 최초의 경교 선교사인 알로펜이 입국한 후 3년 뒤(638년)에 쓰여진 “the Jesus-Messiah Sutra"(예수-메시아경)에서 언급된 오류가 약 100여년 뒤 8세기에서도 똑같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론을 이해시키는데 충분히 혼동을 일으킬만한 요소인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용어를 선교의 접촉점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였을지라도 그 문화권을 이해하려는 관점으로부터만 보았기 때문에 독특한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표면적으로 신학적 문제를 검토해 보면 크게 잘못된 것이 없을지 몰라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응”(adaptations)의 문제보다는 “생략”(omissions)으로 인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신뢰성이 있는 자료라고 하는 경교비를 보아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언급되어있지 않고 신학적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성경에 대한 강조가 나타나있지 않다.
  
결정적으로 10세기경에 경교가 중국에서 사라진 이유 중에서 상황화와 관련하여 지적해야할 점은 경교가 중국인들의 교회로 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외국인들의 교회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선교사들도 페르시아 사람들이고 비문에 적혀있는 이름들을 보아도 시리아인 이름들이 많고 중앙아시아 변방 쪽의 사람들 이름이 기록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그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종교는 결국 외국인들의 종교가 되는 것이지 토착적인 종교로써 자리 매김에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한 가지 더 고려해 보아야할 점이 있다.  하나의 종교가 붕괴되어버리는 과정에서 지적되었던 다양한 요소들, 즉 종교적 핍박이나 신학적 타협, 외래적인 요소 등등 여러 가지를 언급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교회가 황실의 보호와 후원에 너무 오랫동안 의존해 왔고 황실의 붕괴와 더불어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생존하는데 있어서 정권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며 그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경교의 정착과 번성과 소멸과정을 살펴보면서, 상황화 문제와 관련하여 복음을 전해 줄 때에 끊임없이 피해 가야할 잠재적인 요소를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하나는 복음의 구성요소에 복음을 전해 주는 전달자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함께 전해 주려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보존성을 위해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며 그 메시지를 대체하거나 제거해 버리면서 수용자의 문화로부터만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양태는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상황화의 과정은 언어적임과 동시에 비언어적인 행동의 신학화 작업이다.  이것은 성경 번역을 포함하여 말씀에 대한 해석과 적용,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 전도와 교회 개척, 교육 및 예배의 형태, 이 모든 분야가 주님의 지상 최대의 위임(마 28: 18-20; 행 1:8)을 수행하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Hesselgrave & Rommen 1989, 200).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하신 근본적인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구원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접근하는 상황화는 결국 어느 하나의 문화나 사회 속에서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부분적인 신학’(partial theology)으로 남게 되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한을 풀어내는 단지 ‘신학적인 지엽주의’(theological provincialism)에 그냥 머물러 있게 됨으로써, 오히려 온전한 복음의 진리와 가치를 전달하는 데에 장애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어떤 면에서 상황화 신학은 시대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각 상황에 따른 ‘신학들’은 존재해 왔다. 복음을 각기 변화하는 시대에서, 그리고 서로가 다른 문화들 속에서 나름대로 적합한 적용 모델들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신학이 다른 사회적인 학문으로 전락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성경이 ‘텍스트’로서의 권위가 보존되어야 하며, 그 안에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초문화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흥호 교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선교학, GSN 상임이사)

참고도서목록

Aprem, Mar. Nestorian Missions. N.Y.: Orbis Books, 1980.

Foster, John. The Church of the T'ang Dynasty. N.Y.: The MaCmillan Company, 1939.

Headland, Thomas N. 1990. "Introduction: A dialogue between Kenneth Pike and Marvin Harris on emics and etics." In Emics and etics: The insider/outsider debates, 1990. ed. Thomas N. Headland, Kenneth L. Pike, and Marvin Harris. Newbury Park, Calif.:  Sage Publications.

Hesselgrave, David J., and Rommen, Edward. Contextualization: Meanings, methods, and models. Grand Rapids, Mich.:  Baker Book House, 1989.

Hiebert, Paul H.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Grand Rapids, Mich.:  Baker Book House, 1994.

Latourette, Kenneth Scott.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in China. N.Y.: The MaCmillan Company, 1932.

Lett, James. “Emics and etics: Notes on the epistemology of anthropology." In Emics and etics: The insider/outsider debates, 1990. ed. Thomas N. Headland, Kenneth L.       Pike, and Marvin Harris. Newbury, Calif.:  Sage Publications.

Moffett, Samuel Hugh, A History of Christianity in Asia. Vol. I. San Francisco: Harper Collins Publisher,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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