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백석 총회세계선교위원회(위원장 조용활)는 최근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다종교 상황에서의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2010 선교포럼'을 개최했다. 다음은 김성태 교수(총신대 신대원)가 전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충돌" 발표.
1. 들어가는 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이슬람 발생 초기로부터 기원된다.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그리고 다시 메디나에서 메카로 옮겨 갈 때 기독교와의 갈등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시작되었다. 모하메드는 메카 시절에 기독교에 대하여 영향을 받았고, 상당히 호의적인 짝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창시한 이슬람에 대하여 저들이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자신을 이단시하자 기독교인 뿐 아니라 유대교인들까지 카피르(Kafir)라고 부르면서 적대시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모하메드의 마음이 그대로 메디나 시절에 소위 알라에게서 받은 코란 계시에 적나라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이 기독교에 대한 악 감정을 품기 시작한 모하메드는 자신이 직접 영향을 받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를 극복하며, 이슬람의 우월성과 최종성을 확증시키기 위하여 코란의 진정성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슬람만의 독특한 교리체계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슬람은 문자 그대로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는 율법주의 종교이다. 율법주의 종교는 그 종교 특성상 어려서부터 모든 종교의식과 철저한 교리교육을 통해서 그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구현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은 중동문화의 배경 속에서 유대교와 이단적 기독교 분파의 영향을 받았고, 또한 당대 아랍세계의 민속 종교적 요소와 뒤섞여 아주 복잡한 종교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무엇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문화충돌을 가져오는가? 우리는 이것을 선교적인 면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떤 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가?
문화는 특정한 공동체의 삶의 현장이요, 그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구현현장이다. 문화는 세계관이 중심이요, 세계관은 종교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이슬람의 문화를 논할 때 아랍 인종의 삶의 현장을 이해해야 하며, 모하메드가 창설한 이슬람의 사상체계가 어떻게 아랍인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고 있는지 그 삶의 특징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이슬람은 세계적 종교로서 그 추종자만 약 15억에 이르고 있다. 아랍 종족을 통해서 초기 이슬람이 형성되었지만 이것은 이란족, 투르크족을 거쳐서 지금은 종족 수효만 칠백 여 개가 넘는 인종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코란이 기록된 아랍어를 통해서 이슬람의 사상이 전수되면서 이슬람의 가치관을 구현하는 이슬람 문화가 공통적으로 형성이 되고, 또한 여기에는 각 지역마다 인종마다의 독특한 삶의 특징들이 섞여져서 범세계적 이슬람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슬람의 선교전략 중에 이슬람의 문화를 단순히 소개한다는 문화교류의 명목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이슬람 교리체계와 무슬림의 삶은 양분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이슬람의 포교를 위한 선교행위 즉 다와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슬람이 가진 율법주의종교의 특성 그 자체 때문이다.
그러면 이슬람 문화의 특징을 우선적으로 살펴보자. 여기에는 아랍인들의 독특한 삶의 현장이 녹아있는 여러 모습들이 있고, 이슬람의 사상체계가 영향을 주어 형성된 종교적 삶의 모습이 있다. 이것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그 자체의 특성처럼 유기체처럼 얽혀있고, 무슬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슬람의 교리체계 즉 세계관이 전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더 나아가서 무슬림의 인성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슬람은 발생초기부터 아랍인들이 가진 민속 종교적 특징을 반영하였으며, 이것은 각 지역마다의 민속 종교적 요소들을 흡수하거나 토착화하는 양상으로 발전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또한 이슬람문화의 한 양태로서 나타나고 있다.
개혁주의 선교신학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변혁의 모델은 화란의 요한네스 바빙크의 “엘렝틱스”의 모델이 있다. 이 엘렝틱스의 모델로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선교모델을 살펴보자. 엘렝틱스의 모델은 타종교의 영역을 일반계시 영역 즉 보통은총의 영역으로 보며, 나름대로 자연은총적 기능은 있으나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본다.
보통은총의 영역은 죄와 사탄의 이중 장애를 받게 된다. 문화 속에서는 세계관의 영역 속에서 이중 장애가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왜곡되게 할 수밖에 없으며, 본질적으로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어떤 문화도 그 심층적 종교적 세계관도 그 자체가 단순한 실용적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중립적인 성격이 될 수 없다. 반드시 모든 문화는 문화변혁의 준거점이며, 진리의 규범성을 가진 성경계시문화의 조명을 받고, 그 모든 이교적인 면과 죄성과 이중 장애의 요소들이 들어나야 한다. 이것은 충돌(Confrontio)의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다.
충돌은 두 번째 단계로서 성경의 기록된 계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로잡음(Possesio)이 나타나야 한다. 이 사로잡음은 네 가지 과정을 통해서 나타난다.
첫 번째는 현지 문화의 제 요소들이 그 형태나 의미에 있어서 전혀 성경과 상치되기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거부되어야 한다. 만일 이런 위험성을 무시하고, 사용한다면 성경계시의미를 왜곡되게 하는 혼합주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둘째는 현지 문화요소들이 세속화 되거나 종교적 의미가 전혀 없는 실용적 경우이거나 단순한 기능적 측면이 있을 때 이것은 경계 없이 현지 문화의 토착화로 활용될 수 있다. 되도록 현지문화에 적응하여 복음을 전달하게 될 때 가장 효과적 의사전달이 된다.
세 번째는 현지문화요소를 그대로 사용하면 성경계시의미가 왜곡될 위험성이 있으나 구태여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현지 문화요소의 형태를 다소 수정하여 성경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성경번역에 있어서 관용적 번역의 원리가 된다.
네 번째는 현지문화형태로는 도저히 성경계시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성경계시의미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형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현지 원주민 교회공동체를 통한 장기간의 교육과 문화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중생은 복음과 문화의 충돌이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개인의 마음과 전 인격과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의 영역 즉 세계관의 영역을 성령 하나님의 조명과 역사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관으로 사로잡게 될 때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뿐 아니라 개개인의 변혁을 가져오며, 세계관의 변혁을 가져오기에 개인적이면서 궁극적으로 구조적인 총체적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이것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문화변혁이라고 부르며, 구조적으로는 사회변혁이며,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 확산이기에 왕국적 변혁이다. 개인과 개개인의 중생적 변화는 반드시 교회공동체의 설립을 가져와야 한다. 교회공동체는 문화권 속에서 문화변혁과 사회변혁의 주역이며, 교회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훈련시키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시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능력 있는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바로 이 엘렝틱스의 모델이 이슬람을 향한 우리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모델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슬람의 문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2. 아랍인들의 삶의 특징과 이슬람문화
아랍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삶의 특징들이 모하메드를 통해서 코란에 반영되어 있고, 이것은 전 세계의 모든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어떤 모습인가?
1) 대가족중심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아랍인들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적이다. 현대인들의 핵가족 개념과는 다르게 대가족 중심이며,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양가의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친인척의 왕래와 교류가 빈번하며, 가족의 대소사와 모든 친인척의 대소사에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참여한다. 만일 한 가족 구성원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모든 친인척들이 달라붙어서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가족끼리는 허물이 없이 항상 문호를 개방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결혼도 가장 이상적 형태는 병행사촌제이며, 이것을 통해 가족끼리의 혈연관계를 더욱 끈끈히 하고,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가족은 또한 이슬람공동체 즉 움마의 가장 기초 단위이며, 여기서부터 이슬람의 모든 가치관이 우선적으로 구현되게 되어 있다. 즉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가족의 종교지도자 이맘이 되며, 이슬람의 모든 종교교육은 가정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러한 대가족 중심의 이슬람사회구조는 이슬람공동체 움마의 개념과 더불어 이슬람을 보존하며, 확산시키는 구심력적 역할을 하고 있다(수라 4: 1 ; 16: 72).
2) 영예와 수치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랍인의 삶 속에 어떤 의미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대가족 집단 속에 개인이다. 가족이 지향하는 가치체계와 집안 규율을 한 가족 구성원이 어겼다고 하면, 그것은 개인의 책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의 책임이다.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가 그대로 이슬람의 교리체계 속에 녹아 있다. 즉 이슬람은 개인의 종교가 아니라 집단주의적 종교이다. 만일 한 사람이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려 하면 이것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전체 구성원의 문제가 돼서 가족은 배교에 대한 불명예를 안게 되고, 이것은 이슬람 사회에서 수치스러운 일이며, 가족이 솔선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모든 불명예와 수치는 모두 그 가족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무슬림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게 될 때 이것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일로 보아서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살인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근대 이슬람국가에서 대개가 법으로 금지하는 일이지만 그러나 코란과 하디스의 영향력이 있기에 그대로 관행적으로 묵인하는 일이 되곤 한다.
3) 가부장적 문화이다.
전형적 아랍사회는 남자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이다. 따라서 모든 최종 결정권은 남성이 가지고 있으며,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항상 차선의 문제이다. 이러한 가부장적 문화가 그대로 코란과 하디스에 녹아있다. 여성이 여성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베일을 쓰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한 남편의 아내로서 그리고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나타내는 미덕으로 베일이 권장되고 있다(24: 29-31). 이슬람은 여성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가지고 있다.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며, 정치에도 참여하지만 실상 그 역할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모든 무슬림 여성들은 남성의 성적 타락을 막기 위해 히잡이나 부루카를 입어야 하며, 집안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재산권이나 이혼의 권리나 법정 증인권이나 임금이나 모든 면에서 남성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불이익을 안고 있다(수라4: 11-14, 176 ; 2: 180-182). 이것을 코란과 하디스는 당연한 것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슬람 변증가들은 이슬람이 오히려 아랍사회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여아 살해와 여성들의 노예화 상태를 해결하여 여성들의 참다운 인권을 존중하며, 여성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종교라고 주장하지만 실상 이슬람 이전의 아랍사회가 가진 가부장적 문화가 그대로 이슬람에 녹아있다.
4) 관용과 접대의 문화이다.
유목문화를 가진 아랍사회는 외부 손님에 대한 친절과 관용과 접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낮선 손님이라도 외부 사람의 방문이 있으면 자신의 가진 최선의 것으로 대접을 해야 그 가정의 영예가 지켜지며, 상대방이 자신의 가정을 방문했다는 그 자체를 영예로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2: 83, 155-157). 아무리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싫은 내색이나 손님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접대문화는 상호적이며, 친절과 관용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슬람에서 이런 친절과 접대의 문화는 이슬람공동체를 의미하는 움마에서 더욱 반영이 되고 있다. 전 세계의 무슬림들은 서로를 가족의식으로 바라보며, 무슬림끼리 교류할 때 이런 친절과 접대의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포교에 있어 상당한 인센티브로 작용하며, 실제 이슬람의 중요 선교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공동체 안에 있는 구성원은 어떤 의미로 가족이며, 모든 대소사를 함께 한다는 강한 집단적 유대의식이다. 바로 이 집단적 유대의식을 고취시키는 주요 수단이 관용과 접대의 문화이다.
5) 할랄(Halal)과 하람(Haram)의 음식 문화이다.
코란은 인간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알라가 허용한 합법적인 것과 알라가 금지한 불법적인 것을 구분한다. 알라가 금지한 것을 행할 때는 알라의 노여움을 사서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듯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코란은 규정하는데 이것을 샤리아(Sharia) 즉 이슬람법에 의해 규정한다. 특히 음식문화에 있어서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확실하게 구분한다(수라 16: 114-117 ; 2: 168-169). 먹어서 안 되는 것 즉 하람은 이슬람의 자비하(Zabiha) 방식에 의해 도살되지 않은 고기는 먹을 수 없다. 그러면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반드시 자비하 방식에 의해 도살되어야 한다. 이것은 할랄이다. 돼지고기로 된 어떤 음식도 먹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람이다. 송곳니를 가진 짐승은 먹을 수 없는 하람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해산물은 먹을 수 있는 할랄이다. 알콜 성분이 있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는 하람이다(수라 2: 219). 피와 죽은 동물의 고기는 먹을 수 없다(수라 2: 173). 이렇듯이 이슬람의 음식문화는 할랄과 하람의 규정에 매여 있는데 그 유래는 유대교의 레위기 11장에 나와 있는 코셔(Kosher)의 반영이다.
3. 이슬람의 교리와 이슬람문화
이슬람의 교리적 특징은 무슬림만의 독특한 삶의 정서와 행동양식을 낳고 있다. 즉 이것은 무슬림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복음전달은 무슬림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차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에게서 충분히 연구되어졌다. 특히 개혁교회의 전통에 있어서 무슬림 선교는 19세기 이후로 중동지역, 서남아시아지역 등에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졌고, 이온 팔코너, 윌리암 템플 게어드너, 사무엘 즈웸버 등의 대표적 선교사들과 학자들이 존재해왔다. 이들은 이슬람 교리에 정통하였으며, 독보적인 선교서적들을 많이 출판하였다. 본인은 이슬람 교리문제 혹 코란의 진정성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교리적 영향으로 무슬림의 정서와 행동양식에 어떤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무슬림의 특정 정서와 행동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1) 코란의 권위
이슬람은 코란을 천상의 언어인 아랍어로 기록된 신의 계시라고 믿는다. 코란은 코란 자체의 기원을 알라가 있는 천상 세계로부터 기원된 것이며,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수라 10: 37 ; 4: 82). 또한 코란은 알라가 인간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모든 계시의 종결편이며, 더 이상의 알라 계시는 없다고 주장한다(수라 85: 21-22 ; 43: 3-4).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코란은 지상에서 알라를 대변하는 유일무이한 그분의 말씀이 되며, 코란에 대한 경외감과 그 권위가 거의 신을 대면하는 차원이다. 코란을 보관하거나 만지거나 암송할 때 나름대로의 규정이 있으며, 대단한 존경심을 가지고 코란을 조심스럽게 대한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함부로 간수하거나 마구 다루게 될 때 코란을 대하는 저들의 입장과 비교하여 경악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코란을 함부로 취급하게 되면 대노하게 되고, 의사소통의 기회가 막혀지게 된다.
선교적 차원에서 그들의 경전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이해하면서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을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코란 경전의 문제점을 성경과 비교하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또한 코란을 인간의 창조물이 아닌 천상세계의 기원으로 보는 교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기원과 연관하여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논증에 사용할 수 있다. 관건은 이런 논리적 설명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보다 선행이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2) 알라의 권위
알라는 절대적으로 단일신적 존재이다(수라 112장). 코란은 알라에게 어떤 대상을 두는 것을 가장 불경한 죄이며, 용서받지 못할 심각한 죄로 간주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알라에 대한 최악의 불경스러운 죄악으로 보며, 이것을 용서받지 못할 죄로 규정하고 있다(수라 5: 75). 이런 점에서 이슬람의 종교체계 속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교리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고,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다. 알라가 인간 여자인 마리아를 취하여 예수를 낳는 교리로 오해하고 있으며, 삼위일체교리는 하나님과 마리아와 예수를 신적 존재로 숭배하는 삼신 형태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방교회 기독론의 잘못된 이단적 사상의 영향력과 초기 동방에 영향을 미쳤던 그노시스적 사상의 잔재이다. 삼위일체론이 삼신개념이 아니라 단일신론 개념이며, 세 인격이 하나의 본질로 존재함을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서브탄시아와 우수시아의 문제). 즉 수리적 공리로서 1x1x1=1 인 것을 설득하여 단일신론과 상충되지 않음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계시의 신비이며, 인간의 변증적 노력으로 완전히 납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깨닫게 되어지는 선물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알라의 단일신론 개념은 이슬람의 세계관 속에서 그 어떤 피조물로 알라의 모습을 나타내거나 묘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오직 코란만이 알라의 말씀으로 그분을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은 그림이나 성상으로 알라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여기며 이것을 절대 엄금하고 있다. 이것은 우상숭배뿐 아니라 알라에 대한 불경죄가 된다.
이슬람에 있어서 코란의 아랍어 구절들을 대상으로 한 캘로그래프 문화가 매우 정교하게 발전되었으며, 또한 모스크나 마스지드 사원을 건축하게 될 때 그 어떤 그림이나 성상이 아니라 캘로그래프 혹은 기하학적 문양으로 그 내부를 장식하게 되어있다. 알라에 대한 이런 교리는 또한 모하메드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모하메드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어떤 상을 만들어 숭배하거나 묘사하는 것을 절대 엄금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에서 일간 신문들이 신문만화를 통해 알라와 모하메드와 무슬림들을 풍자하는 행위를 한 것은 전 세계의 무슬림들에게 혐오감과 극렬한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코란의 구절들을 자유롭게 인용하여 그 문제점을 들어내는 것과 코란 자체가 증언하고 있는 신구약 성경의 왜곡된 시각을 교정하여 성경의 권위를 인정케 하는 것과 동시에 이사 알 무스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진정성을 설득시키는 일이다. 이런 경전 중심의 접근을 할 때 문화적 방법으로 아랍어로 된 코란 구절들과 저들도 신적 계시로 인정하는 신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캘로그래프로 묘사하여 복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3) 모하메드의 위치
모하메드는 자신이 신이 아님을 분명히 천명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에 있어서 모하메드의 위치는 인류를 위해 알라가 보낸 최종적 선지자로서 그 인품이나 인격과 언행심사가 거의 완전한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수라 6: 50 ; 17: 86 ; 29: 50). 따라서 무슬림들에게 모하메드는 자신들이 본받아야 할 가장 이상적 인간상이며, 거의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숭배를 받고 있다.
무슬림들이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명명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의 뜻이 알라와 모하메드가 들어가며 그 비율은 거의 대등하다. 즉 김 씨 성을 가졌다면 “알라의 충복으로서의 김”이라거나 아니면“모하메드의 충복으로서의 김”등으로 이름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할 때 모하메드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하면, 무슬림들의 공통된 태도는 복음을 듣기 전에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고 달려 들 것이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방법이다. 모하메드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 성경과 역사적 연구를 통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졌어도 무슬림들에게 모하메드에 대한 자극적인 말을 하므로 싸움을 처음부터 야기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진정성과 신구약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의 많은 교리에 대한 왜곡된 무슬림들의 시각을 교정하고 난 이후에 코란의 문제점과 이슬람 교리의 취약성과 모하메드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혜의 문제이며, 효과적 의사전달을 위한 전략적 방법이며 또한 효과적 복음전달의 순서가 된다.
4) 기도(Salat)와 금식(Saum), 구제(Zacat)의 문제
이슬람은 메카 방향을 향하여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게 되어 있다. 기도시간은 일출, 정오, 오후, 일몰, 밤이다. 기도는 개인적으로 해도 무방하지만 되도록 단체로 하는 것이 권장된다(수라 2: 43). 금요일에는 교통사고나 외유 중 그리고 임신 중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회중과 함께 모스크나 마스지드에 가서 기도를 드려야 한다(수라 2: 238 ; 26: 218-219 ; 62: 9 ; 107: 4-5).
무슬림들이 기도하는 것은 알라와의 개인적인 대화라기보다 알라에 대한 복종에서 나오는 의식적인 행동이다. 그들이 모스크에서 기도를 할 때 알라의 땅이 그들의 땅이 되며, 기도하는 순간 전 세계의 무슬림들은 모두가 다 이슬람의 움마 공동체에 속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이 이슬람의 기도는 기독교의 기도와 신학적 내용이 다르다. 알라에 대한 순종 행위이며, 이슬람 공동체의 결속과 유대를 다지는 중요한 종교적 행위이다. 기도 없이는 구원이 보장되지 않으며, 기도하는 그 자체가 구원의 필수적 요소이다(수라 35: 29 ; 39: 9).
무슬림들은 기도 전에 반드시 몸을 씻는 세정식의 의식을 갖는다. 얼굴, 손에서 발꿈치, 머리, 그리고 발에서 발목까지 닦는다. 금요일 모스크에 가서 기도할 때에는 몸을 다 씻고 간다. 이렇듯이 무슬림들이 세정식을 갖는 것은 기도의 연장선으로서 알라에 대한 경외감과 외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며, 기도를 통해 영혼 뿐 아니라 몸도 깨끗이 씻는다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근동 사회에 있어서 회중이 모이는 예배 장소에서 개인의 청결유지는 공동체의 건강유지와 바로 직결되기에 세정식이 행해졌다고 본다.
이슬람의 기도신학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기도신학과 다르지만, 참된 하나님에 대한 마음과 몸의 진정성을 손을 모으거나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는 행위로 나타내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기도하는 그 자체가 구원과 직접 연결되는 공덕 신학적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시간을 내어서 정규적으로 기도하는 그 자체를 정죄할 수는 없다. 또한 기도하기 전에 세정식을 갖는 것은 알라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것과 청결유지를 통한 공동체의 건강 문제가 있기에 그 순서를 이슬람식으로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세정식 자체를 문제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기에 이슬람 예배의식의 잘못된 신학적 전제를 피하면서 아랍인들의 마음속에 참된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저들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성경적 토착화의 문제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금식은 이슬람 달력으로 아홉 번 째 되는 달에 29일이나 30일 동안 수행한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모든 음식, 물, 부부 관계를 금해야 한다. 그러나 일몰 후에는 식사를 하며, 하루를 견디기 위해서 일출 전에 식사를 하기도 한다(수라 2: 183-187). 이슬람에 있어서 라마단 기간의 한 달 금식은 코란에 의하면 그 자체가 죄 사함을 받게 되는 행위이며, 알라의 보상이 있게 된다(수라 33: 35). 또한 금식 그 자체가 알라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금식은 무슬림들에게 영적 훈련이 되기도 하며, 금식기간 동안 연약한 이웃의 고통을 생각하게 하고, 자선을 베푼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금식의 공덕 신학적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금식함으로 알라를 기쁘게 하며, 동시에 자신의 죄를 탕감 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공덕 신학적 금식의 의미는 절대 경계해야 하며, 기독교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금식을 통해 자신의 영적 훈련의 계기로 삼으며, 또한 성경적 의미와 같이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상기하고, 그 고통에 동참하는 구제와 구호에 힘쓰는 계기로 삼는다는 뜻은 권장할 만하고, 또한 기독교인들도 실행할 만한 성경적 토착화의 한 사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구제는 자신의 재산을 신 앞에서 정화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시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가 있다(수라 9: 103 ; 51: 19 ; 98: 5). 물론 구제 자체가 무슬림의 의무이며, 구원의 필수적 행위요소이다. 이것은 기도와 금식처럼 공덕신학의 내용이 있다. 구제는 알라의 마지막 날 심판 때에 덕을 쌓는 것이 되어 죄를 탕감 받게 되리라는 의미가 있다(수라 5: 12 ; 23: 1-7). 이러한 공덕 신학적 내용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구제를 생활화함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본다는 의미는 기독교인들도 적극 권장할 만한 내용이다. 또한 신 앞에서 자신이 가진 재산을 성찰하고,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보기보다 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개념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성경적 청지기신학의 내용과 일치된다. 구제는 기본 생활필수품, 개인 가전도구 등 생활용품에는 부과되지 않고, 기타의 수입에 다양한 방법으로 내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토지에는 농산물의 10%을 내고, 금과 은 같은 유동자산에는 일 년간 수입의 2.5%을 낸다. 이슬람 사회는 구제로 들어 온 헌금을 가지고 또한 이슬람 포교에 사용하기도 한다.
5) 신이 정한 명령으로서 까다르(Qadar)를 믿는다.
까다르의 사상은 알라가 선과 악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영원부터 계획하고, 모든 것을 알라의 뜻대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수라 31: 34 ; 54: 49). 어떤 일도 알라의 예지와 그의 신적 작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다. 인간의 운명도 전적으로 알라의 작정 가운데서 이루어지며, 인간은 오직 알라의 뜻을 순종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무슬림들에게 일종의 숙명론을 형성한다.
무슬림은 인간의 원죄를 믿지 않는다. 죄란 선택의 문제이며, 알라에게 순종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모든 행위 자체가 이미 알라를 통해 결정되어 있다는 까다르의 사상은 무슬림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알라에게 돌리며, 일종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포자기의 삶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오류나 과오나 잘못을 심각하게 뉘우치며, 회개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자신의 잘못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아주 위험한 경향을 낳게 된다. 이런 무슬림의 성향이 때론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예정론은 이런 까다르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신학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현장을 통해서 자신의 구속을 완성해 나가신다. 모든 인간의 행위 배후의 주체는 우선적으로 인간 자신이며,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행위 배후에서 전지전능의 주님으로서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모든 것을 관장하고 계신다. 그분은 구원 받을 자를 구원하시며, 심판하실 자를 심판하신다. 그분의 판단에는 오류가 없으며 절대적으로 공정하고 의로우시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이 불가능하기에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까다르와 예정론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무슬림들에게 바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6) 지하드(Jihad) 즉 성전의 개념이 있다.
지하드는 알라의 대의를 세우기 위한 소위 거룩한 투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이슬람 학자들은 주장한다. 무슬림으로서 코란에 명시된 모든 알라의 명령과 규례들을 지킴으로 자신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런 지하드의 개념은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갱생과 개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습과도 같다.
그런데 지하드는 이슬람 역사에 있어서 이슬람의 확장과 보호를 위해 전쟁을 수단으로 한 군사적 의미로도 사용이 되었다.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지하드는 소위 성전 개념으로 이슬람을 외래의 사조와 위협으로부터 몸을 바쳐 지킨다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다. 코란은 지하드에 참여하다가 죽은 사람을 순교자로 부르며, 낙원에 들어 갈 것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어려움 속에서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지하드에 참여해 순교하면, 온갖 육감적인 열락과 환락이 기다리는 주지육림의 낙원이 마지막 날에 저를 기다리고 있음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지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도 이슬람의 지하드와는 다른 의미이지만 그래도 유사한 신학이론이 있다. 이것은 중세 중기에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 한 전쟁선교신학으로 나타났다. 직접이든지 간접이든지 압도적인 군사력과 무력의 방법을 통해 악마 같은 상대방을 굴복시켜 강제적이라도 개종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과의 조우 역사에 있어서 기독교의 전쟁선교신학은 소위“정의로운 전쟁” 개념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 개념이 성경과는 상관이 없는 이교적 사상인 것으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4. 아랍의 민속종교와 이슬람문화
아랍민속종교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문화를 학자들은 민속이슬람의 근거로 해석한다. 민속이슬람은 두 가지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아랍의 물활론적 영향이 이슬람 형성 때부터 이슬람에 침투해 들어온 경우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기독교신비주의의 영향과 각 지역의 물활론적 요소에 영향을 받아 토착화를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비주의 이슬람인 수피즘이 등장하고, 민속이슬람이 형성되었다. 그러면 민속이슬람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지역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제 요소 들을 살펴보자.
1) 디크르(Dhikr)라는 알라의 99가지 이름의 뜻이 담긴 코란의 구절들을 암송하는 방법과 묵상 그리고 일정한 고행적 삶 등이 신과의 합일을 가져온다는 범신론적인, 신비주의 사상이다. 여기에는 코란구절들을 부적처럼 사용하거나 먹는 방법도 있다(관련 코란 구절들, 수라 2: 37-39, 255-257 ; 3: 19-20 ; 6: 14-19).
2) 신과의 합일에 성공한 성인들을 알라와의 매개체로 생각하여 중보자적 역할을 하게 하며, 초자연적 존재로 그들의 사후에 그들의 무덤에 모스크를 세우고 그들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들은 죽었어도 무슬림들의 기도에 응답을 하고,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일종의 작은 신과도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한다. 이들의 이름이 새겨있는 기도염주와 기도문과 부적이 있다.
3) 코란 안에 있는 천사가 아닌 영적 존재로서 진(Jinn)의 개념이 있는데(수라 18: 50 ; 55: 15, 33 ; 7: 38-39 ; 51 : 56-58) 지역에 다른 특정 진들을 섬기거나, 악한 진을 물리치기 위해서 주술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주문이나 부적 혹은 마술 행위를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각 지역마다 존재했던 토속신으로서의 정령숭배의 잔재이다.
4) 흉안( Evil Eye)의 개념이 있다. 이것은 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악한 사람의 질투로부터 비롯되는 흉악한 영향력이다. 흉안으로 인하여 질병이나 재앙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것을 분별하는 점을 치게 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찾는데, 대체적으로 향을 태우고 코란의 주문을 외우며 흉안의 피해로부터 효험이 있는 성자의 무덤에 찾아가서 축복과 보호와 치유를 간구한다.
5) 코란에는 칠층천의 하늘 세계를 언급하는데, 각 층에 따른 천사들의 지위와 권세가 다르다고 하며, 악한 진을 물리치고 사탄 즉 이블리스의 세력을 제어하는 역할을 천사들이 할 수 있다는 표현이 있음으로, 천사 숭배를 못하게 하면서도 천사 숭배를 유도하는 내용이 있다(수라27:22-45 ; 67:2 ; 78: 12). 이로 인해 민속 이슬람에는 악한 진을 물리치는 술리먼(솔로몬의 아랍식 이름)의 칠 언약 부적이 사용된다.
6) 코란은 특정 절기나 날짜를 구별하여 축복의 날과 재앙의 날을 구분하는데, 예를 들면 금요일은 가장 축복된 날이고, 수요일은 재앙의 날이며, 화요일과 토요일은 좋지 않은 날이다(수라 9:5 ; 44:2). 독실한 무슬림들은 수요일에 외출을 삼가고, 여행을 자제한다. 또한 화요일과 토요일에는 되도록 사업 관계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라마단 달의 마지막 열흘간의 밤은 능력의 밤으로서 라이라툴 카드르(Lailatul Qadr)라고 부르는데 이 열흘 동안 천사들과 선한 진들이 알라의 명을 받들고 사람들에게로 내려와서 이슬람 교인들을 돕는다고 믿으며, 이 열흘간은 금욕적으로 모스크에서 지낸다(수라 97:1-5 ; 44: 3).
5. 선교적 접근
지금까지 이슬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세 가지 주요 범주들이 어떻게 이슬람문화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아랍인의 삶의 문화, 이슬람교리 그리고 민속 종교적 요소이다. 이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이슬람은 무슬림들에게 독특한 삶의 양식과 행동 그리고 정서와 가치관을 형성하였다. 한국교회가 이슬람선교를 감당함에 있어서 이슬람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본인은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모델로서 엘렝틱스의 관점에서 이슬람문화를 분석하고, 선교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고찰한 세 범주의 제 영역들을 생각하면서 이슬람선교의 몇 가지 지침을 정리하려 한다.
1) 무슬림은 아랍인의 문화가 젖어 있는 코란을 통해서 독특한 중동문화의 생활양식을 나타낸다. 거기에 관용과 접대,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 혈연관계를 귀중하게 여기는 것 등 좋은 문화적 요소도 많으나 가부장적 요소들, 여성을 위하는 것 같으면서 실상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 지나친 영예와 수치 문화 등은 개인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일깨우는 성경사상과 거리가 있다. 물론 성경도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나 개인은 공동체의 부품이거나 수동적 희생물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 호혜적이고, 유기체적 관계이다.
2) 이슬람의 교리가 무슬림의 정서와 행동양식과 그리고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몇 가지 주요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았다.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무슬림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무지한 가운데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이루어지면, 복음을 듣기보다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슬림이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적 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무슬림의 교리 중에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접촉점으로 삼아서 저들의 오류와 잘못과 죄성과 사탄의 영향력을 하나하나 인내심을 가지고 드러내야 한다. 여기에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알라의 축복을 주제로 성경적 축복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방법과 코란이 이사 알 무스를 왜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영이요, 구세주로 부르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게 하는 방법이다.
3) 민속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슬람은 민속 이슬람으로 발전되었고 전 세계의 무슬림 중에 약 70%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들은 중보자 사상, 마술적 행위, 재앙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천사숭배 등의 여러 물활론적 요소들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교리적 이슬람에 실상 관심이 없다. 영적으로 이들은 사탄과 악령에게 짓 눌려 있는 상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과 치유와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영적 전쟁의 정병들이 요청된다. 이슬람 지역에서 일어나는 힘의 충돌은 반드시 진리 충돌로 나아가서 엘렝틱스의 변혁을 일으키고 강력한 하나님의 교회공동체를 세워야 한다.
4) 성경적으로 적절한 토착화가 반드시 이슬람 선교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혼합주의 위험성을 철저하게 배격한 가운데 그러나 저들의 삶의 현장의 문제와 정서와 역사적 도전들에 대하여 능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가 해결을 받는 생명력 있는 신앙고백과 역사적 신앙고백과 현실적 신학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의 교회가 아닌 현지 원주민들의 교회 즉 하나님의 교회 자의식을 가진 토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선교사의 몫이 아닌 무슬림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 출신 기독교개종자들의 책임이요, 과업이다. 한국교회는 이슬람 문화를 예민하게 이해하고, 그 문제점을 분별하면서 무슬림들에게 능력 있는 복음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서구교회가 실패한 무슬림선교의 잘못된 선교패턴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방법, 사랑의 방법, 섬김의 방법이 필요하다. 선교는 바울이 고백한 바처럼 모든 눈물과 겸손과 자기희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김성태 교수 (총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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