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본문
스가랴 4장 5-10절
서론
오늘 우리는 구약의 소선지자 중 한 명인 스가랴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 인생의 막힌 담을 허무는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스가랴(Zechariah)는 바빌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70년이라는 긴 포로 생활을 끝내고 꿈에 그리던 고토로 돌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낭만적인 회복이 아니라 폐허가 된 성벽과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품고 돌아왔으나, 주변 민족들의 끊임없는 정치적 방해와 극심한 경제적 빈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내면의 무력감에 부딪혔습니다. 귀환한 유대인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하자, 주변에 살던 사마리아인들과 이방 세력들이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돕는 척하다가 거절당하자, 페르시아 왕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 조서를 올려 공사를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에스라 4:4-5, 2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우선순위의 상실과 영적 안일함은 외부의 방해가 계속되자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가 보다’라며 자기 합리화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자신들이 살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경제적인 안정을 취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학개 1:2, 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화려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결국 성전 재건은 기초만 놓은 채 무려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희망은 독이 되어 돌아왔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는 깊은 영적 우울감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낙심과 무력감이 온 이스라엘을 덮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가문 출신의 젊은 선지자 스가랴를 부르셨습니다. 활동 시기는 기원전 520년경으로, 이는 학개 선지자와 비슷한 시기입니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그의 이름의 의미처럼, 고통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환상을 통해 백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건물’보다 중요한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본문은 그가 본 여덟 가지 환상 중 다섯 번째인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의 핵심 대목입니다. 이 말씀은 내 힘과 능력이 바닥난 순간, 우리가 진정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영적 설계도와 같습니다.
본론
1. 제사장 출신의 선지자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이자 베레갸의 아들입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성전의 제사 제도와 영적 정결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제사장적 통찰력과 예언자적 소명을 동시에 부여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경과 전문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거룩하게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스가랴는 자신의 가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중단된 성전 재건을 독려하며 ‘여호와의 전을 완공하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선포했습니다.
2. 한계를 돌파하는 유일한 길: “오직 나의 영으로” (5-6절)
천사는 스가랴에게 순금 등잔대 환상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당시 성전 재건의 총책임자였던 스룹바벨은 아마도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자금은 부족하고, 인력은 지쳐있으며, 적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강력했습니다. 스가랴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첫째, 인간 자원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힘(Chayil)’은 군사력이나 집단의 세력을 의미하며, ‘능력(Koach)’은 개인의 신체적 힘이나 지능, 재능, 재력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스펙’이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는 본질적인 동력이 될 수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시편 33: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우리는 종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자원의 부족’에서 찾습니다. ‘돈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환경이 안 좋아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원래 ‘힘’이나 ‘능력’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공급하심이 유일한 해답입니다. 환상 속 등잔대의 불빛은 사람이 정기적으로 기름을 붓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두 감람나무로부터 직접 등잔대로 끊임없이 기름이 흐르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이 아닌, 성령의 지속적인 공급하심으로 완수됨을 상징합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우리 인생의 막힌 담을 허무는 열쇠는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분의 영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때, 비로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성령께서는 단숨에 풀어내십니다.
1) 지혜의 영 (The Spirit of Wisdom): 복잡한 엉킨 실타래를 푸는 ‘통찰력’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입니다. 성령은 문제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십니다.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하게 하시며, 세상의 논리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창의적인 대안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2) 모략의 영 (The Spirit of Counsel):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는 ‘전략’입니다. 모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방책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최고의 전략가(Wonderful Counselor)이십니다.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역전의 시나리오’를 짜게 하십니다.
3) 재능의 영 (The Spirit of Might): 결단하고 실행하는 ‘돌파력’입니다. 재능(Might)은 원어로 ‘힘’ 또는 ‘용맹’을 뜻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모략)이 있어도 그것을 밀어붙일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던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현실의 ‘큰 산’을 향해 발을 내딛게 하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인간의 고통은 종종 ‘과도한 자기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이 불안을 만듭니다. 하지만 신앙은 그 통제권을 하나님께 이양하는 것입니다. 나의 경험과 재력이 앞설 때 성령의 일하심은 멈춥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랑할 때, 그 빈 공간에 성령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스가랴서는 눈에 보이는 절망적인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징적인 환상을 통해 보여줍니다. 1장부터 6장까지 나타난 여덟 가지 환상은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고, 원수를 심판하시며, 마침내 예루살렘을 영광스럽게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3. 장애물을 허무는 영적 선포: “큰 산을 평지로 만드시는 은혜의 역사” (7절)
스가랴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첫째,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 실체에 대한 영적 도전: 재건을 방해하는 세력과 내부의 깊은 낙심은 마치 거대한 큰 산처럼 스룹바벨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문제의 크기에 압도됩니다. ‘어떻게 저 산을 옮기지?’, ‘산이 너무 높아서 도저히 넘을 수가 없어’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산의 높이를 측정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정체성을 물으십니다. “네가 무엇이냐?” 이 질문은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장애물도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무대’일 뿐입니다. 문제를 장애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기회로 다시 정의하는 것입니다.
둘째,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 성령의 지형 개편: 평지가 된다는 것은 산이 단순히 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로막혔던 길이 뚫리고, 험했던 곳이 걷기 좋은 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삽과 곡괭이로는 수백 년이 걸릴 일도, 하나님의 신(Spirit)이 임하시면 단숨에 평탄케 됩니다.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 환경을 압도하는 내면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3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사야 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셋째,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 마침표로서의 은혜: 성전의 마지막 돌인 ‘머릿돌’을 놓을 때,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탁월한 리더십이나 기술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은혜(Grace)만을 연호했습니다. 은총을 두 번 반복한 것은 완전한 감격과 전적인 긍정을 의미합니다. 성전 재건의 시작(기초)도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그 과정(진행)도 성령의 능력이었기에, 마지막 완성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고백은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큰 산의 정체를 파악하십시오, 우리를 압도하는 큰 산은 종종 ‘심리적 마비’를 가져옵니다. 산이 너무 크면 산 너머의 풍경이나 하늘을 보지 못하고 오직 발밑의 날카로운 돌부리만 보게 됩니다. 시야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하늘의 관점’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고도를 높여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은 단지 아름다운 능선에 불과합니다. 기도의 고도를 높여 하나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내려다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문제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그리고 선포하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내 믿음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 이것이 환상을 가진 자의 당당함입니다.
4. 시작하신 이가 끝내시는 역사 (8-9절)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손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니,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스가랴 4:8-9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첫째, 스룹바벨의 손은 순종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초자연적으로 성전을 완성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사람의 손을 사용하십니다. 16년 전 기초만 놓고 멈춰버렸던 그 초라한 손,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 묻어있는 그 손을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끝내게 하겠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 실패가 결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둘째, 성취의 확신은 하나님의 신실함에서 옵니다. 우리는 시작은 거창하게 하지만 끝을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의 의지는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하나님은 시작만 하고 뒷감당을 못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끝(오메가)을 맺으시는 분입니다. 이 약속을 통해 이스라엘은 스가랴를 보내신 분이 참으로 여호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취는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변증입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여기서 ‘온전하게 하시는 이’는 영어로 ‘Finisher’, 즉 경기를 완수하고 끝내시는 분을 의미합니다. 우리 믿음의 완주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를 완주케 하시는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은 매우 큽니다. 하지만 16년 동안 멈춰있던 성전 터는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성취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중단된 사명은 있을지언정 포기된 사명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집을 지을 때 시공사가 부도날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의 시공사(스룹바벨의 손)와 시행사(여호와의 영)는 절대 부도나지 않습니다. 마칠 것을 믿는 사람은 오늘 비록 벽돌 한 장을 쌓을지라도 완공식의 기쁨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5.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라 (10절)
본문 10절은 하나님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매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첫째, 하나님의 눈은 ‘중심’과 ‘과정’을 보십니다. 당시 성전 재건을 바라보던 노인들은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현재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겨우 저거 지으려고 돌아왔느냐’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곱 눈’(완전한 통찰력)은 건물의 크기를 측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결과물이 완성되었을 때만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둘째, 다림줄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림줄’은 건물이 수직으로 똑바로 세워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도구입니다. 스룹바벨의 손에 이 다림줄이 들려 있다는 것은, 비록 건물이 다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지금 바르게 지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은 그 정직한 순종의 시작을 보시고 박수를 보내십니다. 마태복음 13:31-32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셋째, 비교의 함정에서 벗어나기입니다. 상담학적으로 ‘열등감’은 타인과의 부적절한 비교에서 발생합니다. 과거의 영광(솔로몬 성전)이나 타인의 성취와 비교할 때 오늘 나의 수고는 ‘작은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작은 순종’이란 없습니다. 순종은 그 자체로 이미 위대한 것입니다. 에스라 3: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솔로몬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스룹바벨 성전은 눈물이 날 만큼 초라한 ‘작은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겨우 그것밖에 안 되냐’고 묻지만, 하나님은 ‘네가 드디어 시작했구나!’라며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곱 눈은 여러분의 고군분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거창한 성공을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다림줄'을 내리는 삶을 사십시오. 방향이 옳다면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초라한 성전’을 기뻐하셨을까요. 백성들은 “언약궤도 없고, 금도 없고, 규모도 작은데 이게 무슨 성전이냐”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시선의 교정을 요구하십니다.
* 본질의 회복: 하나님은 금칠한 벽보다 ‘다림줄’을 든 정직한 손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화려했지만 결국 백성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적 화려함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내면의 성전’을 원하셨습니다.
* 성령의 역사: “힘과 능력(금과 규모)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는 6절 말씀은, 건물의 화려함이 없어도 성령이 임하시면 그것이 진짜 성전이라는 선포입니다.
* 더 큰 영광의 예고: 하나님은 비록 외형은 초라하지만, 장차 이 성전에 메시아(예수 그리스도)가 발을 들여놓으실 것이기에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및 적용
소망의 선지자 스가랴
스가랴는 절망에 빠진 공동체에 “하나님이 다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게 한 ‘소망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단순히 건물로서의 성전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백성들의 영적 회복과 도덕적 정결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 중 메시아(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예언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 겸손한 왕: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9:9)
* 고난과 승리: 은 삼십에 팔리시는 모습(11:12), 찔림을 받으시는 모습(12:10) 등 예수님의 고난과 장차 임할 영광스러운 통치를 상세히 예보했습니다.
영적 환상을 회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울려 퍼집니다.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큰 산’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문제입니까, 관계의 단절입니까, 혹은 내면의 깊은 열등감입니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가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때, 우리 손에 들린 작은 다림줄을 통해 하나님은 위대한 성전 재건의 역사를 완수하실 것입니다.
눈앞의 큰 산만 보지 말고,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불 성곽’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비행기를 타고 고도를 높여 내려다보듯, 기도의 고도를 높여 하나님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십시오. 산의 그림자가 아무리 짙어도 그림자는 여러분을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림자가 크다는 것은 뒤에 있는 빛이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림자 속에 매몰되지 말고 고개를 들어 그 빛을 바라보십시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세상은 결과의 크기를 보지만, 하나님은 순종의 과정을 보십니다. 우리가 든 작은 다림줄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솔로몬 시대처럼 화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할 때 내 인생의 성전은 금칠도 되어 있지 않고 언약궤도 없는 빈 방처럼 초라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건물의 평수를 보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손에 들린 순종의 다림줄을 보십니다. 화려한 겉모양보다 성령이 머무시는 ‘정결한 공간’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겉은 초라해도 성령이 임하시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스가랴). 하나님은 시작하셨습니다(알파).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끝내실 것입니다(오메가). 이번 한 주, 내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구하며 태산이 평지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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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하나님, 오늘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큰 산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우리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우리 손에 들린 작은 다림줄을 멸시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은총, 은총’을 찬양하며 승리의 머릿돌을 놓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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