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제목
무너진 시대를 살리는 다섯 번째 계명

본문
에베소서 6장 1–3절

서론

가정,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신앙의 출발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가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인류에게 주신 가장 첫 번째 공동체는 국가도, 학교도, 심지어 교회도 아닌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처음으로 숨 쉬고,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며,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거룩한 성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지금 ‘가정의 위기’를 넘어 ‘가정의 붕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은 발달하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화상으로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지만, 정작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거실에 모여 앉아 있어도 각자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고, 대화는 단절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의 로마 사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가부장적 질서는 권위적이었고,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는 인격적이기보다 기능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향해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폭탄과도 같은 선언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우는 기초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 회복’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절부터 3절은 십계명의 제5계명을 신약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우리가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신앙생활과 어떤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가정이 회복되고, 우리의 신앙이 뿌리부터 견고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1. 명령의 기초: "주 안에서" 순종하라 (1절)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주 안에서(in the Lord)’입니다. 이것은 부모 공경의 근거와 한계를 동시에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세상의 윤리와 기독교의 윤리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첫째, 순종은 주님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분이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혹은 부모님이 순종 받을 만한 훌륭한 인격을 소유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주님께 순종하는 일의 연장선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가정 내에서 하나님의 대리적 권위자로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그 권위를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됩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눈에 보이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순종이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이치’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원어 ‘디카이온(dikaion)’은 ‘의롭다, 마땅하다, 자연스럽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는 우주 만물의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자연법적 원리입니다. 어린 생명이 부모의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듯, 영적인 질서 역시 부모를 향한 순종의 토대 위에서 올바르게 형성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2. 말세의 징조: 감사를 상실한 시대의 ‘부모 거역’

우리는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2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바울은 말세의 현상을 나열하면서 전쟁이나 기근보다 먼저 ‘인간관계의 파괴’를 언급합니다. 특히 ‘부모를 거역하는 것’과 ‘감사하지 않는 것’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중심성의 독소입니다. 말세의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미쳐 있습니다. 모든 기준이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편해야 하고, 내 감정이 우선이며, 내 자아실현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화될수록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 혹은 ‘나의 자원을 소모하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부모님이 평생 나를 위해 쏟으신 눈물과 땀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지금 당장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노쇠함만을 비난합니다.

둘째, 감사의 시력이 어두워졌습니다. 부모 거역의 뿌리에는 ‘망각’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잠 못 이루던 밤, 자신의 입에 들어갈 것을 아껴 자녀를 먹이던 그 헌신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은 ‘기억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부모의 은혜도 기억합니다. 오늘날 많은 자녀가 부모에게 상처받았다고 말합니다. 네, 부모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통해 내게 흘러온 ‘생명의 리스트’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영혼은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3. 공경의 모델: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돌보신 예수님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부모 공경의 가장 완벽한 본을 보이셨습니다.

첫째, 창조주로서 피조물인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을 보면, 어린 시절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보다 수만 배 지혜롭고 권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순종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공경은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둘째, 죽음의 문턱에서도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경이 절정에 달한 곳은 십자가 위였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그 엄중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서 울고 계신 어머니 마리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은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며 어머니의 여생을 의탁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찰나에도 어머니의 외로움과 생계를 걱정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모님께 용돈 몇 푼 드리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공경은 ‘마음의 헌신’과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이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내 가족 챙기느라 바빠서 부모님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이 깊어질수록 부모님의 굽은 등과 거친 손마디가 눈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4. 공경의 구체적 태도: 요셉의 책임과 셈·야벳의 덮어줌

성경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효의 방식을 두 가지 인물을 통해 가르쳐줍니다.

첫째, 요셉의 ‘책임 있는 봉양’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요셉은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가 된 후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고생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창세기 47장에서 보듯 아버지를 애굽 최고의 땅 고센으로 모시고, 온 정성을 다해 봉양했습니다. 요셉에게 부모 공경은 ‘과거의 상처’를 이기는 ‘현재의 책임’이었습니다.

둘째, 셈과 야벳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입니다. 창세기 9장에서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나가서 떠벌렸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조롱하며 떠벌렸습니다. 결국 노아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창세기 9:25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의 가문은 수치와 저주의 길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가볍게 여기고 조롱하는 태도가 결국 영적 몰락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반면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셈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축복을 선포합니다. 창세기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셈의 계보에서는 결국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됩니다. 야벳에게는 확장과 번성의 축복이 선포됩니다. 창세기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하나님은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보다 덮어주는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부모를 조롱한 함은 무너졌고, 부모를 존중한 셈과 야벳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는 셈과 야벳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부모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사랑의 옷으로 그 수치를 덮어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공경’입니다.

5. 약속 있는 첫 계명: 잘되고 장수하리라 (2–3절)

본문 2절과 3절은 이 계명의 특별함을 강조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은 왜 부모 공경에만 이런 파격적인 약속을 붙이셨을까요?

첫째, 인간관계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1~4계명)과 이웃 사랑(5~10계명)으로 나뉩니다. 이웃 사랑의 시작이 바로 5계명 ‘부모 공경’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고, 사회의 법과 질서를 존중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섭니다. 하나님은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 그 사회 전체가 번영(잘되고)하고 지속(장수하리라)될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훈련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는 기초 교육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며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울 때, 그 영혼은 비로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됩니다. 부모 공경을 통해 질서를 배운 인생이 하나님의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결론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듯 가정을 세우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유교적 잔재쯤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부모 공경은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무너진 세상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앙이 깊을수록 부모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봉사해도, 집에 돌아가 늙은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그들의 외로움을 외면한다면 그 신앙은 가짜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위해 희생한 사람에 대한 태도에서 증명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혹시 부모님을 ‘과거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부모님의 전화를 귀찮아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지는 않았습니까? 부모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돈이나 선물이 아니라, 여러분의 따뜻한 눈 맞춤과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너진 가정의 질서를 다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순종하고, 요셉처럼 책임지며, 셈과 야벳처럼 허물을 덮어드리십시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하늘의 복을 내리시고 우리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믿음의 대를 이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무너진 시대를 살리는 이 거룩한 다섯 번째 계명을 붙들고, 이번 한 주간 부모님께 먼저 손 내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원호 목사
▲최원호 목사(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
마무리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자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부모님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작은 허물과 약점은 크게 보며 원망했던 우리의 교만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 감정과 형편을 핑계로 부모님의 외로움을 외면했던 무관심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겸손히 순종하고, 요셉처럼 끝까지 책임지며, 셈과 야벳처럼 사랑으로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리는 성숙한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신앙이 깊어질수록 부모님을 더 귀하게 여기는 진실한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회복되게 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땅에서 잘되고 번성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사랑의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원호 목사 (서울 상봉동 은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