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서신은 선교 현장의 선교사만이 쓰는 독특한 문학장르
글쓰기는 영성 훈련이며 내면을 치유하고 관계를 소통한다
◇들어가기(서론)
“그리스도인에게 작가(author)가 된다는 것은 창조주(Author)께서 행하신 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김기현 목사의 저서 ‘글쓰는 그리스도인’의 부제다. 그렇다면 모든 예수 믿는 사람은 창조주께서 행하신 일을 글쓰기를 통해서 이어가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의 공동체는 예수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공동체다. 그것이 예수를 살아내는 방법이다. 교회는 예수를 살고 말할 뿐만 아니라 예수를 기록한다. 책 뒤표지에는 “창조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선교 현장에서 이어가는 자가 선교사이다”라고 쓰여 있다.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글을 쓰는 자들’이다. 저자는 “예수 공동체로서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공동체”로 규정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삶의 현장에서 기록되었다. 신약성경 27권의 절반은 선교 현장에서 쓴 서신들이다. 오늘날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이미 글쓰기의 DNA를 갖고 태어난 자들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자도 선교서신은 감히 쓸 수 없다. 그러기에 선교사의 선교서신은 “독특한 문학 장르”임이 틀림없다.
이 책의 저자는 C.S. 루이스의 안목과 필립 얀시의 가슴을 지닌 기독교 작가이다. 김기현 목사(부산 수정로침례교회)는 이사야 50장 4절과 같이 학자와 제자가 되어,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 이웃을 섬기는 비전을 품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침례교신학교에서 종교철학과 현대 영미신학을 전공하였다(Ph.D). ‘공격적 책읽기’와 ‘공감적 책읽기’(SFC), ‘가룟 유다 딜레마’(IVP), ‘예배, 인생 최고의 가치’(JOY) 등의 저자다.
2부 10장의 제목을 먼저 읽어보자. 제1부 왜 글을 쓰는가?: 글쓰기는 영성을 훈련한다(자서전과 기도문)/글쓰기는 내면을 치유한다(일기)/글쓰기는 사고를 계발한다(서평)/글쓰기는 관계를 소통한다(편지)/글쓰기는 세상을 변혁한다(컬럼)
제2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독서:읽고 또 읽으라/메모:머리가 아니라 손을 믿으라/개요:물 흐르듯이 구상하고 촘촘히 구성하라/문장:그냥 당장 쓰라/퇴고:사랑하니까.
글쓰기는 영성을 훈련한다. 글쓰기는 내면을 치유한다. 글쓰기는 사고를 계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서평쓰기’의 핵심을 요약하며 서평할 것이다.
◇“교회(신자의 공동체)는 성경을 먹는 거룩한 공동체”(유진 피터슨)
“유진 피터슨은 신자의 공동체를 “성경을 먹는 거룩한 공동체”라 지칭했다. 이 공동체의 독서법은 아예 성서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단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먹으라”. 왜 그런가? 그리스도인은 성서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성서를 먹는다는 말은 성서를 암송하고, 그렇게 살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성서는 공동체를 창조하고, 성서를 먹는 공동체는 성서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실한 제자를 양육한다.” (p.13, ‘교회는 성경을 먹는 공동체다’. 아멘 아멘이다. 서평자는 ‘성서’보다 ‘성경’ 더 선호한다)
“성서와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이 성서를 먹는 거룩한 교회와 제자가 되기 위함이라면, 글을 쓰고 책을 짓는 목적은 무엇인가? 왜 글을 쓰는가? (중략)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 예수의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는 것이듯, 무릇 그리스도인의 글쓰기도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증언하고 표현하며, 그 글을 읽는 이들도 생명의 대열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p.14)
◇그리스도인의 글쓰기의 목적: ‘생명을 증언하고/생명의 대열에 동참을 초대하기’
“글은 결국 그 사람이다. 무릇 모든 책은 저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책과 글은 쓰는 이의 인격이요 얼굴이다. 과장하여 쓸 것도, 부끄럽다고 감출 것도 없다 (중략) 글쓰기는 내 속의 나, 이런저런 가면 속에 감추어진 맨얼굴 그대로의 나를 찾는 도구다.” (p. 15)
“왜, 무엇을 쓸 것인가? 이 말은 곧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글로 쓰면 된다. 사도 요한은 우리더러 목격자라 했다. 내가 만난 하나님과 내가 겪었던 사건을 본 대로 진솔하게 진술하면 그만이다. 목격자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순교의 각오와 결단으로 증언하는 증인이다.” (p.16, 예수쟁이의 글쓰기도 때로는 순교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 글쓰기는 영성을 훈련한다: “참 영성은 '영을 몸으로 살아 내는 것”
“영과 몸이 온전히 통합된 삶이 영성이다. 영성 깊은 삶은 육체를 부정하는 삶이 아니며, 육체를 탐닉하는 것도 아니다. 육체 없는 영혼의 신비를 추구하지도, 영혼 없는 육체의 방탕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기독교 영성에서는 영혼과 몸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양자 없이는 누구도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영이 있는 몸, 몸이 있는 영이 참 인간이듯, 영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 다시 말해 영적인 것을 육체로 풀어내는 것이 참 영성이다.” (p. 25)
“리처드 포스터는 우리 시대의 영적인 질병이 바로 피상성이라고 진단했다. 피상성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즉시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사상은 근본적인 영적 문제이다.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은 지능이 높거나 혹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피상성은 시끄러움과 조금함과 혼잡함을 통하여 크게 역사한다.” (p. 28)
오늘날 개신교는 너무나 가볍고 피상적이다. 리처드 포스트의 지적대로 시끄럽고 조급하고 혼란스럽다. 서평자는 첫 안식년을 맞아 조국의 여러 교회서 예배를 경험하였다. 생소한 복음 송들이 많아 놀랐다. 깊은 영성에서 길어 올린 생명력 넘치는, 잠든 영혼을 화들짝 깨우는 설교가 아쉬웠다. 새로 출판된 신앙서적을 찾아서 기독교 서점을 여러 번 찾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사셨고, 그것이 육화의 본질이듯, 영이 몸이 되어 사는 것이 영성의 본령이라면 글쓰기는 영성의 문자적 표현이요, 영성 훈련의 방편이 된다는 뜻이다. 글이 된 삶, 즉 내 삶이 글이 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자서전과 기도문이다. 무릇 모든 글쓰기가 나름 영성적 차원을 지니고 있지만 유독 자서전과 기도문은 영성의 요체가 된다.” (p. 29, 글쓰기가 영성의 문자적 표현/영성 훈련의 방편임을 확인한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변화를 발견하게 되고, 이웃에게 유익을 나누어 주게 된다. 기도문과 자서전 쓰기로 얕음에서 깊이로, 속도에서 느림으로, 조급함에서 인내로 성숙하는 영성에 다다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글쓰기 덕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p. 38-39, 이런 글을 읽으면서도 글쓰기를 주저하거나 미룰 수 없지 않을까?)
2. 글쓰기는 내면을 치유한다: “(영성)일기로 내면 정돈!”
“글쓰기는 내면을 치유한다. 글쓰기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통로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성찰하는 도구이자 치유하는 수단이다. 단 한 문장이라도, 서툰 글솜씨로도, 아무렇게나 끄적인 낙서로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 글쓰기를 통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면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온갖 상처들로 갈가리 찢겨진 내면과 마주치게 된다.” (p. 46, 그래서 ‘영성일기’는 하나님과 경험하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
글쓰기는 먼저 결심하고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평자는 2016년 L.A 한인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하며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의 ‘영성일기’의 실제를 배웠다. 그때부터 영성일기 쓰기를 작정하였다. 제대로 된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3. 글쓰기는 사고를 계발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 당한다”
“다른 어떤 신앙과 견주어도 기독교는 통전적이다. 동양적 명상은 생각을 비우라 하지만, 성서적 묵상은 바른 생각으로 채우라 한다. 지성을 버림으로 서가 아니라 지성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게 나아간다 (중략) 그러므로 다음 세 가지 요소가 잘 계발되지 않는 한 생명력 있는 기독교란 불가능하다. 바로 내적으로는 헌신하는 삶, 외적으로는 섬기는 삶, 지적으로는 합리적인 삶이다.” (pp. 57-58, 헌신과 섬기는 삶, 합리적인 삶에서 글이 나온다)
본서의 저자 김기현의 목사의 통찰에 전적으로 ‘아멘’ 하게 된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헌신하며 섬기는 삶과 더불어서, 지적으로 합리적인 삶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합리적인 삶은 지성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삶과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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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호 영국 선교사(Peterahba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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