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안호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서론(들어가는 말)

“배안호 선교사님! 어떻게 선교사를 위한 서평 쓰기를 하게 되었나요?”

사람들은 가끔 저에게 질문합니다. “배 선교사는 어떻게 선교사를 위한 서평 쓰기를 하게 되었나요?”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필자는 5, 6년여 전부터 전 세계 선교 현장의 동료 선교사들을 위한 서평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1주일에 양서 1권 목표’ 서평 쓰기를 열심을 내고 있으나 걸음마 수준이다. 제대로 된 글쓰기에 이르기는 많이 부족하다. 혹자는 배 선교사는 ‘서평 쓰기 달인’이라지만 아직도 글쓰기 습작학생(習作學生) 수준이다.

지금까지 카톡/페이스북 혹은 개인 선교서신에 서평 쓰기를 하게 된 내력을 몇 차례 밝혔다. 이번 기회에 <선교신문(宣敎新聞)> 독자들을 위해서 (간증)이야기 형식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1. “주여, 한국교회 선교 이대로 좋습니까?”- ‘거룩한 불만의 기도(divine anger)’

필자는 20세에 복음을 깨닫고 1972년 예수쟁이가 되면서부터 ‘세계를 품은 기도’(World Christian Prayer)를 배웠다. 고등학교 졸업(1971년) 할 때까지 필자는 못 말리는 안티 크리스천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흑백 TV로 보았다. 이런 과학 시대에 기독교의 천지창조, 처녀 잉태, 부활 등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맹신(盲信)으로 보였다. 고1 때 ‘국민교육헌장’이 발표되었을 때 필자는 그 첫 문장을 패러디하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서구 종교의 상징인 기독교 교회가 하나도 없는 살기 좋은 우리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다.” 내 주위의 기독교인들을 대놓고 조롱하며 핍박하였다.

내 주위에 교회에 가자고 전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오히려 그들을 측은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 처음으로 죠이선교회(당시는 죠이 클럽)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다. 저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성경에 주목했다. 성경의 비과학적, 비이성적, 비논리적(필자는 이를 ‘3비’라 일컫는다) 엉터리 경전임을 논박(論駁)하기로 다짐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는도다.”(시14:1)

당시(1972년) 홍익대학 옆 극동방송국에서 죠이 클럽 정규모임이 매 주일 오후 2시에 모였다. 70~80명의 죠이 멤버들은 모두가 영어 실력이 탁월하였다. 나는 ‘3 minute-talk’로 자신을 영어로 소개할 때 경상도 영어 발음으로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작정했다. 이들을 몽땅 ‘역전도하리라’고 단단히 결심하였다. 성경이 얼마나 비과학성/비이성적/비논리적인 경전임을 확실하게 깨우쳐서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비판적 성경 읽기에 집중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쟁이’가 되었다. 세계관과 인생관이 완전히 변하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건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그때부터 성경은, <성경, 나의 사랑 나의 생명>(배안호, 국민북스, 2020)이 되었다. 청년 시절 나는 죠이선교회 안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 제자 훈련을 받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유명 선교사들의 영어설교를 듣고 세계선교에 눈 뜨며, 자연스럽게 ‘선교사적 삶’이 시작되었다.

2. 총신대 선교연구소, <세계선교>(계간지) 발행하며 한국교회 선교 실상에 눈뜨다.

한국통신(KT) 10년, 극동건설 5년 등 15년 직장 생활 후,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총신대학 선교연구소를 책임 맡게 되었다. 한국교회에 뜨거운 선교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차는 ‘선교차량’이었고, 교회 유치원도 ‘선교유치원’이었다.

‘선교연구소’(한국교회 최초의 연구소)는, <세계선교(世界宣敎)>(계간지)를 발행하였다. 막강한 풀기자단(학생연구원 20여 명)이 한국교회 선교 전반을 연구하며 분기마다 특집을 발행하였다. 필자는 선교연구소에서 상임연구원으로 3.5년 사역하며 ‘선교의 본질과 한국교회의 선교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1992년 7월에 미국 시카고 한인세계선교대회(KWMC)에 선교연구소 대표로 참석하였다. 뜨거운 한국교회 ‘세계선교의 현장’을 경험하며 나는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였다. “주여, 한국교회 선교가 업그레이드 되는 일에 종을 사용하소서! 세계선교 완성을 위해서 나 자신부터 먼저 준비되게 하소서”

3. “John Ross 선교사를 선교적으로 조명하는 Ph.D 논문쓰기” 생생한 기도 응답!

필자는 1994년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 석사(M.th) 과정 공부 중, 한국 신약성경을 최초 번역(1887)한 John Ross(1842-1915) 선교사에 대한 새로운 선교자료를 만나게 되었다. 총신 신대원 한국교회사 수업 시간, 이만열(숙명여대) 교수께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 교수님! 존 로스는 스코틀랜드 교회가 중국 만주에 파송한 선교사인데, 그가 왜 한글 신약성경을 번역하게 되었는지요? 그 동기가 무엇이지요?” 이 질문에 교수님은 “나도 그 이유를 알려고 많이 노력했으나 어떤 역사적 사실, 증거(historical facts/evidence)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자네가 이것(동기)을 연구하여 보면 어떨까?” 수업 시간에 학생과 교수의 질문과 대답이었다.

참으로 놀랍게도 정확하게 4년 후에 필자가 애버딘 대학에서 존 로스를 주제로 공부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섭리하셨다. 애버딘 대학교 석사과정의 지도교수(Prof. Allan Main)는 “자네가 존 로스에 대한 박사논문을 쓸 사람이다. 이것은 너를 향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나는 목회할 목사다. 결코 학자가 될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변하였다.

지도교수의 강권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필자는 ‘기드온 양털 시험’ 징조(sign)를 위한 5개월간 집중 기도 후 생생한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필자의 박사(Ph.D) 논문의 한글 번역 책 <한국교회와 자립선교>(한국학술정보, 2008)가 발행됐다. 논문의 핵심적용 메시지는 “21세기 한국교회는 ‘자립선교’로 선교하라”, “먼저 선교사 자신이 제자 되어, 제자 삼은 선교를 하라”였다. 본서는 감사하게도 2018년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석박사 리서치 학생 필독서로 선정되었다.

나가기(결론): “Attitude To Altitude! 태도가 고도를 결정한다”

“너가 선교 현장의 동료 선교사를 위하여 (서평)글쓰기를 하여라.”

“주여 한국교회 선교, 이대로 좋습니까?”라며 ‘거룩한 불만의 기도(divine anger)’를 30여 년간 하던 중 7년 전, 파라과이에서 새벽기도 시간 중에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가 그런 기도만 하지 말고, 너가 선교 현장의 동료 선교사를 위해서 무엇인가 주어라. 그것은 글쓰기다”고 응답하셨다. “너는 선교사들을 비판만 하지 말고, 서평 쓰기를 하여라. 너의 서평만 읽어도 그 책의 핵심 내용을 간파하게 쓰라. 척박한 선교 현장의 선교사들은 독서할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을 너 자신이 경험해서 알지 않느냐? 한국 선교사들이 업그레이드되면 선교가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서평 쓰기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깨달은 후부터, 필자는 서울대학교 글쓰기 교재를 비롯해서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을 구입하여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였다. 필자는 감사하게도 영국, 스코틀랜드 등 유럽에서 공부하고 동부 아프리카인 탄자니아와 라틴아메리카인 파라과이 등 4개 대륙에서 공부하며 선교를 감당하였다. 3년 전, 다시 제2의 조국, 영국에 돌아오니 벌써 은퇴(?)라고 한다. 이제 겨우 철들고 뭔가를 깨닫기 시작하는데…, 은퇴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진정한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70부터다”가 맞다.

“책은 어느 사람에게는 울타리가 되고, 어느 사람에게는 사다리가 된다” (레미 드 구르몽)

서평 쓰기의 후기(7대 감사)

1. 책의 저자와 친근한 친구가 된다.
2. 독해력/어휘력/글쓰기 향상되었다.
3. 자신감이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4. 서평을 탈고할 때마다 성취감의 ‘소확행’을 누린다.
5. 책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늘어난다.
6. 나의 무지, 무식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겸손하게 된다.
7. 배움의 자세로 평생 학습자의 삶을 살게 된다.

배안호 영국 선교사(Peterahba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