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저자 김낙환 박사, 아펜젤러 발자취를 100여 장 사진과 함께 담아

1901년 아펜젤러 사진. 아펜젤러는 1902년 조선인들을 구하고자 침몰하는 배에 뛰어들었다가 순교했다.
▲1901년 아펜젤러 사진. 아펜젤러는 1902년 조선인들을 구하고자 침몰하는 배에 뛰어들었다가 순교했다.
㈔아펜젤러기념사업회가 배재학당 창립 140주년을 맞아 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hart Appenzeller, 1858~1902) 선교사가 조선에서 남긴 발자취를 사진과 함께 되돌아보는 책을 펴냈다.

배재고등학교 입학생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기획 및 제작된 ‘사진으로 보는 헨리 G. 아펜젤러’는 우리나라 근대 교육과 선교의 선구자인 미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품은 신앙과 헌신적 삶, 인품과 사상을 다음세대에 전수할 뿐 아니라, 오늘의 한국교회에도 복음의 본질과 초기 선교의 정신을 되짚어보면서 성찰의 계기와 도전, 교훈을 주는 의미가 있다.

사진으로 보는 헨리 G. 아펜젤러
이 책은 아펜젤러 선교사를 오랫동안 연구하며 ‘아펜젤러 행전 1885~1902’, ‘아펜젤러의 생애와 사상’ 등의 책을 펴낸 김낙환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이 편저자를 맡아 저술했다. 김낙환 박사는 지난 12일 서울 인왕산 자락 모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아펜젤러 선교사의 신앙과 인격, 삶을 배우고 깨달아서 제2, 3의 아펜젤러가 나오길 바란다”며 “꼭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인재들이 이런 정신으로 살았으면 하는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김낙환 사무총장은 1977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목원대학교 신학부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아주사 퍼시픽대학교에서 신학 석사,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원대학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했으며, 배재대학교, 목원대학교, 한동대학교, 남부신학원, 인천 목회아카데미 등에서 영적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2015~2019년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 2015~2022년 학교법인 배재학당 이사를 역임하고, 2015년부터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으로 사역 중이다.

이 책은 아펜젤러의 조선 입국(1장)과 아펜젤러 입국 당시 조선의 상황들(2장), 배재학당의 시작(3장), 정동교회의 시작(4장)을 사진과 함께 이해하기 쉽게 소개했다. 또 아펜젤러와 함께 한 선교사들(5장), 아펜젤러와 함께한 조선인들(6장), 초기 배재에서 수학한 인물(7장), 아펜젤러가 사랑한 조선인·조선문화(9장), 아펜젤러의 죽음(9장)까지 다뤘다.

김낙환 박사는 아펜젤러가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 세브란스의전 초대학장 해관 오긍선, 한인으로 초대 배재교장을 지낸 금하 신흥우, 광복군 총사령관 백산 지청천, 민족 시인 소월 김정식 등이 아펜젤러와 함께하거나 배재에서 수학했다”고 말했다. 또 “그 당시 아펜젤러 선교사 밑에서 조사로 일하다가 감화되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이들도 많은데, 미(美) 선교회 1호 목사 김창식, 조선 개신교 사상 첫 목사 안수를 받은 김기범이 그렇다”며 “이처럼 아펜젤러의 정신을 배우고, 영향을 받아 개인의 부귀와 영달이 아닌 기독교 신앙으로 산 사람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아펜젤러를 꾸준히 연구해 온 학자로서, 아펜젤러의 사역을 사진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책을 제작하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했다. 한 장의 사진이 천 마디 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배재학당 140주년을 앞두고 작년에 아펜젤러기념사업회가 책 발간을 기획하자, 김 박사가 의견을 제안하여 책이 제작됐다. 선행 연구 작업으로 사진과 자료들이 확보돼 있어, 작업 기간에 비해 알차게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 학생들과 함께 1887년 촬영된 사진. 아펜젤러는 맨 뒷줄 오른편에 얼굴이 가려진 채 서 있다.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 학생들과 함께 1887년 촬영된 사진. 아펜젤러는 맨 뒷줄 오른편에 얼굴이 가려진 채 서 있다.
100장이 넘는 사진을 엄선하여 책에 담아내며 김낙환 박사는 아펜젤러가 등장하는 여러 사진을 더욱 세심히 보았다. 단체 사진 속 아펜젤러는 그 당시 핵심적인 인물이었음에도 대부분 뒤쪽,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배재학당 설립자인데도, 배재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아펜젤러는 맨 뒷줄 오른쪽 끝 편에 서 있었다. 그마저도 앞에 선 학생의 모자 끝에 얼굴이 가려진 채였다. 그가 설립한 정동교회에서 찍은 사진에서도 아펜젤러는 맨 뒤에 있어 자세히 찾지 않으면 구별해내기가 힘들었다. 1898년 연례 회의를 마치고 찍은 사진에서도 역시 그는 맨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날 단체 사진을 촬영할 때 자리 배치 방식을 생각하면, 요즘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김 박사는 “아펜젤러는 굉장히 활동적이지만, 사진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성품적으로는 무척 겸손하신 분이었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앞서게 하시고 자신은 묵묵히 뒤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해 주는 역할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는 아펜젤러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수록됐다. 아펜젤러는 도시의 풍광, 사찰과 건축물들, 심지어 부처님도 찍어, 사진 밑에 촬영 날짜와 간략한 설명을 기록해 놓았다. 김 박사는 “보통 사진 속에 사진을 찍는 사람의 관심과 의도가 반영된다”며 “이 사진들을 통해 아펜젤러가 보고 싶은 것,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가 촬영한 사진들은 사역 대상인 조선인과 조선 문화에 대한 애정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26일 아펜젤러기념사업회는 문경새재를 포함한 충주~문경 구간 약 9.5km를 걷는 ‘아펜젤러 남부 순행길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26일 아펜젤러기념사업회는 문경새재를 포함한 충주~문경 구간 약 9.5km를 걷는 ‘아펜젤러 남부 순행길 걷기’ 행사를 진행했다.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아펜젤러가 찍은 사진 중에는 1893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반역자들에 대한 경고로서 우두머리를 참수하여 머리를 사거리에 걸어놓은 사진, 청계천 일대의 오간대수문 사진, 평양을 방문해서 찍은 대동문 사진, 배재학생들과 소풍을 가던 곳 중 하나로 옥천암의 흰색 부처상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김 박사는 일부러 옥천암에 찾아가 아펜젤러의 ‘백불(White Budda)’ 사진의 구도를 보며, 사진을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서 보면서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배재대학교 김욱 총장은 추천의 글에서 “아펜젤러 선교사가 근대교육의 씨앗을 뿌렸다면, 배재대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며 “이 책이 앞으로 대한민국과 세계를 이끌고 나갈 미래의 인재들에게 배재의 역사와 전통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줌으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 지어주는 고리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종교교회 최이우 원로목사는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잊지 않는 차원을 넘어,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정체성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며 “친구 김낙환 박사의 수고로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고, 한국감리교회의 아버지 아펜젤러를 바로 알고 우리의 믿음과 헌신을 새롭게 할 수 있게 해준 아펜젤러기념사업회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김낙환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내년 초 이 책의 증보판에 이어, 향후 아펜젤러 선교사의 회계보고서 등도 펴낼 예정이다.
▲김낙환 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내년 초 이 책의 증보판에 이어, 향후 아펜젤러 선교사의 회계보고서 등도 펴낼 예정이다. ⓒ이지희 기자
아펜젤러기념사업회 곽명근 이사장은 “아펜젤러기념사업회에서 기획하고 만들고 배포한 이 책이 배재에 입학하는 입학생들뿐만 아니라 배재를 졸업한 모든 동문에게도 아펜젤러를 폭넓게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책은 영상복음미디어 출판사의 요청으로 내년 1월 증보판이 출간돼 전국 서점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김 박사는 “이 시대 배경 중 제일 중요한 사람이 고종 황제인데, 고종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고, 또 아펜젤러가 타 교단 선교사인 언더우드 선교사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은 만큼 언더우드 선교사에 대한 내용, 아펜젤러가 설립한 인천 내리교회에 대한 추가 원고를 최근 출판사에 넘겼다”고 전했다.

김낙환 박사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회계보고서도 번역하여 내년 중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 회계보고서의 숫자가 정직하게 다 기록돼 있어 은혜받았다”라며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재정 관리뿐 아니라, 그 당시 미국 성도들이 한국에 얼마나 많은 선교 헌금을 보내왔는지, 또 당시 선교사들이 얼마로 생활했는지 볼 수 있다. 회계보고를 하면서 아펜젤러가 선교사들이 가진 어려움도 계속 본부에 보고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아펜젤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 자료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사진으로 보는 헨리 G. 아펜젤러’는 현재 온라인 서점 및 영상복음미디어 출판사(대표 최득원 장로, 010-4939-0209)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