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1
사도바울은 본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초기 기독교 교회를 무자비하게 박해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심지어 돌을 던져 죄인을 죽이는 일에 적어도 한번 가담한 인물이다. 유대인이면서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은 위대한 율법학자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다(행 22:3). 그러던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늘에서 휘황찬란한 한 줄기 빛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이로 인해 바울은 말에서 떨어지고 두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때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행 9:1~9). 이러한 환상으로 인한 영적·신비적 체험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는 여생을 박해하던 기독교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였고 사울이었던 그가 사도바울로 살게 되었다.
한편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젊은 귀족으로 인생을 만끽했는데, 쾌락을 그보다 더 탐닉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경건 생활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잘생기고 쾌활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러다가 20세쯤에 병상에 누워있는데, 대단히 넓은 방에 십자가 표시를 한 군사들을 보게 되는 환상을 경험했다. 그때 그는 “이 사람들은 바로 너의 군사들이다”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러한 환상을 경험한 뒤부터 프란체스코는 더는 쾌락을 탐하지 않고, 그 대신에 기도로 일관된 조용하고 단순한 삶을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였다. 결국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의 자연을 아끼는 삶의 태도로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성인 중 한 명이 되었다. 특히 동물의 고통을 함께 나눈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 이상한 환상 때문에 그녀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신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통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갈수록 두통이 심해졌고 급기야는 발작까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신경과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게 되었는데 자신의 우측 귀 위에 생긴 종양 때문에 측두엽 뇌전증(간질)이라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의사가 말하기를 “측두엽 뇌전증은 행동과 사고의 변화를 일으킬 때도 있고 심지어는 환자가 발작하지 않을 때도 그럴 수 있으며, 끝도 없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하이퍼그라피아 증세가 나타나고, 감정이 지나치게 강력해지고 편협해지며 종교와 철학에 극단적으로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수녀는 종양 수술을 하면 환상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환상이라는 것은 뇌기능 장애의 결과인 것인가? 성 요한 수녀는 자신의 삶이 유물론자가 볼 때는 일종의 정신병자처럼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측두엽 뇌전증의 주원인인 종양을 수술하였다. 발작이 계속 일어나면 수녀원에 있는 다른 자매들이 걱정할까 봐서이다. 종양을 제거하자 그녀의 환상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손매남 박사
한국상담개발원 원장
경기대 뇌심리상담전문연구원 원장
美 코헨대학교 국제총장
국제뇌치유상담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