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해결책 보이지 않는 한국교회, 로잔대회도 답 줄 가능성은 적을 듯,
단 암울한 70년대 1차 대회에서 함께 하신 성령이 오늘도 일하실 것 기대”
올해 9월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선교도 한 단계 도약하고 전환되길 바라는 선교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선교 전문 계간지 한국선교KMQ(편집인 성남용 목사) 겨울호에서 인터서브코리아 대표 조샘 선교사는 ‘4차 로잔대회 후, 무엇을 남길까?’라는 주제의 기획연재에서 “(4차 로잔대회를 계기로) 제도화 물결을 타고 세속화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교회론의 회복과 선교적 소명의 회복이 있기를 소망한다”며 로잔대회에서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가 얻어야 할 교훈들을 소개했다. 본지는 이 글의 주요 내용을 연재로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조 선교사는 “르네 빠딜라 등 남미 신학자들의 문건을 읽으며 복음이 개인의 영혼 구원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로날드 사이더를 통해 복음이 한 사람의 구원만을 말하지 않으며 세상 전체를 향한 회복의 소식임을 알게 되었다. 하워드 스나이더를 통해 교회가 세상을 섬기기 위해서 존재하며 다양한 형태의 교회적인 틀이 있음을 배웠고, 존 스토트를 통해 성경에 대한 믿음을 되찾았으며 마침내 인식론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상과 유리된 탈세적 복음과 자기 몸 불리기에 몰두하는 한국교회의 좁은 복음이 기독교의 전체 모습이 아니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이 온 세상의 변혁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크리스천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라며 “로잔이 상징하는 신복음주의를 접촉하며 다시 복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선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이 시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바쁜 일정으로 자료를 찾을 시간이 없어 연구 논문으로 쓰진 않았으나, 1974년부터 로잔에서 소개된 문건들을 대부분 읽고 분석했으며, 동시에 로잔의 배경이 되는 신복음주의에 대한 두 권의 책, 곧 마크 놀의 ‘복음주의와 세계 기독교의 형성’(박세혁 역, IVP),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정성욱 역, IVP)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조 선교사는 아울러 “로잔운동의 근거가 되는 선교적 이슈 그룹 세 곳과 연결되어 관찰했던 개인적 경험들이 있다”며 “지적, 경험적으로 배운 로잔의 유산, 로잔으로 대표되는 복음주의자들의 좋은 유산이 (이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90년대 초반 한국을 떠나 25년 만인 2016년,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는 그는 “오랜만의 한국 생활 중 놀란 것 중 하나는 교회들이나 신학교에서 로잔운동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개인적으로는 선교사로 일하며 로잔과 연결이 계속됐다. 소속 단체의 많은 리더가 로잔운동과 직접 연결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BAM, 창조세계 돌봄, 북한 등과 관련한 로잔 이슈 그룹과도 동역할 일들이 있었다”라며 “그런데 막상 한국에 들어오니 대부분 교회나 크리스천들은 로잔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로잔이 상징하는 신복음주의의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복음 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복음주의는 70, 80년대 대학생 선교단체를 통해 들어왔고, 80, 90년대 해외 선교단체의 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라며 “선교를 복음과 세상의 연결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전도와 선교사 파송이라는 점에서 선교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교회는 사회 속에서 피스 메이커 역할을 하지 못하고, 종교 가운데 낮은 신뢰를 받고 있다며 “사회 속의 어렵고 소외된 이들과 더욱 멀어진 기독교는 중산층과 상류층의 종교가 되었고, 공의나 사회 변혁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 선교사는 “이런 배경에서 몇 년 전부터 로잔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2023년에는 공공연한 주제가 된 이유는 2024년 로잔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라며 “이재훈, 유기성 목사라는 두 메가처치 리더가 주도하여 대회를 준비 중이다. 과거 로잔운동을 대표하는 이들 가운데 큰 교회 리더들이 적지 않았으나 그 확산에는 한계가 분명했는데, 이번 경우는 훨씬 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로잔에 대해) 얘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리더의 좋은 이미지와 로잔에 대한 이해와 열정 등이 분명 한몫하고 있겠지만, 현재의 분위기에는 좀 더 (로잔운동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조 선교사는 “당시 이 대회에 참석하면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이뤄낸 교회 성장과 타문화 선교에서의 발전을 세계 다른 교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며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이런 태도에 변화가 보인다. 겸손해지고 배우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새로운 돌파구를 원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 하락은 현재 교회 운영 자체에 실제적 타격을 주고 있다. 성장을 기대하고 건축을 위해 과도하게 얻어 쓴 빚은 고이자 시대에 엄청난 재정 부담이 되고, 청년들은 사라지고 고령화가 뚜렷하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교회 출석이 낮아진 것은 특별히 중소형 교회에 큰 타격이 되고, 목회자들의 상당수가 이중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미달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문제점과 도전이 산적하지만 돌파구는 딱히 보이지 않는 가운데 로잔이 한국에 오게 됐다. 딱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목회자들은 로잔에 어떤 해답을 기대하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조 선교사는 “정직히 말하자면, 로잔대회가 답을 줄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며 “그러기에는 개교회주의와 균형 잡히지 않은 신학의 뿌리가 깊다. 게다가 대회 이후에는 오히려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겉모습만 보자면, 로잔대회는 전 세계에서 오천 명의 대표가 일주일간 호텔에 머물며 회의하다가 돌아가고, 이후에 문건을 넘기는 대회다. 그중 최대 500명 정도를 할당받아 한국 사람들이 들어갈 예정”이라며 “대부분의 리더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데,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문화 가운데 오히려 로잔대회에 가본 사람들과 가보지 못한 사람들의 긴장이 발생하지 않을까. 게다가 50년이 돼가는 로잔이 과연 처음의 순수함과 겸손함과 정직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식민주의의 후유증과 1, 2차 세계대전의 상흔 가운데 한때 기독교 왕국(Christendom)으로 비서구 국가들에 대해 우월 의식을 지녔던 유럽은 급격한 탈종교화를 경험했고, 몰락하는 교회 가운데 크리스천들 역시 스스로 갖고 있던 복음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며 과거 가졌던 선교적 동력을 잃어버렸다”며 “그 암울한 70년대에 여전히 성경의 권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복음을 확인하고, 복음을 증거해야 함을 믿는 복음주의자들이 스위스 로잔에 모였다. 그 가운데 함께 하셨던 성령께서 다시 선교의 열정을 사람들과 교회 가운데 새롭게 하셨다”고 말했다.
조 선교사는 “그때도 일하셨던 주께서, 이 어려운 한국교회 가운데도 새롭게 일하시지 않을까?”라며 “로잔대회에서 외국인들이 올 때 그들을 환대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한국교회의 현실을 아는 필자로서는 거기까지 마음을 쓸 여유는 없다. 우리가 로잔대회를 기점으로 무엇을 얻으면 좋을까, 한국에서 로잔대회가 열림으로 세계교회가 한국이라는 특수성을 인해 발견할 수 있는 선교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①내 교회를 넘어서 온 교회로(The Whole Church) ②순수한 복음을 넘어서 온전한 복음으로(The Whole Gospel) ③미전도 종족을 넘어서 온 세상으로(The Whole World)를 세 가지 교훈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 교훈들은 존 스토트가 첫 번째 로잔 모임 직후 작성한 로잔 이슈 보고서인 로잔언약 주석과 해제에서 나왔다”라며, 이후에도 다양한 로잔 모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라는 문장을 기반으로 세 가지 교훈을 설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