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로는 MIT가 최고라면, 프린스턴 대학교는 인문, 사회과학, 기초과학이 세계 최고이다. 그러므로 명문대학교라고 할 때 어느 한 분야만 볼 것이 아니고, 각각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교들이 널려 있다. 조사기관과 기준에 따라서 순위도 왔다 갔다 한다.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대표로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학력이 최고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학사, 하버드 대학교 석사,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들의 면모를 살펴봐도 이승만 박사 같은 스펙을 가진 대통령은 없다.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 중에도 이승만 박사와 맞먹을 학문과 지식을 가진 자는 없었다. 이승만은 국운이 쇠하고 나라가 박살 날쯤에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다가 사형수에서 종신 죄수로 살다가 5년 7개월 만에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한성 감옥은 이승만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의 꿈을 향한 준비 기간이었다. 어찌 보면 한성 감옥의 6년 가까운 세월이 그에게는 명문대학이 된 셈이다. 거기서 그는 영어에 통달했다. 그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신진 문물을 알리는 책들을 탐독했고, 성경을 읽고 신앙의 사람, 확신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감옥에서 읽고, 쓰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독립정신’, ‘일민주의’ 등을 저술하고 독립신문에 기고를 했다. 이승만은 사상가요, 독서광이요,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요, 연설가요, 설교가였다. 그에게 한성 감옥은 절망의 장소가 아니라, 영성이 깨어나고 지성이 쌓여가는 신학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한성 감옥에서 출감하자 평양의 남궁혁 씨 댁에서 얼마간 보양을 했다. 남궁혁의 조부는 평양감사를 지냈기에 집도 넓고 풍족했다. 바로 남궁혁은 후일 미국 유학을 하고 평양신학교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이승만을 그리로 인도했다.
이승만은 선교사들의 추천장을 많이 받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과 천재적 머리로 그 대학을 단숨에 마쳤다. 그가 배재학당(Pai Chai College)에서 공부했으니, 상당수의 학점을 인정받았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다닐 때, 이승만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언약도 교회(Church of Covenant)에 출석했다. 그리고 그 교회 담임 목사인 헴린(Lewis Hemlin)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승만이 배재학당을 졸업했고, 감리교 지도자로 살아온 것은 맞다. 그러나 이승만은 스코틀랜드 정통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사실 평양신학교를 세운 마포 삼열(Samuel A. Moffet)도 정통 장로교인 언약도의 후손이다.
어쨌거나 이승만에게 신앙지도를 하고 세례를 주신 헴린 목사는 지금부터 120년 전 미국 동부의 정신적 지주요, 대 지도자였다. 그래서 그는 당시 하버드 대학교 이사장 겸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이사였다. 그는 청년 이승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 인도했고,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버드 대학교를 마친 후 그는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로 왔다. 그런데 이승만은 처음부터 정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고, 1년간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당대 최고 학자인 비.비 월필드(B. B. Warfield) 박사가 인도하고 있었다. 거기서 이승만은 변증학과 바울신학, 그리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학교의 분위기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영역주권 사상’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승만의 가슴 속에는 ‘만약 조선이 독립 국가가 된다면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 입국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선포되던 날, “이윤영 의원 앞으로 나와서 기도 인도해 주십시오. 여기 의원들께서는 믿는 이도 있고, 안 믿는 이도 있겠지만 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기독 입국이 되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 세상의 명문대학을 나온다고 모두가 인생을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멘토를 만나서, 얼마나 큰 열정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人性)이고, 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성(德性)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성(靈性)이다. 명문대학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명문대학을 만들면 된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