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규 목사
▲최홍규 목사
신앙의 역사는 핍박과 고난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렇고 신약시대에도 그렇고 종교개혁을 전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애굽에서 고난당하던 이스라엘에서도 볼 수 있듯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하면서 채찍과 고역으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그의 가족이 애굽에서 번성하였지만, 야곱의 후손들이 번성하자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로 삼아 국력을 위한 노동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낙심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겠지만,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의 우고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해 해방시켜 가나안에 정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도 이방 나라들의 침략과 간섭으로 고통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는 절망감과 이방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 신앙은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강변에서 울기 시작한 그들의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또다시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의 압제 속에서 고통과 멸시를 당하면서 민족과 신앙이 짓밟혔습니다. 그리고 2,000년간 나라 없이 떠돌다가 나치 독일에는 600만이나 희생되었습니다. 예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는 세계 곳곳에서 핍박과 박해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이스라엘이나 기독교인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질문과 부르짖음은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언제까지입니까? 어느 때까지입니까? 또는 어찌하여…”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다윗의 시나 시편 중에서도 ‘탄식시’ 형태의 시 가운데는 반드시 이러한 질문이 나옵니다. 시편 42편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하면서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을 뿐만 아니라, 원수들의 조롱과 핍박 중에 부르짖기를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기에 내 눈물이 밤과 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란, 시내가 다 말라버려 돌멩이들만 널려있는 시냇가에 온 사슴이 돌들을 헤치며 먼지만 날리는 바닥을 후벼 파느라고 코와 입이 다 헐어 피가 날 정도로 물을 구하는 심정처럼, 다윗이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전 12세기에 프랑스의 피터 왈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평신도이면서 부유한 사람인데, 어느 날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인 ‘네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피터 왈도는 그 당시 프랑스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남부 리용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북부로 가로 놓인 알프스산을 오고 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피터 왈도가 카톨릭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를 설교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자, 카톨릭에서는 그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목말라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후예들이 후에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에 참여하고, 소수이지만 아직도 왈도파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00년 전에 체코의 얀 후스라는 신부는 역시 카톨릭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를 비판하며 복음을 전하자,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단의 누명을 쓰고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목말라하며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조롱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습니다. 성경번역에 앞장섰던 존 위클리프나 윌리엄 틴데일 등과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도 결국 핍박과 박해 속에 세상을 떠나며 하나님을 목말라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세계 곳곳에서 핍박과 박해 속에 숨죽이며 신앙을 갖거나 순교 당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들도 여전히 하나님을 목말라하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느 때까지입니까? 어찌하여…”라고 부르짖는 가운데,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고통 가운데 그렇게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고통 중에 하나님을 목말라하면서 그대로 인생을 끝마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고백과 같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믿음입니다.

의인의 피 값은 죄인을 구원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죄 없이 당하는 의인의 고난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러나 어느 한쪽에서는 그로 인해 구원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값없이 흘려지는 피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피의 값을 반드시 보상하실 것입니다, 아벨의 피 소리가 하나님께 들려짐같이 천상에서 순교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하나님께 신원하고 있습니다.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의 역사와 같이, 에콰도르 아우카족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5명의 선교사의 피 위에 복음화가 이루어짐 같이, 어느 날인가 하나님은 그 피를 보상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10절)

그러므로 의인도 아니고, 핍박받지도 않으면서 구원받은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회개하며, 핍박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한 그때까지….

최홍규 목사(오픈도어선교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