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지난 7년 동안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였고, 이제 놀라움을 넘어 삶의 일부분이 될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인공지능은 지난 7년 동안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였고, 이제 놀라움을 넘어 삶의 일부분이 될 정도로 가깝게 다가왔다.
제가 어렸을 적 동아일보 광고 사태가 났습니다. 그때 그렇게 어렵게 사시던 아버지가 동아일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성금을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주요 일간지는 대부분 한자로 쓰였고, 한글은 조연으로 한자 사이를 채우는 조격 단어나 명사 뒤에 오는 목적어, 문장 끝에 오는 동사나 형용사로 쓰였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신문 사설에서 나오는 한자 두 단어를 매일 공부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막내였던 저는 자전을 찾아 두 개의 한자 단어를 찾아 매일 공부했습니다. 이 단어를 아버지 앞에 가지고 가면, 아버지는 단어를 설명해 주지 않고 이 한자 단어가 들어 있는 한시나 동양고전의 문장 전체를 곧장 제 앞에서 읊어 주셨습니다. 마치 오래전 그 문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요.

그 고전들은 사서삼경, 훈몽자회, 사마천의 사기, 성학십도, 성학집요, 사자소학, 동몽선습, 그리곤 때론 한자가 대부분인 우리의 시조를 읊조리고 단 한 번만 우리말로 번역해 주셨습니다. 매우 어렸던 제가 논어, 맹자를 알 턱이 없고 아버지처럼 일제시대에 서당을 다닌 바도 없으며, 한학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 인용된 한자가 있는 문헌의 출처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한자 단어를 가지고 가도 술술 동양고전을 두루 인용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특히 딱 한 번 옛 선조들이 읊조리는 방식으로 한 문장 전체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면면히 관통했던 음악 곡조의 명칭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추어 시조창으로 노래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구성지게 시조창을 읊조리시면, 멋모르는 저는 강물에 배 띄어 시조를 노래한 선비를 연상하곤 했습니다. 물론 시조는 조선 후기에는 전문가객이 가곡창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선친이 제가 가져간 한자가 들어 있는 문장을 번역해 주실 때, 시조창으로 불러 주셨을 때,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저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매일 매일 몇 년간 아버지가 인용하셨던 동양고전, 한서들이 도서관 서가에 실제로 꽂혀 있음을 보고 저는 그때부터 책에 묻혀 살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에 오로지 기억력 하나만으로 동양고전을 섭렵하고 제가 암기한 한자가 들어 있는 문장을 어쩜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 단어의 의미를 시나 고전, 때로는 시조에서 나오는 문맥과 함께 풀어 주셨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챗GPT와 인류 문자 문명

지금 ChatGPT로 온 지구촌이 들썩합니다. 인류는 선사 시대와 그 이후로 나뉜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살고 엄청난 일이 있었어도 기록이 남겨 있지 않으면 후대에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문자를 개발한 인류는 역사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문화, 학문, 예술, 법과 제도를 후대에도 알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활자로 된 글을 접하도록 매개가 된 것은 책과 서판입니다. 물론 다양한 형태로 문자를 기록하도록 대나무로 만든 서책, 종이로 만든 책, 파피루스, 양피지, 점토 토판, 돌, 피라미드 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인류 발전이 있었던 것은 고대의 지식과 정보, 그리고 학문이 후대에 전해질 때마다 그 바탕 위에 새로운 개념화, 가설, 이론, 실험, 검증을 통한 정론이 성립되었고, 이는 차곡차곡 쌓여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기초과학, 자연과학의 토대 위에 의학, 약학, 농업, 공학, 건축학, 법학, 행정학, 사회복지학, 신문방송학, 관광학, 약학, 수의학, 수산학, 임학, 군사학 등 끝도 없는 수많은 학문이 나왔고, 이는 인류 사회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가진 지식문화와 정보, 문학과 예술 전반 영역에서 우리가 배우고 학습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주었던 매개체는 이처럼 책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계속>

김종필 목사
▲김종필 목사
김종필 목사
미국 파토스 재단 대표
필리핀 한 알의 밀알교회 개척 및 위임 목사
미국 보스턴 소재 임마누엘 가스펠 센터 바이탈리티 소장 역임
미국 시티 임팩트 라운드테이블(City Impact Roundtable) 집행위원 역임
필리핀 그레인 오브 휘트(Grain of Wheat) 대학·대학원 설립자 및 초대 총장
영국 버밍엄 대학 철학박사(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