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시대의 ‘종교의 정치화’와 ‘정치의 종교화’ 현상
오늘의 정권도 종교의 정치화를 끊임없이 시도해
권력과 ‘야합’ 혹은 ‘저항’하며 기독교계도 분열·대립
다양한 교단의 대응들이 복음 안에서 연합하는 것은 난제
역사는 현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를 파악하여 미래 방향을 설정하고 대안을 준비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오늘날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도 역사 속에서는 무수히 반복돼 온 것일 수 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의 교수이자 기독교 문화운동가인 추태화 은퇴교수(이레문화연구소 소장, 안양대 전 부총장)는 나치 시대 독일교회를 연구하는 것이 사분오열된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평생의 연구를 정리하여 2012년 출간한 저서 ‘권력과 신앙’은 학술서적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이를 만화로 재구성한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1권, 2권을 펴내 관심을 모았다. 만화 ‘권력과 신앙’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로도 번역돼 세계 각지에 보급 중이다.
최근 종각 YMCA 인근 통일빌딩 3층의 문화공간 온에서는 ‘권력과 신앙’ 북콘서트가 열렸다. 추 교수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데모를 하다가 경찰에 쫓기고 최루탄을 피해 YMCA 뒷골목을 다니면서 처음 ‘권력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있는 유대인 기념 유적들을 접하고, 나치즘이 시작된 곳이 바로 뮌헨임을 추적하게 된 그는 “과거 데모를 하던 트라우마가 기억나면서, 당시 독일문예학과 신학문학, 철학문학, 사회심리학이 종합된 융합 학문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문학 또는 기독교문학이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착안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연구의 소명을 주셔서 이 책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추 교수는 만화 ‘권력과 신앙’을 펴낸 이유에 대해 “10년 전 세미 학술서적을 내 초판 1천 권 정도 팔렸다. 그런데 여러 분이 읽으시고 이것을 만화로 내서 독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 시각적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요청을 하셔서 위성 만화 작가·감독을 만나 만화로 그리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책의 내용이 서정적이지도 않고 러브스토리나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2022년에 다시 읽어보고 역사를 회고함으로 이 시대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대로 형성해갈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존 300여 페이지 분량의 ‘권력과 신앙’을 정독하고 스토리텔링하여 만화로 각색하는 작업을 한 위성 작가(디아툰 대표)는 “제1회 기독교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교수님을 만나 일하게 되었다”며 “너무 부족한 저를 교수님이 많이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셔서 무사히 (작업을) 마치게 됐다. 교수님의 인격과 학문을 제가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만화를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책은 1930년대 독일 나치즘의 기독교 정책과 기독교의 반응을 기록했다. 추 교수는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주의자들이 정권을 획득하고 아리안-게르만족의 제국 건설을 위해 민족이 중심이 되어 모든 사회를 경영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체제, 즉 전제통치를 내세웠는데, 이는 나치즘 일당독재, 나중에는 히틀러 독재로 돌변하고 정치 기술적 하수인들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다.
추 교수는 “나치주의자들의 목표는 정권 탈취와 절대 지배다. 전체가 개인에 앞선다는 강령으로 국가 민족 집단이 우선시 되고, 개인은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권력 투쟁은 많은 희생양을 낳았다. “아리안, 게르만족이 아니면 모든 공직에서 퇴출되고, 무가치한 생명이라 판단한 이들에게 비인간적 행동을 자행하였다. 외국인, 장애인, 특히 유대인에 대한 잔혹한 행동은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고 추 교수는 말했다.
나치주의자들은 정권 쟁취와 유지를 위해 ‘편 가르기’ 전략과 탄압을 일삼았다. 추 교수는 “나치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나라를 갈라치기 하여 나치 찬동자는 내 편, 나치 반대자는 네 편, 아군과 적군으로 양분해 권력을 쥔 나치주의자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며 “정치인, 당원, 군인, 경찰, 산업체, 사업체, 학교 등 나치가 아니면 활약하기 힘든 구조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주류였던 독일 기독교계 역시 정치와 야합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세력으로 분열됐다. 추 교수는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라는 이론에 굴복한 기독교는 제국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변질됐고, 복음에 서서 이를 반대하는 저항기독교인들은 고백교회를 형성했다”며 “절대 권력을 쥔 나치당을 이길 수 없던 독일 시민사회와 교계는 ‘해외 이민’, 재야에서 침묵·방관·저항하는 ‘내부 망명’, ‘야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의식 있는 교인들은 ‘재야에서의 저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재야에서 저항을 선택한 지도자들은 ‘내 양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겠다’는 믿음으로 해외 망명을 거부한 본회퍼를 비롯하여 니묄러, 슈나이더 목사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나치주의자들은 정권 쟁취를 위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추 교수는 “그들은 정치를 종교적 대중운동으로 작동시키려 했고, 이에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을 기반으로 합법적 투표를 빌미로 권력을 차지해갔다”며 “그러나 ‘기독교인은 나치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복음적 판단을 한 개신교와 카톨릭계 인사들은 기독교가 국가 기관에 종속되는 과정에 반대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저항 운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에 개신교계에서는 목사들을 중심으로 목사긴급동맹이 결성되어 전국에서 나치 반대 성명을 내며 투쟁에 돌입했고, 바르멘신학선언을 통해 그 정당성을 공포하여 고백교회의 결성이 구체화 되었다. 가톨릭계에서는 침묵에서 저항으로 정세를 판단하면서, 당시 교황 비오 12세가 교서를 발표하여 나치주의를 경고하였으며, 사제단과 교인들에게 바른 판단력을 촉구했다. 결국 나치 정권에 탄압을 받게 된 기독교인들은 감옥과 강제수용소에 갇히고 순교자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후 기독교인들의 저항 운동은 나치의 비인간적, 반인륜적 만행과 전쟁 도발, 유대인 핍박과 학살 등으로 인해 ‘악의 중심’, 곧 ‘적그리스도의 한 분신’으로 여겨진 히틀러 암살 작전으로까지 구체화했으나, 이는 실패했다. 대신 히틀러가 1945년 5월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하면서 나치는 패망하고 정권은 종말을 맞았다.
추 교수는 특히 나치파시즘의 지배를 당했던 1930년대는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당하던 시기로, 중첩되는 점이 많다고 했다. 그는 “1930~1940년대 독일과 한국은 유사점이 있다. 독일은 나치파시즘에,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에 지배당했다”며 “특히 탄압 과정에서 기독교계가 문제의 중심에 떠올랐다. 독일은 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려 했고, 한국은 3.1운동과 같이 민족적 저항의 심장이 됐다”고 주장했다. 또 “독일과 한국에서 야합과 저항으로 사회가 나뉜 것처럼 교계도 그랬다”며 “독일에서는 민족신앙을 기반으로 민족종교 운동과 기독교의 민족적 요소를 가미해 사이비 이단적 주장이 생겼고, 한국도 일제 강점기와 그 후 유사한 현상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고 말했다.
추 교수는 나치 시대 나치 정권이 기독교를 정치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또 교회는 나치의 사이비 기독교 정책을 어떻게 오해했는지, 그리고 독일인이 독일인에 탄압당하고, 독일 기독교인이 같은 독일 기독교인에 의해 탄압당하던 이 시대의 현상이 오늘날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정권들이 기독교를 정치에 활용하려는 ‘종교의 정치화’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며 “교계가 야합과 저항으로 인한 분열, 교리·신학의 대립 가운데 복음 안에서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던진다”고 말했다. 동시에 ‘좌파-우파’, ‘진보-보수’, ‘여당-야당’, ‘극좌파-극우파’, 주사파, 중도진보, 중도보수, 친미, 친일, 친북, 친중 등 국론 분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정권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옳은지, 정치 투쟁을 위해 복음을 이용하는 행태를 회개하고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복음적으로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해볼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위한 대안은 고백교회의 신앙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며 “시대적 분별력을 성경에서 찾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열된 한국교회의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기득권과 독선적 주장을 내려놓고 복음으로 연대해야 한다”며 “각자가 ‘절대반지’를 끼듯 중심이 되려는 욕망을 가지고서는 해법이 요원하다”고 말했다.
추 교수는 “이 책을 진보 쪽에서 읽으면 얘기할 거리가 많이 나올 것 같다. 또 보수 쪽에서도 열심히 읽어 이 시대를 향한 이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이 책의 표지를 (서가에 꽂았을 때 보이는 색이) 빨간색으로만, 또는 파란색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만화 감독님이 우리는 진보, 보수가 같이 가는 것이고, 진보의 좋은 점과 보수의 좋은 점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이루어가는 의미로 색깔도 빨간색, 파란색 두 가지를 다 쓰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애매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라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감독님이 깊이 기도하시는 가운데 이 책이 소위 한국의 아름다운 현재와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분이 같이 갈 수 있도록 진보와 보수의 색깔 두 가지를 다 쓰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추태화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 책은 중국어로 번역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중국 출판업계에 소개했으나, 기독교 선교책이라며 퇴짜 맞았다”라며 “중국어로 번역한 이유는 이러한 책들이 들어가서 중국 사회에 좋은 의미의 변혁과 개혁을 일으키고, 복음적 하나님의 나라가 찬찬히 이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아랍어, 미전도종족 언어로도 계속 번역하려 한다”며 “아직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곳에 그 나라 언어로 번역돼 복음을 전파하는 문화선교사역의 일환으로 쓰려고 한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이날 북콘서트 감사예배에서는 문정식 목사(열린교회)의 여는 기도, 유종성 목사(사랑의교회 일터선교회 담당)의 인도로 ‘권력과 신앙’ 속에 인용된 성경구절(벧전 5:8, 골 1:24, 살후 2:16~17) 등을 함께 낭독했다. 유 목사는 “핍박과 고난, 어려움 속에서 피할 수 있는 영원한 영혼의 참호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라고 강조했으며, 주기도문으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1부에서 책 리뷰를 맡은 김광수 안양대 교수는 “정치와 권력, 종교는 밀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오히려 하나님의 윤리와 정의, 하나님의 권력에 대한 생각이 보급되고 더 퍼져나가 바르게 질서를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의 정치 성향을 갖든 온전하게 자기 정체성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독일에도 고백교회가 있었는데, 우리도 그런 신앙의 모습을 찾아서 각자의 위치에서 고백하는 상황을 맞이해야 하고, 이것이 하나의 운동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추 교수님이 가진 오리지날리티(독창성)가 ‘원소스, 멀티 유즈’로 활용되어 오늘의 만화책이 스틸이미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