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원 목사
▲서창원 목사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장식이 아니다. 상흔이며 흔적이며 사단이 할퀴고 가는 불화살이다. 피할 수만 있다면야 좋으련만 되레 더 가중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자 할수록 부딪히는 맞수이다.

물론 자신의 실수와 허물로 인하여 당하는 아픔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때문에 겪어야 하는 삶이다. 잠시라도 휴전하자고 협상 테이블에 앉음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영적 전쟁터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고난을 환영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고난이 무서워서 도망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편 기자는 ‘고난이 내게 유익하다.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노래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을 체감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때 가서야 고난 중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세상을 이기신 우리 주님께서 고난의 현장을 파하지 않으시고 결사항전의 의지와 힘을 드러내신다. 마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탈출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적과 싸움에 결연한 의지로 나서서 국민을 독려하는 것과 같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여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다. 그가 온몸으로 받아내신 십자가 고난은 죄인의 해방구였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얻게 되었고 모든 민족이 그를 주라 시인하게 되고 각 나라 각 족속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영화를 얻게 되었다. 이것을 실감한 사도들은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미미한 것임을 지적하였다(롬 8:18). 우리의 죄짐을 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결국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 12:2).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인하여 고난의 풀무 불에 던져진 형제자매들에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고난을 몸소 받으시고 영광에 이르신 우리 주 예수를 바라보라는 권면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으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공허한 소리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크고 작은 시련과 아픔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참으라, 인내하라, 견디라’는 말뿐이다. 주께서 곁에 서셔서 강건케 하심을 믿는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던져진 풀무불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셨다. 그들의 머리털 하나라도 타지 않도록 방패가 되어주셨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그런데 고난의 쓰디쓴 잔을 마시게 하는 것은 뭐란 말인가? 고난의 현장에 있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살아난 것이 아니다. 개중에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물론 순교자들은 하나같이 원망보다는 감사를, 애통하기보다는 희망의 찬송을 노래하였다. 그들은 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욥의 아내의 말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을까? 그들이 가질 미래와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그렇다.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고난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기 확신이다.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보다 확실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속한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방패와 도움이시다. 하나님이 버리시거나 떠나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받은 고난에 동참하는 영광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이러한 연단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여 더 거룩한 시민이 되게 한다. 정금 같은 일군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불같은 시험을 이긴 그리스도인을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된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도망치지 않는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며 너의 이김이 무엇이냐’ 외치며,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고전 15:55~57).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을 보장한다.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함을 안다. 지금 복음 때문에 고난을 겪는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인 것만이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의 같은 지체임을 확정하자.

공의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시련을 반드시 신원하여 주시고 주님의 의로우신 홀이, 그의 영광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스스로 증명할 것이다. 그때 음부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불행과 영원히 단절하고, 의의 면류관을 들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천군천사의 무리와 한 몸이 되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극히 높여드리는 영광을 소유하는 그리스도인은 복된 것이다.

서창원 목사(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