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믿음의 여성들의 ‘용기’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요.”

9월 30일까지 새문안교회 1층 갤러리에서 특별전시 ‘새문안 여성사 1: 1887~1945’가 진행 중이다. 새문안교회 창립 134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특별전시에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짧게는 70여 년, 길게는 130년 넘게 역사 속에 묻힌 이름 없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전시회 주제는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대 이름은 여성!’.

전시를 주관한 새문안교회(이상학 담임목사) 교회역사관 관장 원영희 장로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보이는 남다른 용기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새문안교회 원영희 시무장로
▲30년 넘게 새문안교회를 섬기고 올해 초부터 새문안교회 교회역사관 관장으로 시무 중인 원영희 장로는 “무채색의 ‘여성 사역 기록’에서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은 천연 무지갯빛의 ‘여성’과 ‘어머니’의 생생한 모습을 되찾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지희 기자

이 시절 복음에 눈뜬 여성들이 보여준 용기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보통 큰 도시에서 열리는 부흥사경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밥솥을 이고 며칠씩 걸어온 어머니들의 용기, 4~5일간 사경회를 하고 다시 며칠을 걸어간 여성들의 용기, 세 번의 주일예배 외에도 일주일에 여섯 번 열린 성경공부반과 3개월간 매일 저녁 기도회에 참석한 여성들의 용기, 예배당 건축에 필요한 기금 모금 운동에 앞장선 여성들의 용기, 일제가 노골적인 대륙 점령 야욕을 드러낸 1930년대의 힘든 시기 교인들 간 친목과 믿음을 다지는 역할을 한 여성 권찰들과 여집사들의 용기 등이다.

이뿐 아니다. 내외구분과 남녀유별이 엄격한 시대, 언더우드 호튼 여사와 황해도까지 동행하며 전도하고, 집마다 다니며 부녀자의 방에 들어가 성경책을 판매한 전도부인들의 용기, 전도부인의 사례금을 담당하고 수해 지역 구제와 만주 조선족교회 건축에 연보로 참여한 여성들의 용기, 금주선전일을 선포하고 주마정벌군(酒魔征伐軍) 깃발을 들고 금주가를 부르며 시가행진한 부인전도회의 용기까지 그 모습은 다양했다.

이 여성들의 불꽃 같은 신앙의 열정과 용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다름 아닌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혼란스럽고 낙후된 구한말 조선땅에 생명을 걸고 찾아 온 여성 선교사들로부터라 할 수 있다. 원영희 관장은 “이 세상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있을까. 그러나 당시 외국에서 온 여성 선교사들은 모두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조선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온 가장 용기 있는 여성들이었다”고 했다.

새문안교회 창립 134주년 기념 특별전시 ‘새문안 여성사(1)’
▲새문안교회 교회역사관 관장 원영희 장로가 인사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1885년 남편 헤론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해리엇 깁슨, 언더우드 선교사의 요청으로 1886년 파견된 의료 선교사 애니 앨러즈, 1888년 입국하여 이듬해 언더우드 선교사와 결혼한 여의사 릴리어스 호튼, 역시 1888년 내한하여 활발한 여성 사역을 펼친 메리 헤이든 등이 그러했다. 미국의 목사, 의사, 교육가 등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이 여성들은 본국에서의 안락하고 평탄한 삶을 뒤로하고, 아시아 변방의 작고 가난한 나라로 떠난 선교 열정이 넘친 진취적인 여성들이었다.

조선땅에서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풍토병과 전염병으로 남편과 자녀들을 잃고, 본인도 이른 나이에 생을 마치기도 했다. 겨우 생명은 건졌으나 만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이 10~40년간 눈물로 뿌린 복음의 씨앗은 시대와 환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믿음의 한국 여성들로 열매를 맺었다. “한 나라의 여성을 얻으면 그 나라를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말이 한국에서 이뤄진 것이다.

새문안교회 창립 134주년 기념 특별전시 ‘새문안 여성사(1)’
▲지난 5일 새문안교회 창립 134주년 기념 특별전시 ‘새문안 여성사(1)’ 개회식 참석자 단체사진. ⓒ이지희 기자
이번 특별전시는 작년 새문안교회 창립기념일과 새성전 입당 1주년을 맞아 기획 전시한 ‘새문안 여성사’를 대폭 보강하여 열렸다. 원 관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작업이 마치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한 흑백이나 빛바랜 무채색 유물과 사료에 천연 무지갯빛 채색을 입히는 작업 같았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의 빛을 잃어가는 오래된 사진처럼,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는 ‘역사’에 갖가지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개인적, 사회적 메시지와 의미를 찾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딱딱한 정보 중심의 감동 없는 ‘여성 사역 기록’에서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한 ‘여성’과 ‘어머니’의 모습을 되찾는 시간이었어요.”

원영희 관장은 “이 전시회를 통해 오늘의 여성들도 용기를 새롭게 하여 말씀 공부와 전도에 집중함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힘을 얻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이 용기 있는 믿음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드라마 ‘제중원’처럼 스토리텔링 과정을 거쳐 영상으로 제작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새문안 여성사 2’ 전시에 대해서는 “언제 열릴지 모르지만, 의식 있는 여성 장로가 언젠가 용기를 내 진행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대신 원 관장은 “계속해서 한국 기독교의 역사인 새문안교회가 남긴 사료를 잘 정리하고 교회역사관에 여성 코너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광화문과 세종로, 서대문까지 새문안교회와 종교교회, 시청 앞 성공회, 정동교회 등을 잇는 ‘기독교 역사 탐방길’이 생겨 더 많은 시민과 기독교 역사를 공유할 수 있길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