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도네시아 이주민 3만6천 명 중 약 90%는 무슬림
무슬림 전도 쉽지 않아, 성도들도 선교 의식·자립심 키워야
25년간 목회자의 길 들어선 인도네시아 이주민 20여 명

현재 국내에는 약 3만6천여 명의 인도네시아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는 1995년부터 국내 인도네시아 이주 근로자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 지부를 세워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훈련 사역과 긍휼 사역, 자국 선교사로 준비시키기 위한 훈련 사역을 해왔다. 신학교에 진학할 경우 학비를 지원하고, 선교회가 파송한 인도네시아 선교사들과 현지로 돌아간 형제들이 미전도종족을 섬기도록 재정과 기도 후원 사역도 하고 있다. 지금은 안산, 인천, 수원, 평택, 음성, 천안 지부까지 6곳이 사역하고 있다. 최근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 안산 지부를 섬기는 정상엽 목사를 지부 사무실에서 만나 사역 현황과 비전을 들어봤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 안산 지부
▲정상엽 목사는 현지인 기독교 성도들의 제자화에 집중하고, 무슬림을 도와주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ㅡ국내 인도네시아 이주민 규모와 상황은 어떻게 되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의하면 2020년 3만6천 명 정도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에 잡히는 이들만 그렇고, 소위 불법체류자(미등록외국인)까지 합하면 5~6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들은 자기 나라에 있을 때보다 한국에서 노동의 강도가 높다. 공장에서 일하면 보통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한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다시 6시부터 8시 30분까지 2시간 30분 정도 잔업을 한다. 힘들게 일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임금은 현지보다 7배 정도 많이 받는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는데 방처럼 잘 되어 있는 곳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고, 원룸이나 고시원에 머물기도 한다.

보통 비전문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면 처음 3년, 연장하여 1년 10개월, 공장을 한 번도 안 옮기고 성실하면 최대 10년까지 머물 수 있다. 관광비자로 들어왔다가 머물기도 하는데 평균 3~5년 사이 머물고 돌아간다. 남녀비율은 7대 3, 혹은 8대 2 정도로 아무래도 남성 비율이 높다. 가끔 부부가 같이 들어오는 경우 아이는 할머니 등 친족에게 맡기고 오고, 싱글로 입국해 여기서 결혼을 하고 부부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 종교는 90% 정도가 무슬림이다.”

ㅡ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의 사역에 대해 좀 더 소개해 달라.

“정기예배와 주일 오후 성경공부를 통해 인도네시아 형제들의 믿음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의료상담, 노동상담, 고용주와의 갈등 중재와 통역 지원 등을 함께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기독교를 믿고 들어온 형제들도 물론 도와주지만, 인도네시아 무슬림 형제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통로로 쓰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적 기능도 하므로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로 말하기도 한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 안산 지부
▲교회(3층)가 있는 상가건물 6층 안산 지부 사무실에서 정상엽 목사가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ㅡ인도네시아 이주민 사역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나가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비자가 나오지 않아 태국 남부 말레이 부족 사역을 하게 됐다. 그러나 저희 아이가 선교지에서 자폐증세가 발견돼 한국에 돌아왔다. 본부에서 국내 사역을 하고 한국인 목회도 하다 2010년부터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 안산 지부에서 사역하게 되었다. 아들은 지금 20대 후반으로 장애인 직업재활원에 다니면서 일하고 있다.”

ㅡ인도네시아 이주민의 복음 수용성이 본국과 비교하여 어떤가.

“한국이라고 해서 복음 수용성이 꼭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무슬림은 가족공동체로 형성돼 있어 집단적이므로 개인적 회심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인도네시아 무슬림들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가끔 저희 교회 수련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회심한 친구들이 있지만, 복음의 수용성은 인도네시아 현지에 있든 한국에 있든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희 교회(안산 지부) 성도는 원래 40~50명이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작년 3~4월에 많이 출국해 현재 30여 명이다. 대부분 현지에서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이다. 마을의 80%가 기독교인인 북 술라웨시 마나도에서 온 형제들이 그러한데, 명목상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그들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된다. 국내 사역은 90%는 현지인 크리스천 성도들의 제자화에 집중하고, 그 외 10% 정도는 무슬림을 도와주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한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 안산 지부
▲안산 지부 인도네시아 성도들. 한국인-인도네시아인 다문화 가정이 두 가정이고, 2017년에는 교회 안에서 인도네시아인 세 커플이 결혼해 가정도 이뤘다. ⓒ이지희 기자

ㅡ복음 전도의 장애물은 없나.

“성도들 가운데 다문화 가정이 2가정 있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공장 일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본국도 힘들고 어려운데 한국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도울 수 있고, 본국에서 누리지 못하는 문화적 혜택을 여기서 누릴 수 있어 한국에 고마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저희 교회에서도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가끔 집회, 공연에 가기도 한다. 이를 통해 주님께 돌아오는 경우는 희박하나, 어려움을 당할 때 교회가 중간에서 통역해주거나 도움을 주고 있어 기독교에 반감이 있던 이들은 반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열린다.

원래 무슬림들은 금요일에 이슬람사원에 가야 하는데 인도네시아 무슬림 이주민들은 토요일에 일이 끝나면 간다. 사원에 가지 않는 명목상 무슬림도 많은데, 이들은 토요일에 일이 끝나면 쉬든지 시내를 다닌다. 안산 다문화 거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식당과 가게에서 필수품들을 사기도 한다. 전도의 장애물은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ㅡ무슬림 사역은 어떻게 하고 있나.

“저는 한국인 사역자이기 때문에 무슬림 친구들을 만나기가 더 쉽지 않다. 교회 친구들이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인도네시아의 같은 마을, 같은 지역 출신이면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데,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선교’에 대한 의식이 약한 편이다.

인도네시아 기독교인들의 안타까운 점은 ‘우리만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가 성도들에게 ‘인도네시아를 우리가 선교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전해야 한다’고 계속 말하면, ‘서로 자신의 종교를 평화롭게 믿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지 교회 사람들도 선교에 대해 비슷한 입장이다. 인도네시아는 헌법에 6대 종교(이슬람, 개신교, 카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를 보장하고 있다. 참고로 종교 분포는 이슬람 87%, 개신교 7%, 천주교 3%, 힌두교 2%, 불교 1% 순이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 안산 지부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 안산 지부 임원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 안산 지부

인도네시아 교회가 힘이 없어 전도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큰 교회도 있고 자카르타의 중국계 교회들은 재정도 풍부한데 선교해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못 한다. 자바 지역 다른 교회들도 믿지 않는 미전도종족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하다. 선교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는 것이다.”

ㅡ한국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본국에 돌아가 사역하는 사례는?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회는 안산뿐 아니라 인천, 수원, 평택, 음성, 천안 지부가 있는데,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명 정도의 목회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다 예수님을 정말 뜨겁게 만나고 회심하여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가 되었다. 그중 안산 지부 성도 출신의 목회자는 현재 수원 지부에서, 수원 지부 성도 출신의 목회자는 평택 지부 사역자로 섬기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돌아가 현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된 친구들도 꽤 있다. 주로 현지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 한 번씩 한국에서 후원금을 보내 지원한다. 작년에도 코로나 펜데믹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목회자들에게 한국 지부들이 헌금을 모아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안디옥 인도네시아 지부가 수라바야에 있는데, 그곳 대표 사역자를 통해 지원했다. 원래 2년에 한 번씩 인도네시아에서 수련회를 여는데 코로나로 취소되고, 대신 마스크와 소독 용품 등을 현지에 전달했다.”

ㅡ사역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즐겁게 교회 활동에 헌신하는 것을 볼 때 보람이 있다. 또 손가락이 기계에 들어가 절단되면 병원에 데려다주어 봉합수술을 받게 하고, 가끔 결핵에 걸리면 보건소에 데려가 결핵약을 받는다. 허리가 아픈 형제의 허리 수술도 도왔는데,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의 지원 제도를 이용해 수술비의 90%를 지원받았다. 어려운 이주민들을 도와주는 제도들이 있어 매우 고마워한다.

합법체류자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수술을 받을 때는 병원 내 사회사업시설의 도움을 받는다. 이때 이들이 일하는 회사의 증명서가 필요하다. 그러나 회사는 불법체류자 고용 사실이 알려져 불이익을 받을까 봐 증명서를 안 써주려 한다.”

안디옥인도네시아선교교회 안산 지부
▲정상엽 목사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인도네시아 이주 근로자들이 주님을 잘 믿고 신앙이 자라도록 제가 더 본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ㅡ인도네시아 이주민 사역을 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문화적 차이가 좀 있고, 성도들이 원하는 만큼 잘 따라와 주지 못할 때 조금 힘들다. 자립심이 약한 것도 느낀다. 여기서 돈을 버는 데도 십일조 개념이 약하고, 한국교회를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 월세가 100만 원씩 나오는데 5천 원, 1만 원 헌금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자신들이 십일조를 내는 것이 필요한데, 한국교회의 도움을 요청하기 원한다. 그런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다.

또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전화해 통역을 계속 의존하려는 것도 좀 어려운 점이다. 한국어를 배워 자꾸 스스로 말하려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 밖 친구들은 도움을 구할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 한국어를 배우고 우리는 한국어 선생님을 초청해 공부하라고 해도 배우려는 학생이 별로 안 된다. ‘목사님이 도와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신앙과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약한데, 결국은 제가 본이 되어 이 친구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끌어올려야 하는 부분이다. 일단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제대로 따르게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헌신할 것이다.

저보다 앞서 안산 지부를 맡았던 사역자가 그랬다. 한국에 와서 토요일만 되면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던 형제였는데, 회심해서 인도네시아에 돌아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됐다. 물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있다.”

ㅡ세계 각국의 인도네시아 이주민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일본, 홍콩과 중동 지역에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가정부로 많이 나가 있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캐나다에도 인도네시아 이주민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인도네시아 교회들이 각국에 세워져 있다. 간혹 본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이주 근로자로 돈을 벌러 해외에 나오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결성된다. 또는 각국에서 인도네시아 선교에 뜻을 둔 사람들의 모임이 중심이 되어 교회가 운영되기도 한다. 규모가 어느 정도 늘면 인도네시아 현지 교단에서 사역자를 파견하기도 한다.”

ㅡ앞으로의 사역 비전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제자화하고, 특히 그들 가운데 무슬림을 복음화하는 것이 비전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님을 잘 믿고 신앙이 자라 인도네시아로 역파송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