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계속되다

서울 앵글리칸 선교부의 헬레나(Sister Edith Helena) 자매의 보고이다.

“영국성서공회는 부인매서인의 봉급을 지원해 주고 그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손쉽게 제공하도록 도움을 주는 영국성서공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이 엘레자벳(Yi Elizabeth)은 1909년부터 성서공회에 소속되어 왔는데, 작년에 인내와 열성으로 도보로 다니며, 열심과 오래 참음에 실패하지 않으며 훌륭하게 일하였다. 서울에서의 사역은 여러 면에서 어렵다는데, 사는 지역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방문할 수 없다. 하지만 추위에서나 더위에서나, 비가 오나 좋은 날이나 엘리자벳은 포기하지 않고 불신자와 초신자는 물론 교인들, 특히 세례 준비자들을 심방한다. 세례청원자의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예비반의 자매들에게 주어진 공과의 진도를 나가거나, 예비반에 참석할 수 없는 부인이나 소녀에게는 공과 전체를 가르친다. 그녀는 한번 복남리에 가면 3일씩 묵으며, 세례 문답을 대비하여 가르친다. 다른 마을에서는 개인적으로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을 방문하여 가르친다. 항화장(Hang Wha Chang)에서는 낮에는 장사와 다른 일을 하는 곳으로, 그녀는 저녁 일찍 가서 8시에 심방하는 나를 위해 준비해 주고 밤 10시에 함께 돌아온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들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엘리자벳은 시골 마을에 사는 여성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밤중에 이렇게 먼 길을 걷는 것을 조금도 불쾌하게 생각지 않는다.

올해 초 예상치도 않게 갑자기 학교사업에 교사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성서공회가 지원을 했다. 다른 부인매서인은 이 안젤라(Yi Angela)로 2개월간 서울에서 훌륭히 일했다. 그녀는 주로 글을 모르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는데, 성경공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아이가 성경을 사서 가지고 있다. 대영성서공회는 항상 관대하게 지원했고, 우리 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다 지원했다. 영국교회선교부에서는 이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계속 호의를 베풀어 주길 희망한다.”

부인매서인들의 모습.
▲부인매서인들의 모습. ⓒGCAH Digital Gallary
캐나다 장로회선교부 매컬리(Miss McCully) 양의 보고이다.

“리디아 한(Lydia Han)은 지치지 않고 함흥지역을 순회 여행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이 마을 저 마을 복음책 짐을 메고 가는 것은 분명 어두움에 사는 영혼들에게 빛을 나르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보고서에 의하면 비록 소량의 신약성경책과 쪽복음을 반포했지만 4,520명의 여인이 그의 입술을 통해 구원 소식을 들었고, 대한 여성들이 이제 깨어나고 있으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만 지나면 미국처럼 대한에서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여자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인쇄된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간증을 가지고 선교사들이 가지 않은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이들 부인매서인들은 대각성 운동의 큰 도구라 믿는다.

한때 지배인이었던 호주 장로회선교부 커렐(Dr. Hugh Currel) 의사가 보내온 부인매서인에 대한 보고이다.

“세례명이 마르쿠바(Marcuba), 혹은 마르다(Martha)인 윤순진(Yoon Soon Chin Mochin) 모친은 매우 팍팍한 인생을 살아온 여인이다. 그녀는 진주에 있는 식당의 지배인이었다. 즉, 주막을 운영했다는 뜻이다. 우리 선교부가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는 모임에 참석하였고, 얼마 되지 않아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고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하였다. 믿는다는 것 때문에 친척들이 크게 반대하면서 핍박하였고, 생계 수단이 되던 주막도 그만 두었다. 그러나 그녀가 세운 새로운 신앙은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단호하게 예전의 악습 생활을 벗어나 새 출발을 하였다. 그녀는 그리스도와 및 교회와 맺은 연합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고, 믿기로 작정한 이후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어릴 때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그녀는 머리가 총명해, 어릴 때 못 받은 교육을 어느 정도 따라잡고 있다. 뛰어난 유머감각은 부인매서인으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다른 사람이 팔지 못하는 경우에도 성경을 팔고 있다. 강건한 체질을 타고난 그녀는 지치지 않고 걷는다. 나이는 이미 50이 넘었는데도 하루에 30마일을 걷는다. 판매량도 월평균 40권으로, 이 지역에서는 매우 좋은 실적이다. 그녀는 외국인 여선교사들이 지방을 순회할 때 큰 조력자가 된다.”

복음의 결과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성서공회가 마가복음 600,000권을 발행한 이후 전도 현장에서 나타난 2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마틴(Miss Martin) 양의 보고이다.

“최근 목포에서 좀 떨어진 해남(Hanom) 마을에서 사경회를 열었을 때, 다른 마을에서 복음에 대해 더 듣고자 교회에 온 여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이번이 교회당 안으로 들어온 첫 번째 날이었다. 우리가 그녀에게 어디서 복음을 들었고 어떻게 믿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자기 남편이 가져온 마가복음을 읽고 믿게 되었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녀는 말하기를 집에서 그녀뿐만 아니라 남편과 딸, 아들 모두 매일 흥미롭게 성경을 읽는다고 했다. 그녀에게 주님을 믿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답하기를 ‘내가 복음에 대해 더 배우기를 원치 않고, 믿지 않으려면 오늘 이렇게 먼 길을 왜 걸어왔겠어요?’ 하고 말했다.

우리는 그때 바로 거기에 있게 되어 이 여인에게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어 기뻤다. 그 여인은 성경전서를 구입하기를 원했지만 우리는 판매할 성경을 갖고 가지 않아 판매할 수 없었다.”

그레이엄(Miss Graham) 양의 보고이다.

“최근에 비가(Miss Biggar) 양과 함께 주일날 오후 사경회를 열었는데, 10리나 떨어진 마을에서 품위 있는 상류층 여인이 와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전에 그녀는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잘 이해를 못 하겠으며 주님께서 자기를 이곳에 보냈다고 했다.

그 노인이 글을 읽을 줄 알기에, 나는 그녀에게 마가복음을 한 권 주며 집에 가지고 가서 다 읽어보라고 권했다. 다음 날 오후, 우리가 사경회를 마칠 때쯤, 그녀는 두 명의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들 모두 내가 구세주에 대해 전할 때에 완전히 몰입해 들었다. 그녀는 되돌아가기 전 우리에게 10센(=2 1/2d)을 주며, 이 작은 책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선물하겠다고 했다.

함께 온 여인 중 한 명은 분명 매우 가난해 보였지만, 나에게 지전 6개(6 Cash =about 1/4 d)를 주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기를, 비록 몇 시간 전에 알게 된 주님이지만 그녀 역시 주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녀를 데리고 온 여인이 밤중에 큰 소리로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듣고 자신은 믿게 되었다고 얘기해 줬다.”

베시 부총무(the Rev. F. G. Vesey)

1912년 봄에 대영성서공회 대한지사에서 근무하던 베시 부총무가 4년간 공회에서 부총무로 신실하고 열성적으로 일을 마치고 사임을 했다.

우리는 베시가 가족의 병환으로 인해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결론

우리는 올해도 감사함으로 마무리했다. 특별히 우리는 서울에 적절하게 신축한 성서공회 서울지사 건물 완공에 감사한다. 또한 많은 관계 기관 여러분이 보내주신 축하에 감사한다.

특별히 앞의 간증에서도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불러주신 매서인과 부인매서인들이 많은 이들을 정의롭게 변화시킨 그들의 간증과 신실함에 감사드린다.

1911년도 대한국 파견 선교사 현황 통계
▲Y.M.C.A. 1910년 통계에는 직원 4명, 교사 2명과 351명의 정회원, 그리고 718명의 준회원이 있다. 구세군에는 25명의 직원이 있다. 우리는 대한국에서 활동하는 유용한 카톨릭교회의 현황을 갖고 있지 않다.
제4장 1913년도 『대영성서공회 연례보고서』 (BFBS 109th Report,1913)
4-1. 1912년도 BFBS 활동 소개와 요약

매서인 활동

하나님의 인쇄된 말씀이 여러 곳에 흩어진 자녀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도록, 성서공회는 특별한 종류의 여행 지사를 발달시켰다.

25년 전(1888년) 첫 번째로 일본에서 성서공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매서인을 ‘성경을 팔러 다니는 사람’(The-Holy-Book-to-sell-go-about-man, 売書人·バイショニン 바이쇼닌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라 한다)이라고 불렀다. 일본어 명칭에서 보여 주듯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복음 전달자의 책무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겸손하고 신실한 사람들은 여러 종족이 있고, 기독교의 여러 종파에서 왔지만, 매서인들은 그들이 반포하는 성경을 사랑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들의 나라 길과 강을 지나 그들은 이 마을 저 마을, 이 집 저 집을 도보로 다니며 보통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성경과 복음서를 그들에게 제공한다. 매서인들은 어디에서나 그들의 길을 개척한다.

지난해 그들은 온타리오(Ontario)에 있는 목재캠프장, 퀸즐랜드(Queensland)에 있는 외로운 정착촌, 보헤미아(Bohemia)의 유리공장, 말레이반도의 고무농장 등을 방문했다. 매서인들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성의 그림자 아래서, 북경 철도역에서, 자바(Java) 외곽 영화상영장에서, 스피츠베르겐(Spitzbergen) 해의 섬에서도 성경을 판매했다. 나이저(Nizer)에서 매서인 한 명은 카누에서 떨어져 급류에 휩쓸리기도 했고, 볼리비아(Bolivia)에서는 융프라우(Jungfrau) 정상보다 높은 고산 지대를 통과하기도 했다.

스페인 매서인들은 살라만카 대학(University of Salamanka)에 들어가 활동했다. 러시아 매서인들은 니즈니-노브고로드(Nijni-Novgorod) 대박람회 기간에 성서공회 서점에 있는 책 7,000권을 전시하기도 했다. 2마리의 당나귀가 운반한 책들이 팀부크투(Timbuktu) 시에서 팔렸다.

동양과 서양의 관문인 포트 사이드(Port Said)에서는 지난해 우리 매서인들이 3,000척의 배에 올라 15개의 언어로 된 성경 10,000권을 판매했다. 발칸(Balkans) 지역 전쟁 기간 중 150,000권의 성경과 복음서들이 캠프에 주둔하거나 병원에 있는 군인들에게 배포되었다.

성경 판매인들의 경험은 그들의 국가, 의상, 언어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따금 그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박해를 받기도 한다. 중국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매서인은 강도를 당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빼앗겼고 어떤 이는 며칠간 동굴로 피신했지만, 그의 집은 기독신자들을 죽인 폭도들에 의해 불탔다. 미얀마에서 어떤 매서인들은 정부 관리가 전염병 예방접종을 하러 오는 것으로 오인해 마을 출입이 봉쇄되기도 했고, 세일론(Ceylon)에서 어느 매서인은 코끼리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베네수엘라(Venezuela)에서 매서인들 중 2명이 체포되었다가 영국 목사의 개입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부코비나(Bukowina) 매서인은 러시아 스파이로 몰려 한 달여 동안 구금되기도 했다. 알바니아(Albania)에서는 첫 번째로는 터키 군인에게 강도를 당했고, 두 번째로는 그리스 군에 잡혀 영창 생활을 하다가 아테네에서 풀려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매서인들이 그들의 소명에 따른 일을 하고 있고, 많은 놀라운 성취를 하고 있음을 보고받는다. 많은 지역 중 특별히 예를 들자면, 중국과 대한국에서는 매서인들이 선교사들의 최고의 조력자이며 선발대라고 하는 칭송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지난해 성서공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계속해서 성경을 반포하고 전 세계에서 3,750,000권의 성경을 판매하고 있는 매서인 1,200명을 고용했다.

부인매서인

이러한 매서인들 이외에도 성서공회는 약 500~600명의 부인매서인을 고용하고 있다. 주로 동양 선교지역에서 활동하는데 이런 곳은 이들 부인매서인들의 입술을 통하지 않고는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지역이다. 부인매서인들 중 서양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약 100명인데 이들은 주로 영국 런던 뒷골목에서 사역하고 있다. <계속>

『매서인은 교회설립의 선구자였다』에서 발췌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