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자신학화는 성숙한 말씀 읽기에서 시작

“지금 한국 신학은 번역 신학에 그치고, 수입 신학에 그칩니다.”

9일 온라인으로 열린 2020년 자신학화 포럼(Self-Theologizing Forum) 정기세미나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국 신학이 서양신학의 번역과 수입 신학이 돼선 안 된다는 뼈아픈 지적을 하며 “주체성과 민족주의로 점철된 단재 신채호의 정신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한국교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동시에 “한국교회 신학의 흐름과 변화를 짚으면서 ‘자기 신학화’라는 작업을 할 때, 늘 열린 마음으로 세계와 보편성과 소통해야만 자기 함몰에 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신학화 포럼
▲자신학화 포럼 첫 정기세미나가 9일 진행됐다. ⓒ자신학화 포럼
‘신학을 한다는 것(doing theology)’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날 ‘신학함’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자신학화 포럼 정기세미나에서는 이만열 교수의 강연과 참여자들의 온오프라인 토론이 반나절 동안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지난 9월 제1차 자신학화 포럼에서 자신학화 논의가 대두한 배경과 의의 및 개념에 대한 심도 깊은 토의 이후,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 속에서 자신학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기획됐다.

이만열 교수는 1강에서 단재 신채호(申采浩, 1880~1936)의 민족운동과 역사연구, 사학을 소개했으며, 2강에서는 한국교회 신학의 흐름과 변화,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삶과 사상에 대해 강의했다.

이날 이 교수는 “김교신의 ‘조선적 기독교’ 운동은 말씀 위에 조선을 세우고자 했던 정신이었으며, 이 정신은 그의 ‘성서조선’ 활동에 잘 드러난다”며 “김교신의 삶을 반추해 보건대, 올바른 자신학화를 향한 정도(正道)란 성숙한 말씀 읽기로부터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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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교수가 세미나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신학화 포럼
또 한국 신학이 서구 신학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모습에 대해서는 “이는 이대로 효과가 있었으나, 방법적으로는 성경을 그대로 읽어보고 자기 질문을 갖게 하고 자기 문제를 성경을 통해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자기 신학이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학의 다양화라고 해서 이단도 용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피울 수 있는 신학의 다양화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라며 “성경을 좀 더 철저하게 읽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학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의 신학 교육 방식을 선교지에서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만열 교수는 “현지에서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때가 되면 현지인들이 자신학화를 할 수 있도록 정리해줘야 한다”며 “먼저 성경을 읽게 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성경말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성숙해지면 자신학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 년 전통을 가진 기독교 신학은 알고 보면 각 시대 신앙인이 저마다 당면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치열하게 씨름하는 과정에서 발전과 계승을 거듭해 온 것이다. 이만열 교수는 여기서 가장 기본이자 핵심은 신학 하는 사람이 말씀과 시대 속에서 ‘자기’를 질문하고 정립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자기’를 ‘일제의 억압을 받는 주권을 상실한 자기’인지, ‘수입신학에 의존하는 자기인지’, ‘21세기 전 지구화, 세계화 속에서 파악되는 자기’인지 질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학화 포럼 위원인 권성찬 선교사(GMF 대표)는 “한국교회 안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을 자신학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세미나를 준비했다”며 “당시 ‘조선적 기독교’를 생각했던 선각자들이 그 시작을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성경에서 시작하려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김교신의 ‘성서조선’은 많지 않은 구독자에도 불구하고 지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시대에 잠시 멈추어 그동안 근대화의 담론인 ‘성장’과 ‘크기’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본질’을 추구했던 선각자들을 반추해 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