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경영연구원 산하 좋은경영연구소(소장 이형재)가 제17회 오픈세미나에서 사회 갈등과 불안 원인으로 작용하는 '세대, 빈부, 이념, 지역, 환경, 민족의 다양성'과 이 다양성의 근원인 '다원주의'에 관한 신학적 관점을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8일 전경련회관 2층 컨퍼런스센터 가넷홀에서는 '다양성에 관한 신학적 조망과 세대갈등의 현상과 경영의 함의'를 주제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신국원 총신대 신학과 명예교수가 '다원주의와 지평'에 대해 강의했다. 신 교수는 "21세기 글로벌 다원주의 상황은 기독교 입장에선 생소한 도전은 아닐 수 있다. 초대교회 이래 수많은 문화와 시대정신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비슷한 상황을 무수히 겪었기 때문"이라며 "다양한 세계관이 충돌하며 각축을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그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혜가 빛을 발할 때이며, 그 지혜를 새롭게 되살려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신국원 교수는 20세기 후반부터 글로벌 다원주의 문화가 본격화된 원인으로 △근대문화의 기초인 계몽주의의 실패 후 다원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 △교통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지리의 종말'과 '문화혼종현상' △체계화와 보편성을 지향하는 지식과 학문이 아닌, 파편화되어 저장되고 임의적 도출, 취합 대상인 정보의 성격으로 인해 '정보화 시대 정신적 지형도와 문화 변화' 등을 꼽았다. 신 교수는 이어 "피터 버거는 오늘의 다원주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통하던 '설득력의 구조'의 붕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전통적 종교뿐 아니라 궁극적 헌신과 삶의 조망을 형성하는 기초인 세계관 모두가 지난날의 권위를 상실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다원주의 담론도 한계가 있다. 신국원 교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공통적 관심사는 어떻게 평화로운 공존을 담보하며, 특히 적어도 공적 영역만큼은 모든 이해 관계로부터 중립지대로 만들어 구성원 모두에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주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존 볼트의 말을 인용하여 "문제는 공적광장이 이들의 주장처럼 빈 공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사회문화적 과도기에 공공의 성소가 비어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곳은 본질적으로 채워지기를 간청하는 성격의 장소이며, 그 진공은 공적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국가나 기업과 미디어에 의해 채워지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종교의 폐지라는 잘못된 개념은 국가를 교회화 하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만은 아니다"며 "다원주의가 새로운 전체주의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가볍게 지나칠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알빈 프랜팅가의 말처럼 '다양성의 과도한 배양은 심판 불관용'으로 떨어지곤 한다"며 "낸시 피어시는 다원주의가 '관용과 지적 겸손'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주 드러난다고 했다. 다원주의도 하나의 독단적 도그마"라고 말했다.
신국원 교수는 다원주의가 교회에 침투해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로 '전통적 선교를 원칙상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극도로 약화시키는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이로 인해 기독교 신앙에 반하는 사상이나 삶의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 태도를 취하거나, 타종교의 부분적 진리성이나 진리의 복수성을 주장하게 되면 복음의 윤리성을 침식하여 선교 열정을 잠식시킨다는 것이다.
다원주의로 인해 교회에 나타난 또 다른 문제는 다원주의만 아니라, 다양성 자체가 문제인 양 무조건 배격하는 태도다. 그는 "관건은 다원주의 시대정신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확신을 독단적이지 않은 태도로 설득력 있게 공적 영역에서 제시할 능력이 있느냐이다"며 "공적 광장에 진입할 기회가 많아진 것이 분명한 지금, 국가 권력이나 정치적 힘, 정체성 정치의 힘이 아닌 십자가 진리에 기초한 구별된 메시지와 그에 부합한 소통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욱이 기독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지금, 다양한 문화와 상황 속에 축적된 역사적 기독교의 문화 적응의 자산과 지혜를 되살려 실천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균형감각을 갖춘 좋은 역사적 선례로 기독교 세계관의 뿌리인 칼빈주의 전통을 들었다.
그는 "칼빈과 카이퍼의 일반은총론은 다른 종교나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열린 태도를 갖게 할 신학적,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며 "이와 함께 창조질서의 객관적 존재에 대한 확신은 상대주의나 다원주의에 대처할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그것은 삶의 구조적 다양성 분석과 이에 근거한 비토대주의적 인식론을 가능하게 만들어 삶의 다원적 성격을 바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신국원 교수는 "전 시대 개혁주의자들이 보여준 지적 상상력과 영적 용기를 계승해야 하며, 아울러 그들이 보여준 특별한 관용, 겸손, 개방성 같은 사회적 덕목과 시민적 교양도 더욱 두텁게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통적 선교와 교회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선교적 교회운동'이 주는 통찰력을 통해 교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시야를 회복하며, 반기독교적 다원주의 문화에 부합한 선교적 교회론의 정립, 교회 중심주의를 버리고 사회, 열방, 다음세대로 흩어져 침투하는 교회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한국교회는 △다원주의와 반기독교 정서의 문화 속에서 현재 처지를 바로 이해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개화기 이후 기독교가 잠시나마 누린 문화적 우위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근대화 개발경제와 군사독재 시대에 개발된 교회 성장과 해외 선교라는 단순 모델에서도 탈피해야 하며 △정권 친화적 자세, 경제적 기득권 편에 공조하는 고도성장의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편승, 또는 포섭된 선교를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이제는 소수임을 인정하는 겸허함으로 섬김과 대화를 통한 변혁적 자세를 함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신앙과 학문의 대립이 크게 완화된 다원주의 분위기로 기독교 세계관의 사회적 기여 가능성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고, 기독교 학문의 위상도 높아졌다"며 "다양한 세계관이 난무하는 상황일수록 기독교 학문이 사회문화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서 더욱 중요해졌고, 이는 기독교 학문이 신학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원의 진리가 세상 문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복음 진리에 입각한 적절한 자신감과 다원주의 사회에 걸맞은 '탁월한 예절'과 더불어 '지적 세련됨'이 필수적"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다원주의는 오늘의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 학문에 주어진 기회일 수 있으며, 우리가 이 도전을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종향 목사(뉴시티교회)는 논찬을 통해 "타 세계관들이 경쟁하고 붕괴하고 새로 등장하는 다원주의적 경쟁구도 속에서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복음의 탁월성과 유일성을 삶으로 제시하고 말로 확증할 수 있다"며 "다원주의의 도전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철 교수(고려대)도 이날 "공평과 정의의 기준이 계속 바뀌는 상대주의 시대에 변하지 않는 꾸준한 진리인 '기독교적 개인의 취향'에 호기심과 놀라움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오전 일정의 사회를 맡은 안동원 교수(한림대 부총장)는 "생전 존 스토트 박사가 내한 당시 동성애, 좌우 문제 등의 질문에서 좀 막히면 말했던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일치, 비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관용과 자유, 모든 일에는 사랑(In essentials unity, in non-essentials liberty, in all things charity)'이라는 대답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순서에는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가 경영 현장에서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는 '세대갈등의 현주소와 세대공존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