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캄보디아 선교사로 2006년에 파송되어 현재까지 프놈펜에서 캠퍼스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상황과 캠퍼스 사역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캄보디아 정치는 1953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내전으로 1975년 폴포트가 이끄는 공산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장악하여 4년간 약 2백만 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하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그 후의 20여 년간의 세월은 모든 분야에서 성장이 멈추어버려 ‘제로 이어(Zero Year)’라고 부릅니다. 1998년 8월 선거에서 훈센이 승리함으로써 정치와 사회적인 안정을 되찾고 평균 6%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며, 종교는 소승불교 83%, 이슬람 4%인 가운데 기독교는 1.2%로 성장 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선교사로서의 삶이나 비자 문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분야에서 복음의 문이 열려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에 마음의 문도 열려있어 사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특히 킬링필드라는 내전에 의해서 대부분의 문화, 종교인, 그리고 많은 지식인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미래의 지도자들이 될 대학생들을 향한 사역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캄보디아 전체에 50여 개의 대학 중 프놈펜에만 40여 개의 대학에 약 15만여 명이 있고, 10여 년 전부터 캠퍼스 사역이 시작되었지만, 현재까지 아주 미미한 형편입니다.
저의 캠퍼스 사역의 초점은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제자화하는 사역입니다. 물론 선교센터를 운영하면서 대학생 문화사역도 하고 있지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만큼 전도에 중심을 두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개인별, 혹은 그룹별로 성경공부 하며 주님의 제자로 키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고 다음 날 만남을 약속해도 바람맞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제자화 사역의 중요함과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의대에 다니는 피어롬이란 한 학생 이야기입니다. 전도를 통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고, 3년 동안 끊임없이 인내하며 성경공부를 했지만, 도무지 성경 이해력이 부족하고 언제쯤 성장할까 걱정했던 제자였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피어롬이 다른 형제, 자매들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농촌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돈이 없으니 나에게 약품비 지원과 승합차로 팀을 시골에 데려다 달라고요. 아직 정식 의사도 아닌데 가능한지 염려하면서 의료팀 구성을 허락하고, 직접 운전을 해서 시골에 갔습니다. 어설픈 학생 의료팀이 도착하자, 소문을 듣고 열악한 의료 환경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듭니다. 쉴 틈도 없이 약품을 정리하고, 진료 탁자를 놓고,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전도팀들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는 의사나 약사도 아니고, 시골 사람들과 캄보디아어를 말하기도 쉽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줄 재능도 없으니 사진이나 찍어주고, 진료 후에 프놈펜으로 안전하게 밤길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자 둘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 하며 키웠던 형제, 자매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의료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격이 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피어롬의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보니, 캄보디아 의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삐세이나 티에리 자매는 모임에 오면 조용하고, 속찌어 자매는 늘 어린아이처럼 잘 웃기만 하고, 왓따이는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전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이들이 과연 언제쯤이나 변화될 수 있을까 염려했었는데 시골에 오니까 모습들이 전혀 달랐습니다.
의사와 약사가 되고,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고, 찬양도 하며 전도하는 모습들로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로 머리에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놈펜에서는 선교사인 내가 지도자였지만, 시골에 와서는 내가 오히려 이해력이 부족하고 조용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연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이 캄보디아의 땅의 진짜 멋있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라는 고린도후서 12장 10절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도가 약한 것 같고, 성경공부만으로 변화되지 않는 듯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가장 단순함이 가장 영향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프놈펜에 있는 30여 개의 미전도 캠퍼스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신실한 밀알 같은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는 사역은 인내하며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증거자의 삶이 우선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며 열매보다 먼저 나무가 되라(마7:17~18)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을 닮은 자로서(빌2:5~8) 복음 사역자가 효과적인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김성욱, ‘개혁주의 선교신학’ p.69). 주님! 어둠과 죽음의 땅이었던 캄보디아에 생명이신 주님의 복음으로 영광의 빛이 가득한 땅이 되게 하시고, 진리의 복음으로 캠퍼스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영철 캄보디아 캠퍼스 선교사
캄보디아 정치는 1953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내전으로 1975년 폴포트가 이끄는 공산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장악하여 4년간 약 2백만 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하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그 후의 20여 년간의 세월은 모든 분야에서 성장이 멈추어버려 ‘제로 이어(Zero Year)’라고 부릅니다. 1998년 8월 선거에서 훈센이 승리함으로써 정치와 사회적인 안정을 되찾고 평균 6%대의 경제 성장을 하고 있으며, 종교는 소승불교 83%, 이슬람 4%인 가운데 기독교는 1.2%로 성장 추세에 있습니다. 현재 선교사로서의 삶이나 비자 문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분야에서 복음의 문이 열려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에 마음의 문도 열려있어 사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특히 킬링필드라는 내전에 의해서 대부분의 문화, 종교인, 그리고 많은 지식인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미래의 지도자들이 될 대학생들을 향한 사역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캄보디아 전체에 50여 개의 대학 중 프놈펜에만 40여 개의 대학에 약 15만여 명이 있고, 10여 년 전부터 캠퍼스 사역이 시작되었지만, 현재까지 아주 미미한 형편입니다.
저의 캠퍼스 사역의 초점은 대학생들을 전도하고 제자화하는 사역입니다. 물론 선교센터를 운영하면서 대학생 문화사역도 하고 있지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만큼 전도에 중심을 두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개인별, 혹은 그룹별로 성경공부 하며 주님의 제자로 키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고 다음 날 만남을 약속해도 바람맞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제자화 사역의 중요함과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의대에 다니는 피어롬이란 한 학생 이야기입니다. 전도를 통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고, 3년 동안 끊임없이 인내하며 성경공부를 했지만, 도무지 성경 이해력이 부족하고 언제쯤 성장할까 걱정했던 제자였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피어롬이 다른 형제, 자매들과 친구들을 중심으로 농촌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겁니다. 자기들은 돈이 없으니 나에게 약품비 지원과 승합차로 팀을 시골에 데려다 달라고요. 아직 정식 의사도 아닌데 가능한지 염려하면서 의료팀 구성을 허락하고, 직접 운전을 해서 시골에 갔습니다. 어설픈 학생 의료팀이 도착하자, 소문을 듣고 열악한 의료 환경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듭니다. 쉴 틈도 없이 약품을 정리하고, 진료 탁자를 놓고, 번호표를 나누어주고, 전도팀들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는 의사나 약사도 아니고, 시골 사람들과 캄보디아어를 말하기도 쉽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줄 재능도 없으니 사진이나 찍어주고, 진료 후에 프놈펜으로 안전하게 밤길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을 자 둘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 하며 키웠던 형제, 자매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의료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격이 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피어롬의 하얀 가운을 입은 모습을 보니, 캄보디아 의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삐세이나 티에리 자매는 모임에 오면 조용하고, 속찌어 자매는 늘 어린아이처럼 잘 웃기만 하고, 왓따이는 열심은 있는 것 같은데 전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이들이 과연 언제쯤이나 변화될 수 있을까 염려했었는데 시골에 오니까 모습들이 전혀 달랐습니다.
의사와 약사가 되고,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고, 찬양도 하며 전도하는 모습들로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로 머리에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프놈펜에서는 선교사인 내가 지도자였지만, 시골에 와서는 내가 오히려 이해력이 부족하고 조용하고 그저 웃기만 하는 연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이 캄보디아의 땅의 진짜 멋있는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라는 고린도후서 12장 10절 말씀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도가 약한 것 같고, 성경공부만으로 변화되지 않는 듯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가장 단순함이 가장 영향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프놈펜에 있는 30여 개의 미전도 캠퍼스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신실한 밀알 같은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는 사역은 인내하며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증거자의 삶이 우선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며 열매보다 먼저 나무가 되라(마7:17~18)고 말씀하십니다. 또 예수님을 닮은 자로서(빌2:5~8) 복음 사역자가 효과적인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김성욱, ‘개혁주의 선교신학’ p.69). 주님! 어둠과 죽음의 땅이었던 캄보디아에 생명이신 주님의 복음으로 영광의 빛이 가득한 땅이 되게 하시고, 진리의 복음으로 캠퍼스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영철 캄보디아 캠퍼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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