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동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장애는 조금 불편한 것일 뿐 그 사람에게 나타난 ‘개성’입니다. 장애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또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배려해야 합니다.”

한국기독교농아총연합회(한기농총) 신임대표회장 김재호 지구촌농아교회 목사(사진)는 23일 선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며, 특히 청각·언어장애인(농아인)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며 “이는 청각·언어장애인 선교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자세”라고 강조했다.

g1.jpg치유 경험 후 청각·언어장애인 위한 목회의 길 들어서

김 목사는 후천적 중도 청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그는 10살 때 중이염 수술 실패로 청력을 상실했다. 학교도 교회도 나갈 수 없던 그는 고등학교를 청각·언어장애인 특수학교에 진학하면서 수화도 배우고 농아교회에도 출석하게 됐다. 사회인이 된 뒤에는 고향인 전북 김제에 거주하며 전북청각장애자복지회를 설립해 장애인 복지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고질병에 걸렸다.

“온몸의 피부가 오톨도톨하게 돌출해서 가렵고, 긁으면 핏물이 흐르는 악성 피부병이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긁어서 부스럼이 난 곳을 또 긁으며 괴로워했었어요. 온갖 약을 사용해도 효과가 없자 결국 하나님께 치유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 서원하고 기도했더니 성령이 임하며 온몸이 시원해지고, 편안하게 잠을 자고 난 뒤 완치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저를 치유해 주시면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수화언어문화의 특수성으로 선교 쉽지 않아

신학교 졸업 후 1994년부터 지금까지 25년째 청각·언어장애인을 섬겨 온 그는 지난 7일 한기농총 총회에서 신임 대표회장으로 선임됐다. 임기는 2년이다. 올해 대표회장 선거 방식이 직선제로 바뀌면서 대의원 투표로 선출된 그는 “사실 청각·언어장애인 사회의 고질적인 선입견과 배타성 때문에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청각·언어장애인이면서 수화도 능통한 농아선교 사역자들이 많아, 중도 청각장애인인 자신은 배척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50여 개 농아교회를 대표한 대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로 당선된 그는 “이번 계기로 이들의 열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발간한 장애인 통계자료를 보면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26만8589명, 언어장애인은 1만7743명 등 총 28만6332명이다. 하지만 장애인 등록을 꺼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청각·언어장애인은 대략 35만여 명에 달한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보편적 호칭은 농아인(聾啞人)이고, 비하하는 표현으로 귀머거리, 벙어리, 현재 순화된 용어로는 청각장애인(소리를 못 듣는 사람), 언어장애인(말 못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수화(手話)를 통해 소통하는 제한된 언어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지요. 자연스레 복음전파와 설교, 찬송 등 예배행위도 수화로 하니 복음화율은 극히 저조합니다.”

김 목사는 “청각·언어장애인의 복음화율은 35만 인구 대비 2%인 7천여 명 정도”라며 “대부분 생활형편이 빈곤해 농아교회 역시 미자립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열악한 사역 현실을 전했다.

그는 장애인 선교에 대한 기존 교회의 관심과 이해 부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부분 교회가 장애인 선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그나마 관심 갖는 교회들도 동정 및 구제 차원의 선교에 치중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소통이 어려운 농아교회에 대해서는 아예 무관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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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목회자를 위한 베델성서 지도자 강습회 단체사진        사진제공=한기농총
수화 모르는 중도 청각장애인 위한 복지 ‘구멍’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시대가 됐지만,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김 목사는 “청각·언어장애인 사회는 농아인, 구화인, 중도 청각장애인으로 나눌 수 있다”며 “우리나라 청각·언어장애인 복지는 농아인 복지에 편중된 수화통역센터를 지역별로 운영하는 데 그치며, 구화인이나 중도 청각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 시스템은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서 농아인은 완전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경우이며, 구화인은 보청기, 인공와우 등을 사용해 어느 정도 듣고 말도 하는 경우, 중도 청각장애인은 언어습득시기 이후 청력이 소실된 경우를 말한다.

김 목사는 “35만 청각·언어장애인 중 수화를 사용하는 농아인은 겨우 3만 명”이라며 “그 외에 대다수가 수화 표현이 매우 취약한 중도 청각장애인으로 거의 32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중도 청각장애인이 절대다수를 점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해 사회에서 재활 자립과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방황하고,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곧 이들의 생활고로 이어진다.

농아선교신학 정립 등 다양한 사역 계획 밝혀

김 목사는 따뜻한 관심과 배려 없이 복지와 선교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청각·언어장애인들을 위해 다양한 사역 계획을 밝혔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청각·언어장애인 선교신학이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며 “이 부분에 역점을 두고 임기 기간 청각·언어장애인 선교신학 정립을 추진해 신학적 기초를 다져놓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수화로 영상 번역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특히 많은 교회에서 내용과 목적이 변질, 왜곡되고 있는 수화찬양을 바로잡기 위해 정통 수화찬양의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오늘날 수화찬양에는 율동과 워십을 지나치게 섞다 보니 난해한 찬양이 되었고, 자주 몸을 흔들면서 정통적인 수화 표현이 거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수화연구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찬양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요. 쉽게 말하면 수화가 섞인 워십댄싱과 같이 된 것이죠.” 한기농총은 정통 수화찬양을 권장, 보급하기 위해 2년마다 수화찬양제도 열 계획이다.

또 그는 “사회생활체육회와 연대해 지역사회 체육 활동에서 소외된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생활체육과 신체관리를 돕는 연령별 맞춤 생활체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할 것”이라며 “지역 농아교회 주도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육성하고, 전국 규모의 청각·언어장애인 생활체육대회도 2년마다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해외선교에도 눈을 돌려 교단별 사역지를 정해 비효율적인 경쟁과 중복을 피하고, 실용적인 선교정책을 수립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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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기독교농아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전국농아교회 연합체육대회 단체사진
    사진제공=한기농총

지역별 청각·언어장애인 선교 전문 담당자 세워 지원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특히 장애는 개성일 뿐,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체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청각·언어장애인 선교에 대한 특수성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간혹 수화를 잘하는 건청인 사역자들이 일반교회에서도 담임목사의 설교를 수화로 동시통역 하면 지역 청각·언어장애인들이 손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며 교회 내 청각·언어장애인 부서를 두기를 권장하는 듯한 말을 한다”며 “이는 청각·언어장애인 선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이없는 주장”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목사는 “청각·언어장애인 선교도 대상자의 상태, 언어, 지적 수준, 수화언어문화의 특성 및 행동양식 등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춰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이러한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교회마다 경쟁하듯 많은 예산을 들여 청각·언어장애인 부서를 개설했지만, 현실은 전임 사역자의 태부족과 수준 미달의 운영으로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청각·언어장애인 선교는 지역마다 한 교회나 단체를 두고 전문 사역자가 담당하게 하되,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특수성을 고려해 지원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고 효과적인 선교 방식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농아인, 구화인, 중도청각장애인

농아인은 청각·언어장애인이며, 구화인은 농아인에 가까우나 보청기, 인공와우 등 청력재활기기를 사용해 소리를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다. 이때문에 언어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듣고 말할 수 있지만 수화 표현력은 극히 취약하며, 국내에 3천 명 정도가 있다. 중도 청각장애인은 10세 이후 청각에 장애를 입어 수화를 거의 모르며, 언어 소통의 불편으로 사회에서 고립돼 나홀로지내는 사람이 많다. 수화를 몰라 농아인과도 대화를 못하며, 주로 말과 필답으로 소통하는데, 32만 명이 있다.


이지희 기자 jsowue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