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언더우드 선교상 시상식과 함께 열렸던 언더우드 기념강좌에서 여인석 교수(연세대 의과대학 의사학과)는 "언더우드와 연세"란 주제로 발표를 전했다. 여 교수는 발표를 통해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후에 '연세'로 귀결되는 기독교 대학 설립의 꿈이 배태되고 실현되어 가는 과정과 그 의미를 살펴봤다.

여인석 교수는 "내한 이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선교사역을 전개한 언더우드가 생애의 마지막 몇 년에 걸쳐 가장 많은 노력을 경주한 것이 기독교 대학의 설립"이라고 말하고,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대학의 설립은 언더우드의 30년 한국 선교사역의 최종적 목표이자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먼저 언더우드는 제중원과 관련을 맺었다. 당시 알렌 선교사가 운영했던 제중원에서 언더우드는 약을 조제하는 일을 맡아 했고, 제중원 교사로써 물리 화학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제중원은 조선정부 소속 기관으로, 직접적인 선교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후에 제중원을 선교회로 넘겨 성격을 변경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교섭을 조선 정부와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인석 교수는 "헤론의 죽음으로 제중원의 운영이 어려움에 빠지자, 그동안 실질적으로 제중원을 운영해 온 북장로교 선교회 이외에 일본이나 성공회, 가톨릭 등이 제중원 운영에 강한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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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석 교수의 강연이 진행 중에 있다.

이후 언더우드는 에비슨을 만나게 되고, 언더우드의 지지를 받았던 에비슨은 실업가 세브란스를 만나 그의 헌금으로 병원을 세우게 된다. "병원이 세워지면 기독교를 단순한 자선단체로 오인해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라는 일부 평양 선교사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언더우드는 에비슨을 적극 도와 그가 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된다.

여인석 교수는 "언더우드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은 기독교 대학을 설립하는 일에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언더우드는 한국에 와서 직접 선교여행을 하는 등 선교활동을 벌였지만, 성서번역과 문서선교, 고아원, 교육사업 등 다양한 선교활동을 펴기도 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교육사업이었다.

그러나 병원 설립과 마찬가지로 마펫 등 평양의 선교사들은 언더우드의 이 계획을 극렬히 반대했고, 이번에는 에비슨이 언더우드를 도와 학교 설립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여인석 교수는 "언더우드와 에비슨은 모두 선교에서 의료와 교육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 교수는 "일반적으로 복음선교사들은 의료를 본격적 선교의 예비단계, 혹은 기독교의 교의가 잘 수용될 수 있는 사탕발림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언더우드는 의료가 단순히 수단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라는 에비슨의 선교철학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언더우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교육철학과 선교철학을 가장 잘 이해했던 에비슨이 세브란스 의전과 연희전문 양교의 교장을 겸직하며 집무를 봤다. 에비슨은 궁극적으로 한국인들이 학교 운영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여 교수는 "두 사람의 꿈과 노력은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기능적 고등교육의 틀을 넘어서는 진정한 대학의 정신을 이 땅에 처음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두 사람이 꿈꾸던 기독교 종합대학의 탄생은 일제시대가 지난 1957년 연희전문과 세브란스가 합동함으로써 비로소 이뤄졌다. 에비슨은 1916년 10월 16일 서울의 중앙기독교청년회 회관에서 열린 언더우드 추모식에서 다음과 같은 추모연설을 한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 대학의 완전한 발전이 그(언더우드)에 대한 가장 큰 기념이 되고, 그 대학이 다가올 미래에 모든 한국의 사상과 활동에 미칠 지속적이고 지대한 영향력의 측면에서 그의 풍성한 삶에 영광스런 면류관으로 증명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석 교수는 "남의 건물을 빌려 겨우 수업을 꾸려가던 어려운 시점에서 에비슨이 했던 이 예언적 발언이 오늘날 연세대학교로 실현되었음을 우리는 놀라움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기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하며 발표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