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1.jpg책소개

위기에 처한 기독교, 방법은 '선교'다!

곳곳에서 기독교가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현재 인구 추세로 미루어, 이슬람이 기독교를 제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기독교 교세는 정체 상태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저자는 답을 역사 속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곧 선교의 역사였다. 이스라엘에서 발흥한 신흥 종교가 세계종교로 성장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선교 전략을 꼽는다.

『한 권으로 읽는 세계 선교 역사 100장면』은 선교 역사의 핵심적인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100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저자는 복음 전도가 여전히 선교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책이 알려주는 기독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기독교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안승오

아시아선교연구소(IAM) 연구원, 선교와 신학 편집위원,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사역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심각한 퇴조의 모습을 보이고, 3/2 세계 선교의 제일 선두주자를 자부하는 한국교회마저 감소하고 있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의 회복과 건강한 성장 방향을 찾아 고뇌하는 선교학자이다. 특별히 말할 수 없이 많은 조롱, 손해, 그리고 핍박 속에 살면서도 능력 있게 선교 백성의 삶을 살았던 선진들의 고난, 헌신, 열정, 실수, 지혜 등을 찾아보면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장애물들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고자 힘쓰고 있다.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석사(Th.M.)와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고, 총회파송을 받아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하였으며,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논문으로는 〈다시 생각해보는 삼자원리〉, 〈다시 평가해보는 19세기 선교사〉, 〈다시 생각해보는 하나님의 선교〉 외 다수가 있고, 저서로는 『7 Key Principles of Dynamic Church Growth』,『선교사가 그린 선교사 바울의 생애』, 『선교와 교회성장』(공저), 『능력있는 예배를 위한 7가지 질문』, 『선교학개론』(공저), 『건강한 교회 성장을 위한 핵심원리 7가지』, 『현대선교의 핵심주제 8가지』, 『사도행전에서 배우는 선교주제 28가지』, 『현대 선교학 개론』(공저), 『성장하는 이슬람 vs. 약화되는 기독교』등이 있다.

목차

서문

Ⅰ. 초대교회 선교 : 1세기~5세기 말엽까지
1. 세계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
B.C. 146년 |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로마가 지중해의 실제적 지배자가 됨
2. 오순절 성령강림과 선교
36년 추정 | 오순절 성령강림
3. 위대한 선교사 바울
37년 추정 | 바울의 다메섹 도상 회심
4. 예루살렘 총회의 선교적 의의
49년 | 예루살렘 총회
5. 선교와 순교
64~68년 | 네로 황제에 의한 박해, 303~311년, 기독교인에 대한 로마의 마지막 박해
6. 기독교의 공인
313년 | 밀라노칙령 선포
7. 서유럽 복음의 등대 아일랜드
432년 | 아일랜드의 성자 패트릭, 아일랜드에 도착
8. 로마 제국의 쇠퇴와 멸망
476년 | 서로마 제국 시대의 마감
9. 기독교 초기의 집단개종
496년 | 클로비스 왕과 그의 신하들이 함께 세례 받음
10. 네스토리우스파의 시작과 선교
498년 | 네스토리우스교회, 페르시아의 니시비스Nisibis로 확대

Ⅱ. 중세 전기의 선교 :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11. 수도원 운동
530년 추정 | 《베네딕트 규율Regula Benedicti》 저술
12. 프랑스와 영국의 복음화
596년 | 아우구스티누스, 베네딕트 수도사들과 함께 영국 켄트 왕국에 파송됨
13. 이슬람의 발흥
628년 | 무함마드의 메카 점령
14. 중국 땅에 떨어진 복음의 씨앗, 네스토리우스의 선교
635년 | 알로펜과 21명의 선교사단이 당의 수도인 장안에 도착
15. 독일인의 사도 보니파키우스
716년 | 프리지아로 가서 선교활동 시작
16. 샤를마뉴 대제와 선교
800년 |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
17.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선교
801~865년 | 북극인들을 위한 사도 안스가르의 생애
18. 동유럽의 복음화
865년 | 불가리아 보리스 왕이 기독교를 받아들임
19. 로마 교황권의 강화와 선교
865년 | 교황 니콜라스 1세 ‘거짓 이시도루스 교령집’ 사용으로 교황권 강화
20. 동유럽 선교의 선구자들,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
868년경 |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가 모라비아에 파송됨
21. 러시아의 복음화
955년 | 블라디미르의 조모 태후 올가가 복음을 받아들임
22. 북유럽의 지역 복음화
990년경 |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복음화의 역군 올라프 왕 실리섬에서 세례 받음

Ⅲ. 중세 후기의 선교 :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23. 십자군 전쟁
1095~1272년 | 제1~8차 십자군 운동
24. 중세 후기의 수도원 운동
1200년 이후 | 구걸승단들의 출현
25.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1209년 | 성 프란체스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수도회를 만듦
26. 선교의 씨앗들이 되었던 동부 지역 교회들 109
1250년경 | 콥트 수도사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 번역
27. 무슬림 선교의 선구자 레이몬드 룰 112
1276년 | 마요르카섬에 선교사 양성을 위한 대학 설립
28. 원나라 시대의 선교사 몬테 코르비노의 존 115
1294년 | 몬테 코르비노의 존 북경 도착
29. 교황권의 약화와 분열 118
1309년 |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
30. 종교개혁의 선구자, 위클리프와 후스 121
1325~1384년 | 존 위클리프의 생애, 1415년, 얀 후스의 화형
31.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동방교회 125
1453년 | 콘스탄티노플,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함락

Ⅳ. 로마가톨릭 선교의 전성기 : 15세기 말엽부터 18세기까지
32. 지리적인 확장과 선교 133
1492년 |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33. 해상대국과 파트로나토 136
1494년 |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아조레스섬을 중심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 영역 설정
34. 고난 받는 사람들의 친구, 라스카사스와 페드로 클라베르 139
1509년 | 라스카사스, 인디오들을 위한 사역에 투신
35. 예수회의 설립과 선교 142
1534년 |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몽마르트 노트르담사원에서 예수회 시작
36. 예수회의 대표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146
1542년 |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인도 고아로 선교사역 떠남
37.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 150
1562년 | 스페인의 필리핀 식민통치 시작
38. 일본 가톨릭의 성장과 박해 153
1587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 선교사 추방령 발표
39.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 156
1598년 | 마테오 리치, 북경 입경
40. 인도 선교 160
1605년 | 로베르토 드 노빌리 인도 도착
41. 아프리카 대륙 선교 164
1607년 | 예수회 수도사들이 모잠비크에 상륙거점 마련
42. 가톨릭 선교의 절정기와 쇠퇴기 167
1622년 | 선교사역의 관리를 위한 포교성성 발표

Ⅴ. 개신교 선교의 도약기 :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43. 인쇄술의 발?과 선교 175
1456년 | 구텐베르크, 185권 가량의 성서 출간
44. 종교개혁자들과 선교 178
1517년 | 95개조 발표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시작
45. 반종교개혁과 선교 181
1545~1563년 | 트리엔트 공의회
46. 상업로와 해상로를 통한 복음의 확산 185
1622년 | 동인도회사의 지원으로 선교사 훈련을 위해 라이덴에 신학교 건립
47. 청교도들의 선교적 기여 189
1648년 |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식민지에서 케임브리지 강령 채택
48. 아메리칸 인디언 선교 192
1671년 | 존 엘리엇이 인디언 마을에 기도촌 건설
49. 경건주의와 선교 196
1675년 | 슈페너의 명저 《경건한 욕망들》 출간
50. 계몽주의와 선교 199
1687년 | 과학자이며 기독교 이신론자였던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저술
51. 새로운 선교 진원지였던 대학 202
1694년 | 경건주의자들에 의해 할레대학 설립
52. 경건주의의 선구자 어거스트 헤르만 프랑케 205
1701년 | 프랑케,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치겐발크와 플루차우를 인도에 파송
53. 표트르 대제의 선교
1721년 | 총주교 대신 ‘The Holy Synod’를 만들어 교회 업무 처리
54. 모라비안교도들의 정신적 지주 친첸도르프
1727년 | 친첸도르프를 중심으로 헤른후트 공동체 시작
55. 모라비안 선교사들
1733년 | 모라비안 평신도 선교사 데이비드, 그린란드로 파송됨

Ⅵ.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 :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까지
56. 영국을 복음화한 존 웨슬리
1738년 | 존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 회심
57. 미국의 부흥 운동에 기여한 조지 화이트필드
1739년 | 조지 화이트필드의 옥외설교 시작
58. 선교의 용광로, 대각성 운동
1720~1866년 | 제1~3차 대각성 운동
59. 조선 천주교의 전래와 성장
1784년 | 이승훈, 예수회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 받음
60. 선교회들의 탄생
1792년 | 침례교선교회 탄생
61.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1793년 | 윌리엄 캐리 인도 캘커타 도착
62. 조선 천주교의 박해
1801년 | 신유박해 시작
63. 중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
1807년 | 모리슨, 중국 광둥 도착
64. 19세기 선교의 새 주자로 떠오른 미국
1810년 | ‘미국홰외선교연합위원회’ 창설
65. 페르시아 선교를 위한 씨앗, 헨리 마틴
1810년 | 헨리 마틴, 힌디어로 신약성경 번역
66. 버마 선교의 아버지 아도니람 저드슨
1813년 | 아도니람 저드슨, 버마 랭군에 도착
67. 태평양군도에서의 선교
1819년 | 타히티섬의 포마레 왕, 4천 명의 백성들 앞에서 세례 받음
68. 개신교의 인도 선교
1830년 | 인도에서 교육선교를 펼친 알렉산더 더프의 인도 도착
69. 백인들의 묘지로 간 사람들
1833년 | 멜빌 콕스 선교사,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지 4개월 만에 사망
70. 아편전쟁과 선교
1840~1842년 | 아편전쟁
71. 신앙선교회들
1852년 | ‘제나나의료선교회’ 설립
72. 다시 열린 일본 선교의 문
1859년 | 미국 북장로교 소속 의료선교사 햅번, 일본 도착
73.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
1865년 | 허드슨 테일러 ‘중국 내지 선교회’ 설립
74. 마르크시즘의 대두와 선교
1867년 |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출간
75. 삼자원리, 선교지 교회개척의 모범원리
1869년 | 루퍼스 앤더슨, 삼자원리 주장
76. 무디의 부흥 운동과 선교
1871년 | 무디의 부흥 운동 시작
77. 로티 문과 크리스마스 선교헌금
1873년 | 로티 문, 중국 도착
78. 개신교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1884년 | 의료선교사 알렌 입국
79. 대학생 해외 선교사 자원 운동
1886년 | SVM의 시작점이 된 ‘헤르몬산 집회’
80. 세계 선교에 기여한 평신도 지도자들, 존 모트와 로버트 스피어
1888년 | 존 모트 YMCA 총무로 활동 시작
81. 개신교의 중남미 선교
1890년 | 중미선교회 조직
82. 이슬람의 사도 새뮤얼 즈웨머
1897년 | 즈웨머, 중동 바레인에서 선교 시작

Ⅶ. 현대 선교의 시기 : 20세기 초엽부터 현재까지
83. 오순절 운동의 시작과 확산
1906년 | 미국 LA 아주사 거리의 부흥집회
84.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1910년 |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85. 세계대전과 선교
1914~1918년 | 제1차 세계대전,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86. 번역 선교와 캐머런 타운센드
1917년 | 캐머런 타운센드, 과테말라로 선교사역 떠남
87. 칼 바르트와 선교
1919년 | 칼 바르트의 《로마서주석》 발간
88. 의료선교사 카를 베커
1928년 | 의료선교사 카를 베커, 아프리카로 떠남
89. WCC와 에큐메니컬 운동
1948년 | 암몽테르담에서 WCC 창립
90. 떠오르는 중국교회
1949년 | 중국 공산화로 중국교회에 대한 탄압 시작
91. 폭넓어진 선교 개념 ‘Missio Dei’ 출현
1952년 | IMC 이후 ‘Missio Dei’ 개념 등장
92. 선교와 교회 성장
1955년 | 도널드 맥가브란 《하나님의 선교전략》 출간
93. 아프리카 기독교의 성장과 과제
1965년 이후 | 아프리카 기독교, 46퍼센트의 성장세 유지
94. 종교간 대화와 선교
1970년 | 아잘톤(레바논)에서 ‘생명력 있는 신앙인들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모임
95. 해방신학과 선교
1971년 |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 출간
96. 로잔 대회와 복음주의 선교
1974년 | ‘세계복음화 국제대회’ 로잔에서 열림
97. 구소련의 붕괴와 이후의 과제
1989~1990년 |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 해체, 냉전시대 종식
98. 마지막 남은 과제, 미전도 종족 선교
1990년 | 런던에서 미전도 종족 입양자문 회의Adopt-A-People Consultation 개최
99. 이슬람의 확장
2001년 |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한 911테러 사건
100. 21세기 선교의 새 주자 한국교회
2010년 | 한국 선교사 22,130명 파송

후주
부록: 한눈에 읽는 핵심 선교 역사

책 속으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로마인들은 제국 내 각 도시를 연결하는 직선도로망을 잘 구축하고 이 도로를 조약돌로 포장해 군대와 인력, 그리고 물자의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어놓았다. 이런 도로 때문에 로마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 평화 때문에 군사들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이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복음은 바로 이 도로들을 통하여 신속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 pp. 21~22

선교사로서의 바울에게 우리는 어떤 선교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철저한 선교여행 계획이나 전략을 가지고 사역을 수행하기보다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면서 융통성 있는 선교를 수행했다. … 오늘날도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은 첫째, 기도의 전략이다. 둘째, 동역선교이다. 셋째, 상황화 전략이다. 넷째는 거점도시 중심의 선교전략이다. --- pp. 29~30

예루살렘의 가장 큰 의의는 이방 선교의 커다란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점이다. … 만약 신약 시대에 이방인들의 개종 조건으로 할례와 같은 구약의 의식법 준수를 요구했다면 그것은 이방인들을 복음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대인화하는 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예루살렘 총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간 교제와 연합을 위하여 네 가지 항목(우상의 제물, 피, 목메어 죽인 것, 음행행 15:29) 외에는 이방인에게 어떤 짐도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기독교는 이방 선교를 효과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 pp. 33~34

보니파키우스는 평화스럽고 안정된 수도원에 상주하는 것보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지역과 기독교가 들어갔더라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곳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어렵고 험난한 선교사의 길을 택했다. … 722년에는 헤세와 투링기아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 그곳에서 이교도가 섬기는 ‘우뢰의 신’이라는 부르는 큰 참나무를 이교도들이 바라보는 현장에서 베어버렸다. --- p. 71

그는 온 유럽을 위한 선교사 훈련 기지를 세우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 그 후 파리로 가서 공부면서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그는 또한 무슬림들을 위한 복음전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했는데, 수차례 걸쳐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을 당하고 돌에 맞기도 했다. 1314년에 버기아로 가서 진리를 설파하다, 화가 난 군중들에 의해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너무 심한 상처를 입어 배를 타고 돌아가는 도중 주님 품에 안기게 되었다. --- p.113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리적인 사항에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전통적인 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을 재확인함으로 개신교와의 분리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되었다. 아울러 트리엔트 공의회의 참석자들은 가톨릭교회의 부조리와 타락을 솔직히 인정하고 교회개혁의 당위성을 주자했다. 이것이 트리엔트가 가톨릭 종교개혁의 상징이며 근대 로마가톨릭교회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p.183

헨리 마틴의 선교 자세와 전략은 첫째, 그는 늘 선교지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는 자세를 지녔다. 둘째, 그는 그의 선교사역이 사회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셋째, 그는 늘 동역하는 자세를 지녔다. --- pp.2511~252

로티의 선교사역 중 특별히 기억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크리스마스 특별헌금’이다. 로티은 여성들의 선교운동을 불러일으키려 일주일간의 기도회 후에 선교헌금을 작정하는 ‘크리스마스 특별헌금’을 기획했다. 그 후로도 크리스마스 선교헌금은 계속 증가했으며, 중국으로 가는 독신 여성선교사들의 수 역시 계속해서 늘어났다. … 남침례교 선교사로서 그녀가 선교에 끼친 영향은 오늘날에도 그녀를 ‘침례교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기억하게 한다. --- p. 289

에든버러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에든버러 대회는 선교신학적인 기여는 없고 복음화를 위한 전략에만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대회의 이유였던 것은 첫째, 선교지 교회들의 자립과 자치 문제였다. 둘째, 선교사와 현지인들 간의 협력 문제였다. 셋째, 선교와 일치의 문제였다. --- pp. 314~315

콩고의 위대한 의료선교사였던 카를 베커는 어려운 가정형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학비와 생활비가 모두 지원되는 필라델피아의 한네만의대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 은혜를 깨달은 그는 주님께 “주님께서 제가 끝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겠습니다”라는 서원기도를 드렸다. … 그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관심은 늘 복음전도였다. --- pp. 328~330

한국교회 선교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까? 첫째는 영성적 차원이다. 선교는 구체적인 전략이나 방법 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은 어떤 영성을 가지고 순교를 수행하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선교에 임하느냐 하는 데 있다. 둘째는 구조적 차원이다. 바람직한 구조 갱신의 방향은 먼저 개교회 중심의 영세한 각개전투식의 선교를 지양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선교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는 전략적 차원이다. 전략적인 차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시간과 자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 pp. 368~369

출판사 리뷰

세계 선교 역사,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는가?

오늘날 기독교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한 느낌이다. 타종교는 급속히 성장하는 데 비하여 기독교는 성장이 매우 둔화되고 있다. 과거 기독교 선교의 핵심 세력이었던 서구 교회는 이제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그만두고 아예 자신의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교회의 건물들은 술집, 나이트클럽, 이슬람 사원 등으로 팔려나가고 있고, 그나마 남은 교회에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기독교가 어떻게 다시 일어나 능력 있게 세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동차의 백미러를 보는 것은 뒤로 가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가기 위함이듯이, 이 책은 역사를 보면서 기독교가 다시 한 번 능력 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찾아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저술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다른 선교 역사의 저서들과 다른 점은, 첫째는 기존의 선교 역사책들은 때로 너무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하게 쓰여 있어서 읽다보면 지루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다. 방대한 내용은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는 필요한 내용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목회자, 선교사, 신학생들 뿐 아니라, 그 외의 신앙인들도 꼭 알아야 할 선교 역사의 핵심적인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100가지로 정리함으로써, 누구나가 쉽게 선교 역사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많은 도전과 지혜를 얻도록 되어 있다.
둘째는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로 복음 전도가 여전히 선교에 있어서 우선의 사역임을 강조하고 있다. 1950년대 이래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개념의 출현으로 복음화와 인간화 사이의 우선순위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는 가운데, 복음전도의 우선성과 긴급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약화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50년 이전까지의 성도들은 의문의 여지없이 늘 복음화를 그들의 삶에 최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고, 이런 헌신의 결과로 오늘날과 같은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저자는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복음화의 시도가 가져온 부작용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기술하면서 다시금 그런 문제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복음화는 우리에게 주어진 핵심적인 사명임을 역사의 흐름을 통해 증명하면서 말하고 있다.
셋째는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복음으로 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희생의 대가를 지불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복음은 결코 값싼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일 역시 한 번도 그냥 쉽게 전해진 적이 없었다. 모두 다 피를 대가로 지불하면서 이루어져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믿음의 조상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를 보면서 복음 전도에 대한 도전을 새롭게 받을 것이며, 우리 앞에 놓인 그 위대하고도 고귀한 책임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특징
1. 기독교 선교 역사의 사건, 인물, 이슈, 교훈 등을 100가지 핵심으로 정리하여 세계 선교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도전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2. 선교역사와 연관된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으므로 언제든지 필요할 때 사전처럼 찾아서 참고할 수 있다.
3. 우리에게 도전, 감동, 지혜를 주는 핵심 역사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므로 설교 예화와 선교 관련 강의 등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기에 유용하다.
4. 부록에 나온 “한눈에 읽는 세계선교 역사”를 보는 것만으로 세계 선교 역사의 흐름을 쉽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주요 내용

한눈에 읽는 선교 핵심 역사!

기독교 선교 역사를 시대별로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고, 실제로 역사란 무 자르듯 간단히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2천년의 긴 선교 역사를 특징을 따라서 나누어보면 대략 다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Ⅰ. 초대교회의 선교 시기(33~500년)

첫 번째는 33~500년까지의 시기로 ‘초대교회의 선교 시기’였다. 이 시기에 로마 제국 전체가 복음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기독교가 자유를 얻게 된 313년의 밀라노 칙령을 중심으로, ‘박해하의 선교’와 ‘황제 후원하의 선교’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박해를 받던 시대의 선교와 황제의 후원을 받는 상황의 선교는 서로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전까지 많은 기독교인이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거나 그 문턱에 다다랐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겁쟁이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탈바꿈했으며,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있다가 로마를 비롯해 기타 여러 나라와 지방 곳곳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에 쟀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로마 제국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던 기독교는 313년에 선포된 밀라노 칙령을 기점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그 후 기독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소수의 종교가 아닌,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로의 엄청난 변환이 일어났다. 황제들의 후원을 입은 교회의 조직적인 선교활동이 일어났으며, 수도원 중심의 선교활동이 이루어졌다.

Ⅱ. 중세교회의 선교 시기(500~1492년)

두 번째는 500~1492년까지의 시기로, ‘중세교회의 선교 시기’였다. 이 기간은 유럽 전역이 복음화된 시기였는데, 1000년을 중심으로 전기에는 주로 유럽의 중부 지역에 복음이 전해졌고, 후기에는 유럽의 북부지역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중세 전기와 후기를 망라하여 중세기에 수행된 선교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들이 나타난다.
첫째는 왕들의 헌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는 병사 3천 명과 함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496년 성탄절에 세례를 받음으로 유럽 대륙의 북서부에 있는 비로마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신성로마 제국의 샤를마뉴 대제 역시 색슨족을 복음화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문명의 혜택과 평화, 그리고 종교의 위로를 제공하려 했다. 북유럽의 선교도 국왕이 먼저 기독교로 개종하고 그의 영향에로 백성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는 침입자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며 선교가 이루어졌다. 중세 시대 동안 유럽 지역에는 침입자들이 계속적으로 침략을 일삼았다. 게르만족이 로마를 함락시키며 유럽 깊숙이 들어왔다. 또 샤를마뉴가 대제가 죽고 프랑크 왕국이 약화된 틈을 타서 북유럽과 동유럽에서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이 침입했다. 교회는 이런 침입자들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화시켜서 이들을 유럽문화권에 편입시켰다. 침략과 납치라고 하는 최악의 죄악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야만족들의 복음화를 이루어 가셨다.
셋째는 수도사들의 헌신이었다. 수도사들은 신앙의 전파와 강화를 위하여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교육?경제?사회복리를 위한 중심센터가 되는 수도원을 세웠다. 또한 타문화 선교를 위해서도 수도사들은 많은 기여를 했는데, 이들은 순종과 독신생활을 맹세했기 때문에 개척의 성격이 강한 선교사역에 가장 필요한 복종과 기동성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선교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수도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교회는 따로 사람을 훈련하거나 모을 필요가 없었다.

Ⅲ. 로마가톨릭 선교의 전성기와 개신교 선교의 도약기(1492~1793년)

세 번째 시기는 1492~1793년의 시기로 ‘로마가톨릭 선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신대륙과 신항로 등의 발견으로 복음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지로 왕성하게 퍼져나갔다. 이 시기에 로마가톨릭교회는 선교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런 배경에는 강력한 가톨릭 국가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개척활동과 예수회와 같은 열정적인 선교단이 있었다. 반면에 개신교는 이 시기에 처음 태동되어 선교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태동했지만, 1800년경까지의 선교는 주로 로마가톨릭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즉, 이 시기 동안 개신교회는 선교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개신교 교회는 자체의 생존과 체제 정비를 위해 다른 일에 신경을 쓸 만한 여력이 거의 없었다. 둘째, 당시 식민지 경영과 선교에서 주도권을 잡은 국가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가톨릭 국가들이었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교도들을 회심시키시고자 한다면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구원하실 것으로 그들은 믿었다. 넷째, 로마가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구조적인 면에서 약점이 많았는데, 가톨릭 선교의 핵심기구였던 수도회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와 모라비안 공동체의 선교는 매우 귀중한 선교적 열매들이었다. 모라비안들은 해외선교를 위해 전 공동체가 힘을 쏟아 부은 선교 공동체였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후미지고 조건이 나쁜 곳을 향하여 선교를 떠났다. 그들은 평범한 기술공들이나 농부들로서 복음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자신들의 온 생애를 바친 사람들이었다.

Ⅳ.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1793~1945년)

네 번째는 1793~1945년의 시기로 ‘개신교 선교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으며,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 등의 등장과 부흥 운동 등의 영향으로 개신교가 전 세계로 확장된 시기였다. 선교학자들은 19세기를 ‘선교의 위대한 세기’라고 부른다. 한 세기 동안 기독교는 세계 방방곡곡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놀랍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매 뒤에는 선교사들의 피 흘림이 있었고 그와 함께 걸출한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렇게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로 만든 배경에는 두 가지 중요한 선교운동이 있었다.
첫 번째는 ‘건초더미 기도운동’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윌리엄스대학에 새뮤얼 밀스를 주축으로 다섯 명으로 구성된 기도모임이 있었다. 1806년 8월 2일, 그들은 여느 때와 같이 모여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하는 중에 소나기가 와서 엉겁결에 비를 피하게 된 곳이 건초더미가 있는 창고였다. 그 속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던 중에 한 사람에게 “우리가 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선교적 영감이 떠올랐다. 이 깨달음 속에서 위대한 선교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 각성이 바로 건초더미 속에서 주어졌던 것이기에 이 기도모임에 ‘건초더미 기도운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지금도 그들이 다녔던 윌리엄스대학 한 모퉁이에는 “미국 선교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두 번째는 19세기 선교의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던 1886년의 ‘헤르몬산 집회’이다. 이 운동은 학생수련회에서 발단되었는데, 수련회에는 미국의 87개 신학교에서 251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처음에 이 모임의 주된 성격은 사경회였을 뿐, 선교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수련회에는 선교사로서 안식년 중에 있는 사람들이 강사로 많이 왔으며, 주 강사는 D. L. 무디, 아서 피어슨 등이었다. 특별히 피어슨 선교사가 설교 중에 “모두가 가야 합니다. 모두에게 가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학생들은 큰 은혜를 체험했다. 설교 후 통성기도와 묵도로 예배를 마쳤는데 조용한 가운데 사람들이 돌아갔고, 그날은 기도의 밤이 되었다. 이 수련회 후 100여 명이 선교를 위한 모임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이 끝날 즈음에, 대표를 선출하여 1년 동안 대학을 순회하며 간증을 하고 모임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그래서 네 명의 대표가 176개의 대학을 순방하며 간증을 했고, 3천여 명이 이 모임에 참여했는데, 일체성의 붕괴, 열기의 냉각, 다른 단체와의 혼선 등을 막기 위해 정식으로 Student Volunteer Movement(SVM)이라는 조직이 1888년에 결성되었다. 이 운동으로 1930년까지 50년 동안 파송된 선교사들은 2만 5천여 명이었으며 적극적으로 선교를 지원한 사람들이 약 8만 명에 이르렀다.

Ⅴ. 현대 선교 시기(1945~현재)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1945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현대 선교의 시기’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그 이후로 많은 식민지가 독립을 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앞에서 교회의 선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져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나는 그동안의 잘못된 제국주의적 선교를 반성하고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여 샬롬의 추구에 선교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시대가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선교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흔히 전자는 ‘에큐메니컬’이라 불리고, 후자는 ‘에반젤리컬’로 불린다.
20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태어난 선교의 주된 흐름 중의 하나는 교회가 세계에 대한 책임을 발견하고 세계를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살만한 세계로 만드는 것을 선교로 이해하는 에큐메니컬 진영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에큐메니컬 신학의 경향은 1950년 이후로 눈에 띄게 일어났다. 이 경향은 선교의 목표를 영혼구원에서 사회구원으로 잡았으며, 선교의 주체를 교회 중심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바꾸었다. 선교의 방법도 복음전파에서 해방과 투쟁, 그리고 대화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복음주의 계열에서는 다른 것들을 함께 고려하지만 여전히 복음전파와 교회설립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두 진영의 사고가 넓어지면서 서로 매우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두 진영의 차이가 존재하면서 오늘날의 선교는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YES24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