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시도한 유토피아인 공산주의, 20세기 풍미하다 처참한 종말 맞아
성경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하나님 사랑과 공의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죄의 터전 위에 의로운 유토피아 건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불가능
악한 영은 차별금지 명분으로 선동하지만 극심하고 영원한 차별 겪게 할 것

인간은 누구나 다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즉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지속된 인간의 노력이며 시도입니다. 이러한 구상들을 우리는 이념 혹은 사회사상이라 부릅니다. 또 이러한 시도와 실천들을 정치개혁, 사회운동, 혁명 등으로 부릅니다. 유토피아 혹은 이상 사회라는 목표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 불리던 사상입니다. 인류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20세기를 풍미했지만, 그 실험과 시도의 결과는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사상의 조국이라고 불렸던 소련마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아직도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 라오스 정도입니다.
그나마 중국이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과 사유재산 제도의 인정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일부 수용함으로 경제적 발전과 무역 거래를 활발히 이루어 G2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공산당 일당독재와 자유시장경제 원리는 궁극적인 공존이 불가능한 관계입니다. 중국은 2019년 중국발 우한 코로나 사태로 국제적 신망을 잃었고, 작년 2025년 이후 중국발 정치·경제적 파열음과 만성적인 부패는 중국공산당 통치의 종말을 예측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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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류 역사를 통해 인간들이 시도했던 유토피아 건설이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의 범죄 사건 이후 타락한 인간의 죄와 죄성이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개역한글)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죄를 지닌 인간이 만든 사상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죄를 지닌 인간이 만든 세상은 죄악된 요소들이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죄악된 인간이 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러합니다. 죄의 터전 위에 의로운 유토피아가 건설될 수 없다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자명한 진리입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유토피아가 실패한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죄악된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된 오류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기본 대전제가 틀렸기 때문입니다. 즉, 유물론(唯物論)과 무신론이 바로 비진리이며, 그것은 마르크스의 개인적 믿음이자 그의 개인적·주관적 종교입니다. 신이 없다고 믿는 믿음 말입니다.
마르크스 종교의 창세기 1장 1절을 적어 봅니다. ‘태초에 물질은 저절로 계셨느니라’ 이 거짓의 모래 위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으니, 파멸은 처음부터 확정되었던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집니다. 마르크스 공산주의는 ‘신이 없다’라고 믿는 일종의 믿음의 체계입니다. 즉 ‘신이 없다’라고 믿는 하나의 광신적 종교입니다. 19세기 독일 신흥종교의 교주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유토피아를 건설해 보겠다고 광분하는 이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일부 남아 준동하고 있으니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또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의 교주 김일성이 공산 독재자에서 결국 태양신으로 등극하여 하나의 종교 제국을 건설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곧 붕괴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확정입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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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唯物論)은 이념으로 포장된 거짓 종교의 교주 마르크스의 거짓 가르침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개역한글)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앞으로도 계속하여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지속적으로 망하는 이유는 그 전제와 기초가 거짓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많은 공력을 들여도 모래 위에 세운 집은 계속하여 무너질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혹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허점이 없는 이상적인 사상인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죄악된 인간이 구상하고 운영하는 사회는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자본주의의 위험성도 명백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개역한글)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자유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복음의 열매입니다. 참된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자유는 기독교 신앙의 고귀한 가치이며 인류에 대한 축복입니다. 자유는 천부인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통해 조망해 보면 자유는 욕심과 방종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고, 자유가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성을 지닌 인간은 이 세계 속에서 유토피아를 영원히 실현시켜 나갈 수 없는 것일까요?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모두 사라진 절대적인 유토피아,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성경은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과거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그러한 절대적 유토피아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누린 바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실낙원(失樂園)의 원인이 분명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뜻을 따르기 원했습니다. 인간은 불순종과 죄악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유토피아에 살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고 자신의 뜻을 따라 뱀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와는 차별 없이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마귀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창 3:5 개역한글)
즉 하나님과 차별이 없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차별 없이 하나님과 같은 등급이 되어, 하나님과 차별 없이 하나님처럼 선악을 판단하는 판단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순종이 아니고 반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래 마귀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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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최대 소원은 차별금지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귀의 차별금지를 따르면 엄청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나라, 지옥입니다. 지옥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마귀에 의해 차별을 당하고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마귀가 차별금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놀랍지만 마귀의 마음속에는 열등감과 교만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대항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여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마귀는 좋은 명분을 선점했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 엄청난 차별을 영원히 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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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차별 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을 그렇게 부르짖는 공산국가에서 최대의 독재자들이 등장하고 천문학적인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21세기에 들어와 악한 영들은 동성애자들에게까지 선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의 명분과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서 지옥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전무후무하고도 거대한 환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이미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차별금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셨습니다. <계속>
변병탁 영원한교회 목사(샬롬선교회 대표, 아고라젠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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