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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기념사업회(이사장 곽명근)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야외공연장에서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선교사 서거 123주년 추모예배를 드리고, 아펜젤러 선교사의 복음적 신앙과 교육, 섬김, 사랑 실천 등에 앞장선 삶을 기리고 계승해 나가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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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낙환 목사의 인도로 진행된 추모예배는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다 함께 부르며 시작됐다. 김낙환 사무총장은 찬송을 부르기에 앞서, 찬송가 1장을 선곡한 이유에 대해 “아펜젤러 선교사가 1895년 4월 5일 조선에 도착하고, 몇 달 후 미국에서 보낸 오르간이 짐과 함께 도착하자 아펜젤러 선교사가 오르간을 연주하며 처음 불렀던 찬송가”라며 “이후 찬송가 편찬자들이 아펜젤러 부인의 편지에서 이 사연을 접하고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을 1장으로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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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중창단 단장 김서홍 원로권사는 기도에서 “이 나라와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정동제일교회와 ‘배양영재(培養英材)’를 위한 배재학당을 세우고, 우리나라의 믿음과 지혜, 지식의 높이를 달리하신 선구자적인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기린다”며 “그 선교의 업적은 잘 성장하여 현대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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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펜젤러 선교사가 1902년 6월 11일 목포로 향하던 일본 배 구마가와마루가 침몰하자, 조선인 비서와 여학생을 구하려다 젊은 나이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음을 언급하며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사랑으로 이행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행하신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행위를 닮아 담대하고 열심히 주님 나라를 선포하고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되도록 믿음을 굳건히 세워달라”고 기도했다.
1975년부터 이화여고에서 평생 교목으로 사역하다 은퇴한 이종용 목사는 이날 ‘스승에서 제자로’(요 13:13~15)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먼저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종의 삶, 섬김의 삶을 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스승이 제자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스승이 되어 다른 이들을 제자로 만들라고 하셨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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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아펜젤러 선교사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어딜 가든 사람들을 화목하게 했으며,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것을 싫어했다. 또 마음속에 인간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다”라며 “자녀들도 나중에 다시 조선에 와서 자신들의 전 삶을 바쳤다는 것은 아버지를 존경했다는 것으로, 아펜젤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나서 이 목사는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표현이 있다”며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27살로, 키가 182cm이고 운동을 하니 건장하여 몸무게가 91kg이었다. 7년 동안 선교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첫 안식년인 34살 때 몸무게가 64kg, 두 번째 안식년인 42살 때 몸무게가 60kg이었다. 그리고 머리는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어 가까운 친구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또한 “선박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아펜젤러 선교사는 수영을 잘하니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멈춰 서 있었다. 평상시 생각이나 행동으로 볼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을 구출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물 깊이가 40~50m인데, 결국 아직 인양되지 않고 바닷속 깊은 곳에 시신이 있다”며 “양화진 묘지는 비었지만, 우리 마음속에 그분을 담자. 그분은 아름다운 스승이었고 우리는 제자다. 다시 우리가 스승이 되어 아펜젤러와 같은 아름다운 삶을 펼쳐 나가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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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기념사업회 곽명근 이사장은 인사의 말씀에서 “금년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한국에 복음의 말씀을 전하신지 1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며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선교사업은 물론 교육, 출판 사업으로 불모지 조선의 땅에 씨를 뿌리고 싹을 내렸고, 1902년 젊은 나이에 불의의 선박사고로 순직하셨다. 저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분의 한국에서의 삶과 희생과 봉사, 사랑의 정신을 기억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곽 이사장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사업 중 하나인 교육사업으로, 배재학당을 통해 지금도 많은 인재를 교육하고 배출하며, 그분이 남긴 정신적 유산, 물질적 유산은 후손들이 대한민국에 사회적 헌납과 기부를 통하여 배재학당의 교육사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곽 이사장은 “하지만 최근 배재학당 재단 운영이 뜻있는 동문들의 염려와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아펜젤러의 정신적 유산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하고 “하늘에 계신 아펜젤러 선교사님도 14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뿌린 씨앗이 백배, 천배 풍성한 열매로 맺길 기대하리라 생각하고, 모든 일이 주님이 의도하신 대로 그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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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 참석한 배재고등학교 이효준 교장은 “아펜젤러 목사님께서 배재학당을 설립할 때 목적은 복음 안에서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것으로, 아펜젤러 선교사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돼서 지금의 배재학당이 이어져 오고 있다”며 “배재고등학교는 앞으로도 여기 계신 모든 분의 기도와 지원 속에, 선배님들과 함께 복음 속에 유용한 인재, 그리고 섬기는 리더를 길러내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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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를 맡은 아펜젤러기념사업회 고문 이경희 목사는 “아펜젤러기념사업회가 감리교 지방 연회에는 있으나 총연회에 없는 것이 참 마음 아프다”라며 “그런데 곽명근 이사장님, 김낙환 목사님 등이 배재에서 아펜젤러기념사업회를 조직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모두 일어나 축도를 받은 후 배재 교가를 한목소리로 힘차게 부르며 예배를 마쳤다. 이후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2.6.~1902.6.11)의 가묘(기념비)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 교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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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기념사업회 김낙환 사무총장은 “27세에 한국에 오셔서 생명을 다해 선교 활동을 하시던 아펜젤러 선교사께서 불의의 선박사고로 어청도 바다에서 돌아가신 지 벌써 123주년이 되었다”라며 “작년까지 묘소 앞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올해부터 규정이 바뀌어 묘소 앞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어 부득불 장소를 옮겨 예배를 드렸다.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신앙과 뜻을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드린 추모예배에 함께 해주신 회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업회를 위한 기도와 관심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