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식의 내면화는 국가의 근본이며 미래
보훈 3.0 시대인 ‘보훈문화정책’ 정착돼야

호국전시관 근처의 현충지
▲호국전시관 근처의 현충지
국립묘지에는 수많은 국가유공자의 희생으로 기록된 근현대가 오롯이 담겨 있다. 국가유공자는 원칙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가라앉은 사람들이며 살아있는 우리에게 따뜻한 양지를 내주고 음지로 들어간 분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분들과 함께 행동하지 못한 사람들이며 구조된 자들이다. 도덕적으로 행동한 사람들이 아낌없이 희생했기에 국가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공동체는 귀중감과 애착심으로 채워진 신뢰의 공간이다. 구성원의 결속과 연대는 공동체 유지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함께 겪은 희생의 기억은 구성원들의 공감적 감정을 통해서 연대와 통합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국가보훈은 국민통합의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된다. 국가공동체에 대한 애착심과 결속, 그리고 정체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보훈의식의 내면화는 국가의 근본이며 미래이다.

우리나라의 보훈은 1985년을 전후로 원호의 시대(1.0)와 보훈의 시대(2.0)로 구분된다. 보훈의 시대는 희생과 공헌에 대한 상응한 보상과 예우로 나아간다. 2023년 6월 5일 국무총리 소속의 처에서 행정부의 하나인 부로 승격되었다. 정부조직법상 편제로 18부 가운데 9번째에 위치하게 되었다. 국가보훈부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훈정책을 하게 되었다. 창설 62년 만의 대변혁이며 보훈의 상징성이 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제 보훈 3.0 시대인 보훈문화정책이 정착되어야 한다.

호국전시관 정문으로 가다 보면 현충지가 있다. 아담한 연못에는 수련꽃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수련의 꽃말은 ‘청순함’이다. 국립묘지에 잠든 분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국립묘지는 부채의식을 확인하는 장소이다. 보답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실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보답의 본질은 기억에 있다.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온 국민이 끊임없이 국립묘지를 찾아야 할 것이고, 과거와 미래, 세대와 세대를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 각국은 예외 없이 국립묘지를 두고 있다. 군인 묘지 외에 위인들을 위한 별도의 장소가 마련된 나라도 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프랑스의 판테온 등이 그런 곳이다. 그곳에는 장군, 정치가, 학자, 시인 등 여러 인물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뉴턴은 생전에 영광을 누렸고 사후에도 마땅한 존경을 받았다. 국가의 주요 인사들이 그의 운구행렬에 참가하여 관 위에 덮은 천을 서로 들려고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사람들이 참배하는 것은 왕의 무덤이 아니라 국가의 영광에 이바지한 위인들이다. 이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국가가 세운 기념물들인 것이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동상을 보듯 영국인들은 웨스트민스터에서 자국 위인들의 동상을 본다. 그들 중에는 이 영광스러운 기념물에서 큰 감명을 받아 훌륭한 위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1727년 3월 아이작 뉴턴이 숨을 거두었을 때, 프랑스에서 추방된 볼테르는 런던에 체류하고 있었다. 위에 글은 볼테르가 파리로 돌아와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뉴턴을 부러워하며 쓴 글의 일부이다. 실제로 뉴턴의 관은 국왕의 장례식에 준하는 공작 2명, 백작 3명, 대법관 1명 등 6명에 의해 운구되었다.

북한의 국립묘지는 혁명열사능, 애국열사능, 재북인사묘, 조국해방참전열사능이 있다.

①혁명열사능은 대성산 주작봉 정상에 9만여 평 부지에 1975년 완공했다. 해발 185m 언덕에 9단의 묘역으로, 일제 강점기 김일성부대의 지휘관급 인물을 중심으로 160명이 묻혀 있으며 이곳에는 금수산 기념궁전 등 평양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②애국열사능은 평양의 신미동에 위치한 약 10만 평의 규모로 1986년 9월에 개관했다. 남조선 혁명가로 표시된 35명은 이현상 등 빨치산과 남파간첩이었고,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8명은 김영삼 정권 때 보내준 이인모를 비롯한 비전향 장기수이다. 한국에서 외무장관을 지내다 월북한 최덕신과 그의 아버지 최동오(임정 법무장관), 장인 유동열(임정 군무총장) 등도 있다. 전체 약 800기이다.

③재북인사묘는 평양시 용연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2004년 3월에 설치되었다. 남한 출신 유명 인사 63명의 묘로 이장해서 만들었다.

④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능은 평양시 연못동에 있는 6.25 참전 인민군 고위직 약 559기의 묘지이다. 인민군은 6.25 때 52만 명이 전사했지만, 이들의 묘소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자유인이고 국군은 자유 국민의 군대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전사한 자는 동료 자유인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그 상징이 현충원과 호국원이다.

북한 인민은 김정은의 군대이고 노예이다. 노예가 죽으면 주인의 재산명세서에서 삭제되는 것으로 끝난다. 세계 왕정 독재국가가 대부분 그랬다. 북한은 수십 개의 신분으로 나눠진 완전한 계급국가이다. 북한의 참전열사묘는 특권층만이 가는 곳이다.

이범희 목사
▲이범희 목사
우리는 국립묘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국립묘지는 고요한 침묵의 장소가 아니다. 빼곡히 늘어선 비석의 수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고 세대와 세대가 만나는 곳이다. 오늘의 평온한 일상이 거저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조국이 부를 때 대답한 사람들. 목숨이 필요할 때 기꺼이 목숨을 내 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이범희 목사(6.25역사기억연대 부대표, 6.25역사위원장)